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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똥~ 우리가 홍자매야
이화정 사진 최성열 2011-07-14

드라마 <최고의 사랑> 홍정은, 홍미란 작가를 만나다

‘심장이 약한 분은 타지 마시오!’ 이를테면 놀이공원의 경고문 같은 포문이다. 무리한 설정, 과도한 캐릭터로 포문을 여는 건 홍자매 드라마의 표식이다. “비위에 거슬린다면 아예 보지 마시오!” 제작자와 시청자 모두를 향한 당돌한 문제제기에서 살아남은 건 결국 홍자매였다. 전작의 성공이라는 담보하에 홍자매는 <쾌걸 춘향> <마이걸> <환상의 커플> <쾌도 홍길동> <미남이시네요>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최고의 사랑>을 생산해냈다. 하늘 아래 어디에도 없던 홍자매식 로맨틱코미디를 확립한 홍정은, 홍미란 작가를 만났다.

-한 작품 끝내고 가장 편안한 시간, 충전의 시간이다. 홍정은_며칠 사이판에 다녀왔다. 아이가 3살인데 이번 여행은 완전히 아이를 위한 여행이었다. 홍미란_쓰는 동안은 정말 죽을 것 같았다.

-오죽하면 ‘홍자매는 넷이다’란 이야기가 있다. 둘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2인2조로 한팀이 한 작품 쓰고, 다른 팀은 또 다른 작품 기획 들어가는 방식으로 말이다. 2005년 데뷔 뒤 연달아 7작품, 최근엔 <미남이시네요> 이후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그리고 <최고의 사랑>까지 16부작 드라마를 쉬지 않고 썼다. 홍정은_따지고 보면 넷이 작업하는 게 맞다. 우리가 딸 넷에 아들 하나다. 그중 둘이 같이 대본을 쓰고 있다. 그리고 형제 중 한명이 보육원을 해서 실질적으로 내 육아문제를 해결해주고 있고, 외국 나가 있는 다른 형제도 도와주고 있고. 가족 협업 체제다. 홍미란_이렇게 밖에 작업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미남이시네요> 끝날 즈음에 인터뷰하면서 다음 작품은 뭘 하겠다고 하니까 바로 캐스팅이 시작되더라. 이번에도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끝나고 MBC에서 자체 제작 드라마를 한다고 해서 하려고 했다. 박홍균 감독님이랑 한다는 제안이 와서 더 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미 도장 찍는 순간 날짜가 5월로 박히더라. 빼보려고 앙탈도 부렸지만 소용없었다. (웃음) 홍정은_기자분도 마감하니 알겠지만, 사람 머리는 마감 때면 다 돌아간다. (웃음) 근데 정말 죽을 것 같았다. 1층이 주거공간이고 2층이 작업실인데 1층에서 아이 못 올라오게 담을 쌓고 일했다. ‘띵똥~’ 같은 웃긴 대사를 우린 울면서 쓴 거다. 솔직한 말로 감옥 가기 싫어서 썼다. 안 쓰면 계약 파기하게 되는 거니까.

배우보단 캐릭터

<쾌걸 춘향>의 한채영, <마이걸>의 이다해, <환상의 커플>의 한예슬, <미남이시네요>의 박신혜 등 홍자매는 채 이미지를 형성하지 않은 배우들을 위한 최상의 매뉴얼을 내어주는 데 능한 캐릭터 조물주다. 스타 캐스팅의 본격적인 시도라 할 만한 신민아<(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역시 연기 면에선 도전의 성격이 강했다는 점에서 이번 캐스팅은 의외다. 노련함과 스타성을 갖춘 배우 차승원, 공효진을 전면에 부각시킴으로써 <최고의 사랑>은 초반 시너지를 안고 출발했다.

-스타 캐스팅에 구애받지 않는 홍자매만의 기준에선 벗어나 보인다. 홍정은_작정하고 갔다기보다 이번엔 아귀가 잘 맞았다.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할 때 공효진씨가 신민아씨한테 ‘내가 카메오해줄게’ 했다더라. 덕분에 공효진씨 캐스팅이 수월하게 됐다. 마침 차승원씨가 그즈음에 맘먹고 로맨틱코미디를 찾고 있었는데 공효진씨가 상대역이라니 또 호감을 보였다. 홍미란_배우 캐스팅은 워낙 변수가 많아서 이번엔 이렇게 해야지 하고 갈 수가 없다. 그동안 몇 번씩 바뀌면서 한 선택들도 많았다. 홍정은_우리 작품은 배우가 작품의 캐릭터에 맞춰줘야 한다. 어떤 배우를 따라가기에는 드라마 캐릭터의 성격이 너무 세다. 대본을 배우와 상관없이 쓰는 편이고, 그래서 어떤 배우가 됐든 이른바 배우를 타지 않는다. 홍미란_다 해봐서 이미 보여준 걸 다시 보여주는 사람보다 새로 보여주는 게 효과적이다. <환상의 커플> 때 한예슬씨 경우도 경력있는 배우를 이야기하다가, 그러느니 한번 ‘빵 터지는 걸’ 지향하자고 합의를 봤던 게 먹혔다.

-첫 방송의 성과가 미니시리즈의 시청률을 담보하는 시장 구조에서 이런 원칙은 모험일 수 있다. 홍미란_캐스팅이 흥행의 척도가 되는 건 맞다. 그런데 손에 꼽히는 톱스타 말고 첫 방송 시청률을 보증해줄 스타가 몇이나 되나. 처음 시작할 때 주목받지 못하더라도 캐릭터의 폭발력을 가져가는 게 의외성 면에서는 더 효과적일 거라는 믿음이 있다. 물론 그렇게 캐스팅하고 ‘살포시’ 부담은 안고 간다. (웃음) 홍정은_맞다. 모험이기 때문에 톱스타가 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이상에 불과하다. 이상과 현실을 타협했을 때 가장 좋은 건 어정쩡한 스타가 와서 하고 싶은 대로 하느니 한방이 있는 배우들이 ‘목숨 걸고’ 해주는 거다. 그동안 우리 작품의 캐스팅 중 몇명은 제작사에서 죽어도 안된다고 한 적이 많았다. 드라마 하자는 거야 말자는 거야라는 반응이 온다. 이른바 국장들이 재떨이 던지는 캐스팅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실망을 주었던 캐스팅이 결과적으로는 반응이 좋았다. 그러니 이제는 덜 괴롭힌다. 첫 방송 시청률이 안 나와도, 화제성이라도 있겠지, 두고 봐야지 하는 믿음 정도는 가져준다.

-차승원이라는 베테랑 배우가 시너지도 될 수 있었지만, 그런 원칙이라면 캐릭터를 입히기엔 되레 방해가 될 수도 있었다. 홍미란_독고진이란 이름 자체도 차승원씨를 만나고 거기에 맞춰 나왔을 정도로 차승원이라는 배우가 준 영향이 크긴 했다. 그런데 차승원씨가 그동안 코믹 장르에선 폭발했지만, 코믹멜로는 아직 없었다. 코믹은 자타공인 최고이고, 카리스마도 철철 넘치지만 우린 로맨틱코미디, 멜로적인 측면에서 차승원이란 배우가 얼마나 멋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그건 전작의 다른 배우와 마찬가지로 분명 도전지점이었다. 홍정은_차승원씨가 대본을 보고 바로 출연 결정을 한 것도 그전의 코믹이 생활코미디였다면 이번엔 멜로가 가미됐다는 새로움 때문일 거다. 2천만원짜리 디오르 슈트를 입고 멜로를 하는 연기는 차승원씨에게 생소한 경험이다. 홍미란_차승원씨의 페이스가 주도적이었을 거라는 선입견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 놀란 게 차승원씨는 본인이 완벽하게 계산해서 연기를 한다. 몇번이고 연습한 것, 완벽하게 합이 맞춰진 계산된 연기다. 애드리브를 한다 해도, 그 애드리브조차 연구하고 생각해서 한다. 홍정은_우리 캐릭터가 과장돼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원맨쇼가 돼서는 안된다. 이건 <개그콘서트>가 아니다. 현장에서 아무리 웃겨도 그게 드라마로 붙여졌을 때는 전혀 안 웃길 수도 있다. 차승원씨 연기는 독특한데도 도드라지지 않고 묻어간다. <선생 김봉두>에서 아이들이랑 같이 있을 때 보면 극에 완벽히 묻어간다.

홍정은

스토리 라인? 없다!

홍자매 드라마는 끝나도 캐릭터는 남는다. 지금도 남해 어딘가에 가면 머리를 풀어헤친 나상실이 ‘꼬라지하고는~’ 하고 달려나올 것 같고, MBC 로비를 어슬렁거리다 보면 개구리 복장을 한 구애정이 뒤뚱거리며 힘겹게 걷고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스토리가 아닌 일정 상황 안에서 행동하는 홍자매의 캐릭터들은 드라마보다는 시트콤이나 예능 프로그램의 인물에 더 가깝다. 드라마에선 응당 하지 않아야 할 과장된 설정과 캐릭터의 향연. 시청자로서 홍자매 드라마를 본다는 건 바로 기존의 로맨틱코미디 드라마와 전혀 다른 이 엉뚱한 홍자매식 화법에 적응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의 문제다. 단 1%의 시청률이라도 더 모아야 하는 미니시리즈 1∼2회. 홍자매는 그 격전의 장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실험을 고수하고 있다.

-독고진이란 캐릭터는 드라마 초반부터 쭉 고수해오는 주인공의 변주다. 나상실(<환상의 커플>)의 완벽한 변주이자 <미남이시네요>의 황태경과도 맥을 잇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남부러울 것 없지만 상실과 상처를 가진 인물들이다. 홍미란_드라마의 기본이 하자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 사랑하면서 채워나가는 것이다. 독고진은 독고진대로 상실이는 상실이대로 센 캐릭터지만, 막상 플레이를 했을 때는 독고진은 애정이 같은, 나상실은 철수 같은 평범한 사람이 필요한 거다. 그 과정을 통해 변화를 겪지만, 물론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되진 않는다. 나상실은 여전히 ‘닥쳐!’, ‘꼬라지 하고는’을 하고, 독고진은 사랑을 해도 ‘나 독고진이야!’하고 계속 잘난 척하는 거다. 홍정은_우리 드라마는 이야기 구조가 세지 않다. 평범한 사람들이 어마어마한 사건에 휘말려서 풍랑에 흔들리는 낙엽처럼 역경을 헤쳐나가며 사랑을 겪는 이야기가 아니다. 캐릭터와 캐릭터끼리, 사람과 사람과의 충돌이 중심이다. 16회를 끌어가는 것은 결국 이 사람들의 삶이 그 충돌을 통해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출생의 비밀, 절대 해서는 안될 사랑 같은 건 우리 드라마에 없다. 독고진과 구애정도 종이컵 버리라는 시비 같은 사소한 걸로 만나고 인연이 된다. 그래서 사람이, 캐릭터가 위주가 되어야 한다.

-데뷔작인 <쾌걸 춘향>이 나왔던 2005년은 김은숙 작가의 <파리의 여인>이 나와 화제를 모았던 해다. 갈등구도를 통한 스토리 중심의 로맨틱코미디가 대세인 상황에서, 당돌한 현대판 춘향이를 내세운 건 변칙이었다. 홍정은_<쾌걸 춘향> 때 “이게 무슨 드라마야!” 하고 난리가 났다. 처음부터 갈등구조도 없이 캐릭터들이 나와서 휴대폰 하나 가지고 싸우는 게 시작이니 국장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톱스타도 아닌 신인 한채영이 주연이었지. 그럼에도 방송사에선 편성 펑크가 나서 갑자기 제작한 거라 다른 대안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틀어야 하는 거다. 그런데 그게 빵 터진 거다. 정말 운이 좋았다. 보통 다른 드라마처럼 1년 정도 준비하면서 신인작가가 신인임에도 자기 색깔 내고 간다고 했다면 바로 탈락했을 거다. 홍미란_생각해봐라. 당장 ‘몽룡’, ‘춘향’이란 이름부터 걸고넘어질 일이었다. 그런데 방송사에서 우리한테 그런 의문을 제기하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웃음) 말도 안돼! 웃겨, 라고 할 시간조차 없었던 것이다. 우리한텐 그게 행운이었다. 홍정은_그 누구도 이 드라마를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상한 요구도 오히려 들어주게 된 거다. 광한루 넘는 장면을 여배우한테 와이어 타고 하자고 하는데도, 그냥 담 넘고 가지, 하지 않고 다 들어준 거다. 배우들도 당시엔 신인이라 겨울에 그 추운데 물에 빠지라는 것도 마다않고 해줬다.

-캐릭터 중심의 드라마는 6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전무한 홍자매의 전매특허다. 홍정은_예나 지금이나 사정이 마찬가지다. (웃음) 지금이 7번째 드라마지만 이번에도 여전히 감독님이 불안해하시더라. 우리 드라마는 독고, 애정 캐릭터가 달랑이다. 당연히 다른 드라마에 있는 스토리 라인이 없기 때문이다. 후반부에 독고가 심장이 아프고 사랑을 확인한다, 정도는 있지만 정말 달랑 그거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홍미란_사건이 하나 있으면 2회 분량 정도는 그 사건을 가지고 갈 수 있지만, 우리 드라마에는 그런 게 아예 없다. 수술한다는 사건이 있지만 그것도 후반부인 13∼14회 정도가 돼야 비로소 나온다. 그러니 매 순간 캐릭터를 지키기 위한 에피소드를 계속 투입해야 한다. 홍정은_질질 끄는 게 없다. <환상의 커플>도 기억을 상실한 여자가 남해에 떨어졌는데 초반에 기억을 찾고 나머지는 유부녀이자 부자인 과거로 돌아가고 철수와의 꼬인 사랑을 끌어갈 수도 있었다. 근데 우린 기억을 찾기까지 14회를 버틴다. 독고도 심장수술을 좀더 빨리 하면, 그걸로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 아픈데 구애정한테 숨기고 사랑을 한다거나 이런 것들 말이다. 그런데 15회에 매니저 대표(최화정)가 ‘독고진은 수술에 성공했습니다’로 짧게 정리해버린다. 그게 우리가 캐릭터를 유지하는 방법이고, 우리의 색깔이다.

-홍자매가 생각하는 로맨틱코미디의 이상적 틀을 반영한 선택이라고 보인다. 홍미란_그렇다고 우리가 기존의 드라마 트루기를 따르는 작품들을 부인하는 건 아니다. 단지 우리의 성향이 재밌는 캐릭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둘 다 답답한 걸 못 참아서 사건 꼬고 이런 걸 잘 못한다. 이 말만 하면 풀리는 건데 그걸 말 안 하고 몇부 뒤에 보여주고 이런 건 못한다. (웃음) 홍정은_우리도 드라마가 센 작품들을 재밌어하고 좋아한다. 임성한 작가 작품도 잘 보고 좋아한다. 그러나 가령 아이를 사이에 두고 족보 바꾸는 거, 이런 거 안 좋아한다. 작가가 너무 공격하는 걸 보면 왜 그러지 하는 의문이 들게 된다. 분명 가족애, 사랑, 인간미 측면에서 지켜야 할 정서가 있는데 그걸 무너뜨리고 불편하게 가는 건 아니라고 본다. 홍미란_우린 무조건 캐릭터를 사수해야 한다. 캐릭터가 해서는 안되는 걸 한번만 하면 그 캐릭터가 무너진다. 독고는 어느 순간에도 찌질한 짓을 하거나, 약하게 무너지면 안된다. 무리한 설정을 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에피소드 짜기가 힘들어 죽을 것 같다.

홍미란

-그래서 16회가 되면 흥행 여부와 상관없이 칼같이 드라마를 접는 건가. 홍자매 사전에 연장이란 없어 보인다. 홍정은_이야기 중심으로 가면 주인공의 엄마, 친구들 같은 조연 역할들이 있는데 우린 주연의 역할이 처음부터 끝까지 줄지 않는다. 게다가 사건이 없으니 12회 정도가 딱 좋은데 방송 구조상 16∼20회가 최소다. 그래서 16회로 가는 거고 그 이상은 우리도, 배우들도 힘들다. 홍미란_정말이다. <미남이시네요>에서 박신혜는 한신 빼고 다 나왔다. 주연의 역할이 줄어드는 장면이 없다. 주연배우가 90%에서 심하게는 100%를 해내야 한다.

현실의 쓴맛을 아는 사랑

말리는 시어머니 따윈 애초 없다. 홍자매 드라마에서 사랑의 장벽은 외부요소에서 오지 않는다. 로맨틱코미디가 ‘사랑’이라는 합일점을 향해 무수한 장치를 깔아놓고 달리는 계주라면, 홍자매 드라마는 그 계주의 결승점에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사랑’을 철저하게 이용한다. 사랑을 베이스로 <마이걸>의 주유린은 생활을 찾고 <환상의 커플>의 나상실은 인간성을 회복했고, <미남이시네요>의 황태경은 뒤늦은 성장을 했다. <최고의 사랑>은 추파춥스 같은 달콤한 20대의 사랑에 전념했던 홍자매 드라마 중 가장 연령대가 높은 30대 후반으로 껑충 뛰어오른다. 25도 쓴 소주를 마시는 어른이 되어서도 홍자매가 보여주는 사랑의 양상이 달라지진 않는다. 독고진이 사랑을 하게 된 건 구애정이 겪는 현실의 쓴맛을 목도하면서부터다.

-사랑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캐릭터들에서 벗어났다. 일은 기본적으로 하고 그러다 사랑도 하고, 사랑을 해도 일상의 고민은 계속된다. 홍정은_우리 캐릭터들은 아무리 사랑해도 모든 걸 다 포기하지 않는다. 사랑이 뭐라고 여자가 뭐라고. 남녀간의 목숨 거는 사랑, 다 팽개치는 사랑이 아니라 상대 때문에 반대로 돌아보고 채우는 사랑이다. 14∼15회가 되면 상대가 필요하니 희생하게 되지만, 무작정 이성에게 미치는 건 없다. 사람이 먹고도 살아야지 어떻게 사랑만 하나. 홍미란_내 사랑을 위해 남을 희생하는 건 없다. 우리 캐릭터 중 유일한 재벌이었던 <마이걸>의 공찬(이동욱)도 진짜 열심히 일했다. 공찬이 아무리 유린(이다해)이 좋다고 해도 낮에 일 안 하고 다녀도 되는 게 아니라 항상 퇴근하고 만났다. 낮에 놀러다니는 신이 없다. 어떻게 여자만 따라다니냐. 홍정은_그래서 잘 보면 우리 드라마는 남자주인공들이 여주인공에게 별로 해준 게 없다. 비싼 밥, 옷 사주는 장면 거의 없다. 재벌 공찬이가 했던 최고의 호의가 바닷가재 사주는 거였다. 홍미란_이벤트성 애정과시는 없다. 그걸 날름 받아먹는 여자도 싫다. 받고도 안 받은 척하면 그런 여자는 매력이 없다. 애정이가 필주한테 받고도 안 받은 척하면 그건 줄타기가 된다. 홍정은_내가 공주 대접 한번도 못 받고 살아서 그런 것 같다. (웃음) 남편에게도 내가 밥을 사주면서 만난 그런 비애가 있다. (웃음) 차승원씨가 4회 끝나고, “이제는 멋있는 거 해야 하지 않겠어? 먹을 것도 사주고” 하더라. 작정하고 멋있게 보이려는 건 아니라고 했고, 드라마 나온 걸 보고선 적응하시더라.

-판타지 장치는 여전하지만, 이번엔 순간적으로 정신이 번쩍 들 정도의 생활의 비애가 뒤따른다. 구애정이 매니저에게 맞는 순간, 맨 바닥에서 텀블링을 하는 순간 판타지가 지독한 현실고로 다가온다. 홍미란_전작에서 기억상실증이나 남장 이런 것들은 재밌는 사건이지만 공감대가 가는 인물은 아니다. 이번엔 현실적인 공감대를 가져가자 했다. 찾다보니 연예인이었지만 처음에 설정할 땐 농촌도 생각했다. 그런데 연예계가 굉장히 현실적인 공간이더라. <미남이시네요>의 판타지성 같은 연예계가 아니라 전 국민이 참관하는 현실의 연예계, 그 속에서 살아가는 생계형 연예인 말이다. 홍정은_누구나 한두번씩은 연예인 이야기를 하게 된다. 에피소드 보면 이런 것들이 내가 어떤 연예인을 욕했던 거, 그들의 결혼 이야기, 이런 것들과 쉽게 매치된다. 그래서 더 빨리 와닿았던 것 같다. 홍미란_애정이가 매니저에게 맞는 순간 독고도 돌아서지 못하고 낚인다. 시청자 모두 구애정에 가깝다. 그리고 어느 순간 독고 같은 남자에게 구원의 손길을 받고 싶은 판타지가 있다. 연예계의 계급 구조에서 가장 최상의 톱스타와 가장 밑바닥의 누군가가 만난 거다. 그게 여느 드라마의 실장과 말단 직원과도 비슷해 보이지만, 애정이 겪는 수많은 사건에 대해서 우리 모두 한번쯤 떠들어본 적이 있고 그래서 사실상 더 가까운 현실처럼 느껴지는 거다.

이상한 나라의 홍자매

2005년 데뷔, 총 생산작품 7편. 와이어와 문자가 화면을 날아다니고, 판타지와 코믹멜로가 이종교합을 하는 이 이상한 홍자매식 화법에 시청자는 때로 마니아가 되어, 때로 대중이 되어 열광해왔다. 홍자매의 작업공정을 통해 그 비결을 추적해보았다. 이 웃음이 24시간 오로지 자매만이 고립된 고통의 시간에서 오는 것이라면 믿겠는가.

-협업은 어떤 과정으로 이루어지나. 캐릭터별로, 혹은 에피소드별로 담당이 있는가. 홍미란_처음엔 캐릭터를 잡는 게 일의 전부다. 캐릭터의 어투를 결정하고 특징적인 대사, 예를 들면 ‘나는 독고진이야~’, 이런 걸 잡는 1∼2회 대본에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린다. 초반 작업이 전체 드라마 작업량의 반이 된다. 계속 회의하는 방법밖에 없다. 어떻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홍정은_엄청난 양을 일단 만들어놓고 그걸 계속 버리는 작업을 한다. 그 과정을 혼자 하는 건 너무 힘들다. 아무것도 아닌 에피소드도 계속 회의를 하면서 눈덩이 굴리듯 만들어나간다. 그런 눈덩이가 하나하나 쌓이고 그걸 엮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는데, 그 과정을 24시간 동안 계속 이야기하면서 만든다. 잠자는 시간 빼고는 계속 이야기하다보면 두 사람의 머릿속의 캐릭터가 하나로 비슷해진다. 그렇게 우리의 캐릭터가 만들어지면, 그 캐릭터를 주유소에 데려다놔도 분장실에 데려다놔도 어떻게 될지 답이 나온다. 독고진의 설정은 이 세상 모든 로맨틱코미디 남자유형과 다르지 않다. 까칠하고 부족한 부분이 있는 좀 뻔한 남자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독고진이 나오는 거다.

-24시간 동안의 협업은 역시 자매라서 가능한 체제라고밖에 볼 수 없다. 홍정은_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회의한다. 식구라서 가능한 형태다. 10시부터 시작해서 시간되어 퇴근하면 나올 수가 없다. 홍미란_일할 땐 내 생활, 개인은 없어진다. 밖에도 못 나가고 일만 한다. 5~6개월을 감독님 말고는 안 만나는 거다. 그렇게 외부랑 차단을 하다보면 어떤 사소한 것, 영화와 드라마에도 영향을 받게 된다. 그땐 다른 식구들도, 인터넷 게시판 글도 안 본다. 이번에도 인터넷 선을 아예 빼놓고 작업했다. 홍정은_우리 드라마가 워낙 코믹 성향이 강하니 수다 떨듯 웃다보면 나오겠지 싶지만 과정은 전혀 그렇지 않다. 홍미란_일주일에 자그마치 70분짜리 드라마 두편을 만드는 구조다. 한국 드라마 상황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원래 경력 8년차, 5년차 예능작가였는데 어떻게 드라마작가를 하게 된 건가. 홍정은_우리 아버지 소망이 내가 공무원 되는 거였다. 전공도 행정학과였고. 미란이는 사범대 나왔으니 당연히 교사를 하기 바라셨고. 당시에 아는 언니가 방송작가였는데 재밌어 보여서 시작했다. 미란이는 그때 다른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정확히 짜여진 출퇴근을 하다 보니 내 생활이 자유로워 보였던 거다. 그래서 구성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처음엔 그래도 같이 일할 일이 없었다. 난 MBC, 미란이는 SBS에서 일했다. 난 결혼해서 따로 살았는데 미란이가 매일 집에 놀러와서 일 말고 같이 TV도 보고 비디오 보고 그랬다. 마침 우연히 방송사에서 3개월 공백을 메울 드라마가 필요했고, 그걸 하게 된 거다. 홍미란_우린 그걸 할 때도 예능의 연장으로 한 거다. 홍정은_<쾌걸 춘향>이 안됐으면 각자 본업으로 갈 태세였다. 예능일을 본업으로 하면서, ‘이것도 한번 해볼까’였다. 홍미란_대본도 예능회의 하듯이 썼다. 갑자기 둘이서 처음 드라마를 하려니 뭐가 잘되겠나. 시트콤이나 예능에서 드라마타이즈의 대본작업은 계속 해왔으니 그냥 기존보다는 좀 긴 버전의 회의를 하는 셈치고 했다. 홍정은_<쾌걸 춘향> 끝내놓고 보니 같이 놀 사람이 없더라. 가족이니 쉬는 시간도 같이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계속 같이하게 됐다. 이젠 생활 자체가 일이다. <쾌도 홍길동>과 <미남이시네요> 사이에 내가 임신, 출산 때문에 쉰 1년을 제외하고는 계속 같이. 7년 넘게 내리 함께하게 됐다.

-판타지와 코믹, 황당한 시추에이션 등 홍자매 드라마를 특징짓는 이 모든 것의 근원은 언제부터, 어디서 나왔나. 홍정은_사실 뭐든 다 본다. 우린 TV도 책도 만화도 가리지 않고 다 본다. 그중에서 단연 지배적인 건 홍콩영화였다. <개심귀> <천녀유혼> 뭐든 다 봤다. 홍콩영화에는 다 있다. 멋있는 주윤발이 막 망가지는 코미디도 있다. 굉장히 센 멜로부터 코미디까지. 설정이 세더라도 이야기를 따라가게 된다. 홍미란_집에서 비디오 빌리는 거 가지곤 뭐라고 안 하셨다. 1만원, 3만원 이렇게 정액제로 하고 다 빌린다. 중·고등학생 때 밤새도록 하루에 한 6편씩 빌려와서 보고 그랬다. 아침부터 밤까지 봐도 질리지 않는다. 홍정은_홍콩영화는 한번 잘되면 그 아류 시리즈가 계속 나오지 않나. <동방불패> 나오면 <서방불패> 나오고. 우린 아류작까지 모두 다 봤다.

-다음 작품도 같이 가는 건가. 홍정은_얘가 제 돈을 가지고 튀지 않는 한 계속 이 생활을 할 것 같다. 홍미란_남도 아니고 자매가 싸워봤자 어딜 가겠나. 우린 지난 작품은 안 돌아본다. 다음 작품이 최고의 작품이라 생각하니 다시 또 시작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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