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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관찰과 통찰이 범람하는 유쾌한 수다의 홍수 <도약선생>

장대높이뛰기, 성도착, 계급문제를 한꺼번에 묶어서 이야기할 때 어떤 영화가 나올지 궁금하다면 <도약선생>을 추천한다. 윤성호 감독은 장대높이뛰기와 성도착의 경우, 장대높이뛰기 코치가 성도착이기는 하나 채식주의에 금욕주의자인 그가 장대에 집착하는 이유는 성적 상징 때문이 아닌 도약 그 자체에 있다고 설명한다. 이는 성도착에 걸린 한 남성이 집착하는 대상이 속옷 따위가 아닌 유토피아였다는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을 인용한 것이다. 장대높이뛰기와 계급문제의 경우는, 장대높이뛰기로는 집안의 계급을 바꿀 수 없다는 전직 육상선수의 대사에 제시된다. 이에 대한 장대높이뛰기 코치의 답은 역시 장대높이뛰기는 하늘에서 신을 만나고 대답을 듣는 도약이라는 설명한다. 결론적으로 장대높이뛰기, 성도착, 계급문제는 ‘도약’이라는 행위로 수렴되며 도약은 여주인공이 원하는 “크고 높은 것, 뭔가 늠름한 것”을 일컫는다. 왜 이렇게 수렴되어야 하며 수렴되는 원리는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곤란하다. 이유는 윤성호식 영화세계에 작동하는 원리 때문이다.

그가 마련한 허구의 세계는 “유턴-피턴-인턴-랜턴-윈스턴-워싱턴”식의 자유연상이 자유로운 세계다. 여기에는 매혹과 함정이 있다. 자유연상에 몸을 맡기고 리듬을 타면 한없이 즐거운 비행도 가능하지만 혹여 의구심을 갖고 리듬을 놓친다면 중력의 법칙에 의해 추락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가수 전영록을 닮은 전영록 코치(박혁권)는 사고로 성불구자가 된 뒤 병원에서 퇴원한 날 이상한 꿈을 꾼다. 장대높이뛰기도 김연아 같은 선수를 배출해야 한다는 소명을 계시받은 그는 “수평운동을 수직운동으로 바꿀” 방법만 찾는다면 세계적인 선수를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이 트레이닝할 선수를 찾아 헤매던 전영록 코치는 놀이공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학생 원식(나수윤)을 보자마자 후보로 낙점한다. 운동이라곤 해본 적이 없는 원식은 전영록 코치의 제안에 황당해하지만 룸메이트였던 우정(이우정)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도전하기로 마음먹는다. 남자답고 늠름한 것을 성취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우정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고 믿는 원식에게 장대높이뛰기는 절묘한 선택이었다. 전영록 코치는 과거 자신이 지도했던 재영(박희본)에게도 합류할 것을 권하지만 키가 작아 육상을 포기한 재영은 그의 제안에 코웃음을 친다. 그러나 코치와 원식의 절박함을 감지한 재영은 매몰차게 거절했던 말과 달리 그들과 어울려 연습에 참여하게 되고 점차 전영록 코치만의 독특한 트레이닝 방법에 매료된다. 코미디로서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 각종 트레이닝 모습은 관객을 포복절도하게 만든다. 사자 자세 요가 동작을 응용한 애니멀 트레이닝을 하는 인물들 사이로 오리배 머리가 서서히 다가오는 화면은 재기발랄하고 기묘한 윤성호 감독 고유의 영상문법이다.

아리랑TV에서 기획한 한국의 도시를 보여주는 프로젝트 ‘영화, 한국을 만나다’ 시리즈 중 하나인 <도약선생>은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출연진이 공동으로 각본을 쓰고 <무한도전> 찍듯이 촬영을 했다는 이 영화에는 윤성호 감독의 전작이 그렇듯 수다가 넘쳐난다. 대사는 물론이고 내레이션, 지문 등을 통해 감독의 관찰과 통찰이 범람하는데 이 수다의 홍수가 유쾌하면서도 일견 산만하다. 하지만 뭐, 인생이 꼭 질서정연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 넘치는 수다의 물결에 몸을 맡길 수도 있으리라. 스포츠영화이면서 전혀 스포츠영화답지 않은데 스포츠 정신의 핵심에 도달한 것 같기도 한 <도약선생>은 핵심을 비워야 또 다른 핵심에 도달한다는 <은하해방전선>의 내레이션을 실천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연애와 영화는 좋을수록 말이 없다는 <은하해방전선>의 내레이션은 위반한다. <은하해방전선>(2007),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2010), <도약선생>(2010)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기독교, 성적 욕망, 꿈, 영화라는 키워드가 앞으로 어떤 시냅스 구조로 연결될지 아리송하지만 그의 세계에 기꺼이 동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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