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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 talk] 나에게 정치적 질문을 해달라
이화정 사진 최성열 2011-06-28

사진전 행사로 한국 찾은 리처드 기어

리처드 기어가 기어재단을 설립, 티베트의 문화 보존과 티베트인들의 인권옹호 활동에 참가한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달라이 라마의 가르침을 받은 불교신자이기도 한 그에게 자선사업과 신자로서의 활동은 배우로서의 커리어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다. 리처드 기어가 한국을 찾았다. 일차적인 목표는 7월24일까지 열리는 사진전 <순례자의 길>을 통해 자신이 지난 30여년간 찍은 64점의 사진을 공개하는 것이다. 이미 11개국에서 앞서 전시된 그의 사진은 티베트 지역과 망명인 거주지 등에서 촬영한 것으로 히말라야의 풍경과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고 있다. 기자회견 중 리처드 기어는 자신의 사진작업이 표방할 수 있는 정치적 메시지에 대해 강조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주최쪽은 “리처드 기어에게 어떤 정치적 질문도 하지 말아 달라. 문제의 소지가 있다. 하더라도 통역하지 않겠다”는 뜻을 수차례 기자들에게 전달했다. 10여분의 짧은 질의응답 시간 중 그 부분에 대해 먼저 말을 꺼낸 건 리처드 기어였다. 6월22일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서, 배우가 아닌 불교신자이자 작가, 사회운동가로 활동 중인 리처드 기어를 만났다. 지골로룩을 소화했던 할리우드의 가장 섹시한 남자는 이제 모노톤 수트와 은발을 장착한 노년의 온화한 미소로 회견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먼저 이번 전시와 관련해 인사말 부탁한다. =방금 전시장을 막 둘러보고 왔다. 사진이 전시장에 걸린 걸 본 게 굉장히 오랜만이다. 일부 사진은 거의 30년 전에 찍은 작품들이다. 사진들을 보고 있으니 감상에 젖게 되더라. 그 이미지들이 내가 티베트의 형제자매들과 가졌던 기억과 깊이 연결되어 있어서다. 일부 사진은 라다크나 잔스카르같이 지금은 인도에 속한 지역에서 찍은 것들이다. 네팔, 부탄도 있고. 이 지역들은 비슷한 문화와 배경, 같은 종교를 가졌다. 부처에서 시작된 것으로, 히말라야 지역에서 시작해 2500년 동안 그 순수함을 유지해왔다. 히말라야에서 시작된 불교가 한국까지 이르게 된 걸 보게 돼 기쁘다. 명백하게 불교가 한국 문화에 깊은 영향을 끼친 걸 볼 수 있었다. 티베트와 관련된 질문에 대해서는 어떤 질문이든 즐겁게 답하도록 하겠다. 굉장히 이야기하기 쉬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배우로서가 아니라 사진작가로 팬들과 만나는 소감을 말해 달라. =아주 어릴 적 사진을 시작했다. 부모님이 ‘코닥 브라우니’라는 카메라를 선물했는데 굉장히 심플한 기기였다. 어린 나이에도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네모난 상자 안에서 세상을 편집하는 정치적 의미를 가진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 네모난 상자 안에 세상을 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알게 됐다. 영화를 만드는 작업과도 유사하다. 어디를 찍을지 세상을 어떻게 편집할지 결정하는 것은 이성적인 사고가 아니라 감성적이고 감정적인 데서 비롯된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것과도 비슷하다. 우린 객관적으로 세상을 보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나의 생각에 바탕을 두고 생각하게 된다. 뭔가를 느끼지 않는다면 예술도 탄생할 수 없다. 커피숍에서 어떤 여자를 만났을 때, 만약 느낌이 온다면 거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것이 예술이다. 바로 예술과 정확히 일치하는 부분이다.

-사진작가로서 한국 불교의 매력을 담는다면 어떤 부분인가. =무언가와 사랑에 빠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한국과는 이제 막 관계가 시작됐고 다시 또 오고 싶다. 하지만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서 이야기가 어떻게 발전될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시간이 흐르고 이야기가 진행되면 어떤 사진을 찍을지 알게 될 거다. 지금은 너무 이르다. 내가 가진 가장 큰 단점이자 불행은 어디에서건 사적인 만남을 가지기 굉장히 어렵다는 것이다. 어딜 가든 사진기자들이 쫓아다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국에 대해 깊이있는 감상을 가지자면 더 많이 와야 가능할 것 같다.

-한국에서 전시회를 갖고, 방문하게 된 계기를 말해 달라. =한국과 인연을 맺은 건 꽤 오래전이다. 달라이 라마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그에게 가르침을 받는 많은 한국인들을 알게 됐다. 달라이 라마는 한국 학생들이 굉장히 똑똑하다고 생각했고 나 역시 그랬다. 한국은 몽골을 방문할 때 많이 들렀다. 지난번 몽골에 갈 때도 들렀는데, 그때 기적같이 이 전시를 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어젠 정말 즐거웠다. 조계사에서 좀더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게 아쉽다. 절 건너편에 있는 채식 식당에서 지금껏 먹어본 것 중 최고의 음식을 먹었다. 먹어본 음식 중 최고였다고 말할 수 있다.

-영화배우로서와 사진작가로서 사는 건 굉장히 다른 일이지 않나. 어떤 차이가 있나. =내 사진들을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이건 굉장히 사적인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진들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생각이 없었다. 나 자신을 위한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 평가받을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사진 작업 자체가 내겐 아주 큰 기쁨을 안겨주는 일이었다. 영화는 수백명의 사람과 관계하는 일이고, 많은 이들과 하나의 프로젝트를 하는 건 멋진 일이다. 그 과정에서 서로간에 영감을 제공해준다는 점도 장점이다. 하지만 동시에 개인적으로는 협의해야 하는 부분들, 포기해야 하는 부분들이 생긴다. 사진작업은 영화와 달리 혼자 작업하는 일이고 그런 타협이 필요하지 않은 일이다.

-30년은 젊어 보인다. 비결이 뭔가? 한국 주부팬들에게 한마디만 해달라. =그런가? 사실은 93살이다. 한국 주부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법적으로 위반되는 일 같다. 여기 내 변호사와 함께 왔는데 그들에게 먼저 물어봐야 할 것 같다. (웃음) (시간관계상 질의응답을 끝내려고 하자) 떠나기 전에 딱 한 가지 정치적 질문을 받겠다.

-티베트에 대한 중국 정부의 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무도 정치적인 질문을 하려 하지 않는 것 같아서 내 맘대로 질문을 받았다. 내 사진들을 보면서 티베트 사람들의 극심한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중 부정할 수 없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사진이 하나 있다. 인도 다람살라의 수도원 벽에 붙어 있는 여러 그림을 찍은 사진인데, 티베트의 여승려들이 중국인에게 고문당하고 있는 내용이다. 1988년인가, 89년인가, 그 사진을 찍었는데 그로부터 며칠 뒤 비가 와서 그림이 다 지워졌다. 내가 찍은 사진이 아마 그 그림을 기록한 유일한 사진일 것이다. 1993년 중국 정부의 허락으로 티베트를 가게 됐고, 거기서 세명의 여승려를 만났다. 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막 나온 승려들이었는데 그때 내가 그림에서 본 것과 똑같은 고문을 당했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 그림을 찍은 사진들 사이에 여승려들을 넣어서 찍었다. 여러분이 그 사진을 볼 때 내 마음과 관점, 상황을 이해해야 내가 가진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종류의 고문이 여전히 중국 정부가 관할하는 티베트 내의 교도소에서 자행되고 있다. 그리고 그건 티베트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중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관련해서 다른 질문 없나? (질문을 던졌지만 시간관계상 질의응답은 더이상 진행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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