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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관객을 향한 소더버그식 공포스릴러 <컨테이젼>
이화정 2011-09-21

“시나리오 잘 보고, 읽고 나선 꼭 손도 씻도록 해.” 맷 데이먼은 스티븐 소더버그가 시나리오를 건네며 한 말을 잊지 않았다. 말대로 그는 손을 자주 씻게 됐고, 자신뿐 아니라 아이들의 위생관념까지 돌아보게 됐다. <컨테이젼>에 출연한 로렌스 피시번이나 기네스 팰트로 역시 데이먼과 마찬가지 상황을 연출했다. <컨테이젼>은 이른바 21세기형 질병이라 불리는 접촉성 전염병에 대한 본격 해부다. 조류독감과 신종인플루엔자 등 최근 급속도로 증가하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에 대한 경각심이 날로 고조되는 상황, 전세계 1일 생활권의 도입으로 재난은 미처 손을 쓸 사이도 없이 나의 현실이 된다. 성별, 나이, 직업, 지위를 막론한 무차별적 공격, 바로 <컨테이젼>의 공포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재난의 실체는 21세기형 최첨단이지만 소더버그가 이 재난을 그리는 것은 사뭇 고전적인 카운트 방식으로 진행된다. 영화의 시작은 D-2. 즉, 재난의 둘쨋날이다. 홍콩국제공항, 갈아탈 비행기를 기다리는 베스(기네스 팰트로)가 마른기침을 하고, 바텐더에게 신용카드를 건네주는 순간, 남은 100분 가량 화면을 장악할 보이지 않는 세균도 함께 클로즈업된다. 일단 운을 뗀 뒤, 세균이 퍼지는 속도감은 상상초월이다. 집으로 돌아온 베스는 갑작스런 고열로 응급실에 실려가고, 그리고 미처 손을 쓸 사이도 없이 곧장 죽어버린다! 베스에게 감염된 어린 아들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일단 시작된 카운트다운은 베스가 있는 미국을 비롯해 홍콩, 시카고, 런던, 파리 등으로 확산을 멈추지 않는다. 소더버그는 재빠르게 <오션스> 시리즈의 멋쟁이 도둑들을 좇던 카메라워크로 배우와 배우 사이를,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바이러스의 희생자들을 기록한다.

기네스 팰트로를 등장 10여분 만에 가차없이 죽여놓고도 영화는 일말의 동정이나 연민을 드러내지 않는다. 영화가 집중하는 것은 부인의 갑작스런 죽음에 충격을 받은 남편(맷 데이먼)의 상념이 아닌, 개복된 베스의 두개골이다. 바이러스의 실체는 박쥐의 병균이 돼지로 옮아가 생긴 치명적 무기다. CDC(질병관리본부)에선 치료약 개발에 분주하고, WHO(세계보건기구)는 바이러스의 근원지를 찾고자 제네바에서 홍콩으로 요원(마리온 코티아르)을 급파한다. 물론 이 사이에도 전세계에서 사망자는 속출한다. 치료약 개발을 위해 파견된 과학자(케이트 윈슬럿)마저 전염병에 걸리고 그 사체가 비닐에 포장되는 충격적인 장면이 연출되는 순간, <컨테이젼>은 더이상 스크린에만 존재하는 영화이길 거부한다. 물론 혼란을 틈타 군중심리를 조장하며 유명 스타가 된 블로거(주드 로)를 통해 급속하게 퍼진 인터넷 망과 바이러스의 속성을 비교한다거나, 좀비영화를 방불케 하는 황폐화된 도시를 통해 재난에 노출된 현재의 인류를 중계하는 것 같은 진부한 스토리라인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쯤 되면 소더버그의 의도가 궁금해진다. 그가 잠시 질병관리본부로부터 바이러스 경각심을 일깨워줄 선전용 영화를 만들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고 해도 설득력이 있을 지경이다. 그 정도로 <컨테이젼>의 바이러스는 순수한 바이러스 결정체다. 할리우드의 유명 스타들은 기꺼이 바이러스라는 주연을 위해 자리를 내어주며, 바이러스를 통해 정치나 경제적 꼼수가 도사리고 있다는 식의 폭로전도 없다. 영화를 보면서 외려 되뇌이게 되는 것은 과학자 역의 케이트 윈슬럿이 동료에게 (위생적인 차원에서) “제발 네 얼굴 좀 그만 만져!”라고 하는 날 선 경고와 옆자리에서 기침을 하는 누군가를 피하고자 하는 마음뿐이다. 극장을 나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손을 자주 씻어야겠다, 악수를 하지 말자는 실질적인 지침들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꽤 오래 지속되는 학습효과다. 그럼에도 잊지 말아야 할 건 <컨테이젼>이 손이나 씻자고 만든 학습용 다큐멘터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소더버그는 극적 장치의 완벽한 배제라는 방식을 통해 가장 극적인 공포를 연출해내는 데 성공한다. 21세기의 관객에게 가장 먹힐 것 같은 실질적 두려움의 본질을 꿰뚫은 결과다. 그러니까 이게 바로 소더버그가 진짜 의도했던 공포스릴러의 신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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