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ovie > 무비가이드 > 씨네21 리뷰
이미 수많은 네티즌 관객은 열광했다 <세 얼간이>
강병진 2011-08-17

봉인이 풀렸다. 불법 다운로드에 갇혀 있던 인도영화 <세 얼간이>가 드디어 관객과 만난다. 이미 수만 관객을 열광시킨 <세 얼간이>의 매력은 순박한 주문에 있다. “두려움이 가득하면 너의 마음을 속여봐. 마음은 바보라서 그 주문에 쉽게 매혹될 거야. 알 이즈 웰!(All is well)” 모든 게 잘될 거란 믿음은 곧 남자는 연인을 얻고, 루저는 성공하고, 비밀은 기필코 밝혀진다는 인도영화의 해피엔딩이 지닌 매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 얼간이>의 판타지는 머나먼 한국 땅의 관객까지 공감할 만큼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과 결부돼 있다.

<세 얼간이>에서 ‘알 이즈 웰’의 주문을 전파하는 이는 인도 최고의 공과대학생인 란초(아미르 칸)다. 입학 첫날부터 남다른 모습을 보인 그를 파르한(마드바한)과 라주(셔먼 조시)는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똑같이 배운 지식도 더 넓게 응용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고, 매사 관습에 도전하기를 즐기는 란초는 학점에 매달리는 다른 학생들보다 자유로운 대학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총장에게 졸업을 인정받지 못한 친구가 목을 매고 자살한다. 란초는 총장에게 일갈한다. “다들 자살이라고 생각하죠. 그런데 지난 4년간의 스트레스는 왜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거죠? 이건 자살이 아니라 살인이에요!” 아이디어를 발견하기보다 다국적 기업의 취업을 우선으로 삼는 대학 안에서 학생들은 생각을 접고 책을 외우는 것에만 골몰한다. 이때부터 학교의 시스템에서 벗어난 란초의 생각과 행동은 친구인 파르한과 라주까지 변화시킨다. 공부에 전념하지 않은 채 갖가지 소동을 일으키는 그들을 사람들은 ‘얼간이’라고 부른다.

<세 얼간이>는 인도 소설가 체탄 바갓의 작품이 원작인 영화다. 실제 델리 인도 공과대학을 졸업한 작가의 원작과 영화는 중심인물과 몇몇 에피소드만을 공유하고 있다. 가장 크게 다른 점은 학교 시스템에 저항하는 행동을 바라보는 태도다. 영화의 란초에 빗댈 수 있는 원작의 라이언은 진정한 교육에 대한 개인적인 철학이라기보다는 반항심으로 학교 시스템에 저항한다. 이를테면 평점 5점대의 학생들이 필기와 과제를 공유하면서 아예 모두 같은 점수를 받고, 이를 통해 대학의 상대평가 시스템에 도전하는 동시에 자유로운 대학 생활을 즐기자는 식이다. 하지만 연락이 끊긴 란초의 자취를 찾아가는 파르한과 라주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처음부터 란초를 지구 밖에서 떨어진 듯한 신비로운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위기의 순간에 뛰어난 기지를 발휘하고, 똑같이 공부를 안 해도 시험에서는 1등을 차지하는데다, 주변 사람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주는 이 남자는 사실상 <세 얼간이>가 지닌 매력의 심장부다. 영화의 주제 또한 그의 입에서 나온다. “너의 재능을 따라가면 성공은 뒤따라올 거야.” “사람을 브랜드와 가격표로만 평가해서는 안돼.” “공부는 마음에서 우러나서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다소 낯간지러운 대사인데다, 그다지 현실감없는 영웅을 보는 듯하지만 란초를 통해 꿈을 이룬 파르한과 라주에게 그는 사실상 키팅 선생님이나 다름없다. 키팅의 ‘카르페 디엠’에 마음이 동했던 관객이라면 란초의 ‘알 이즈 웰’ 또한 마음에 두게 될 것이다. 47살의 나이에도 대학생을 맡은 아미르 칸의 매력 또한 몸과 마음이 건실한 이 청년을 신뢰하기에 적절해 보인다.

불법 다운로드의 세계에서 <세 얼간이>는 164분 버전으로 유통됐다. 한국에서는 인도 제작사가 만든 120분짜리 인터내셔널 버전에 약 20분을 추가한 141분으로 상영된다. 기존의 인도영화처럼 3시간에 육박하는 길이의 영화를 부담스러워하는 극장의 입장을 고려한 수입사의 선택이다. 재편집 과정에서 란초와 피아(카리나 카푸르)가 선보이는 4분 분량의 뮤지컬장면이 사라졌다. 흔히 ‘마살라영화’로 불리는 인도영화만의 특징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을 보지 못한다는 건 아쉬운 점이다. 배우들의 춤과 표정, 무대와 의상 연출 등 영화의 공력이 가장 밀도있게 집약된 장면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이야기의 진행을 따라가기에 무리가 있는 정도는 아니다. <세 얼간이>는 흔히 춤과 노래 때문에 러닝타임이 길다는 인도영화에 대한 선입견을 불식시킬 만큼 음악보다 극적인 에피소드가 많은 영화다. 음악에 빗대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수많은 후크들로 채워졌다고 할까. <세 얼간이>는 우정과 사랑, 가족애, 교육에 대한 가치와 진정한 삶, 그리고 춤과 노래까지 다양한 테마를 즐길 수 있는 종합선물세트다. 수만건에 달한 다운로드 수, 약 1만명의 네티즌이 참여한 인터넷 평점에는 그에 걸맞은 이유가 있는 법이다.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