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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정의 예술판독기] 풍경과 조망의 정치사회학

안드레아스 구르스키의 <코팡>(Copan), 2002년

널찍한 대정원이 사유 재산이던 18세기 유럽 귀족에겐 조망권이란 개념 자체가 생소할 것이다. 높은 인구밀도로 가옥들이 밀집된 현대적 주거 조건에서, 부와 권력을 모두 거머쥔 실력자라 한들 인접 건물의 부피와 각도에 따라 전망의 일부는 쉽게 훼손되기 십상이다. 조망권 확보를 위해 법적 분쟁이 이어지는 이유다. 대기업 오너간 소송까지 연결된 조망권 다툼은 한쪽이 다른 쪽 집을 구입해버림으로써 일단락되었다. 그림에서 인물의 크기를 작게 그리는 대신 배경에 넉넉한 여백을 배당한 흔치 않은 풍경화도 있다. 인물보다 그의 소유 부동산을 과시할 목적에서다. 전망의 확보를 드러내는 건 그 소유자의 능력과 지위를 증명하는 방편이다. 오늘날 관광지 중에는 한 시절 군사시설이던 곳이 많다. 경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높게 쌓아올린 성채나 요새의 넓은 시야가 우연히 현 시대 관광객의 조망 욕구와 맞닿기 때문이다.

조망권은 유려한 자연 경관을 바라볼 권리를 지칭하는 용어로 쓰이지만, 인류의 욕망은 자연조망 외에도 구경거리(스펙터클)에 상시 목말라 있다. 때문에 다종다양한 스펙터클을 확보한 자에게 항상 우월한 지위가 덤으로 주어진다. 자연 경관을 인위적으로 꾸미는 조경 사업이 흔히 왕족이나 귀족의 정원에 집중되는 이유다.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은 기하학적 패턴의 잔디와 원통형으로 인위적으로 깎은 수목들로 장식되었다. 자연의 일반적 표정과 차별화한 스펙터클을 통해 왕족 고유의 지위를 부각하려 함이다.

아서 데이비스, <제임스 가족>, 1751년. 삼성가와 농심가의 법정 소송까지 이어진 조망권, 2005년.

인위적인 조경 사업 외에도 대중이 숭배할 물신만 되어준다면 그게 무엇이건 간에 인공적으로 세우는 전례는 많았다. 인공물을 향한 대중의 열광은 곧잘 그 시공자를 향한 충성적인 지지로 변형되기 때문이다. 1930년대 히틀러가 공격적으로 추진한 아우토반은 고용 문제 해결과 함께 체제 선전이 목적이었다. 아우토반에 자극받은 박정희의 지시로 1970년 완공된 경부고속도로는 그의 군사 쿠데타와 장기 독재의 그림자에 빛을 밝혀줬다. 전직 대통령 선호도 조사에서 그가 꾸준히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이유는, 그가 남긴 구경거리의 학습효과가 커서다. 인생은 짧아도 스펙터클은 길다. 고속도로에서 장시간 펼쳐지는 탁 트인 시야 앞에 동시대 유권자는 그 탁 트인 전망을 제공한 구시대 인물의 영도력에 탄복하기 쉽다.

동서양 공히 풍경화의 전통은 유구하다. 풍경화 발전의 여러 동기 중 하나는 지위를 과시하고 싶은 그림 소유주가 자기 부동산을 그림에 넣도록 화가에게 요구한 것이다. 회화의 전성기가 끝나버린 현대에서 경관을 통해 자신의 귀한 신분을 과시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정도가 아닐까. 시야를 방해받지 않고 불빛 가득한 도심 야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고급 아파트 초고층에 입주하거나, 현실에서 얻기 힘든 전망을 촬영한 초대형 사진 작품을 구입해 거실에 걸거나. 자연의 일부인 조망의 정치사회적 가격은 꽤 비싸다.

사진 한겨레 김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