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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의 발칙한 기운 <네버 엔딩 스토리>
강병진 2012-01-18

<네버 엔딩 스토리>의 두 남녀는 죽음을 선고받는 자리에서 만난다. 그것도 똑같은 뇌종양 판정이다. 동생 부부에게 얹혀사는 백수인 동주(엄태웅)와 모든 미래를 철저한 계획하에 진행하던 은행원 송경(려원)은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연인이 된다. “모든 의사가 말하듯” 짧으면 3개월, 길면 6개월 정도 남은 시간 동안 이들은 전국을 돌며 데이트를 즐긴다. 죽기 전에 바다나 보자는 식의 체념이 아니다. 동주는 “행운 총량의 법칙”에 따라 죽기 전에 쏟아질 행운을 기대하며 전국의 로또 명당에서 번호를 고르고, 송경은 자신의 장례식을 위해 화장장, 수목장 등 온갖 종류의 장례식장을 찾아다닌다. 그러나 어차피 누군가가 먼저 죽으면 남은 사람은 혼자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시한부 연애. 죽음에 초연해 보이는 두 사람도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지는 못한다.

<네버 엔딩 스토리>는 죽음을 이야기의 끝이 아닌 시작으로, 게다가 로맨틱코미디의 소재로 설정한 전복적인 영화다. 설정의 힘이 드러나는 건, 죽음을 앞둔 사람이 직접 장례식을 준비하는 모습에서 나온다. <귀여운 여인> 이후 수만 가지 사례로 반복된 옷 갈아입는 여자와 그녀를 감상하는 남자의 시퀀스는 이 영화에서 수의를 피팅하는 송경과 제일 예쁜 수의를 골라주는 동주의 모습으로 변형된다. 기존의 연애담에 죽음의 요소를 슬쩍 끼워넣은 것에 불과해 보일 수도 있지만, 꽃그림이 그려진 납골함에 반하는 모습이나 “오빠 로또 되면 나 아까 본 황금수의 사줄 거야?” 등의 대사가 전하는 느낌은 상당히 세다. 결혼은커녕 동반 장례식을 꿈꿔야 할 처지이나 “장례식이랑 결혼식이 다를 게 뭐냐”고 말하는 게 <네버 엔딩 스토리>의 태도다. “어차피 둘 다 내가 주인공이잖아.”

죽음에 지지 않으려는 듯 영화는 화사한 영상과 아름다운 풍경, 쉴새없는 음악으로 우울한 기운을 걷어내려 애쓴다. 하지만 설정이 빛을 발하는 건 여기까지다. 두 남녀의 행복이 강조될수록 설정의 아이러니한 입장도 도드라질 법하지만, 영화는 그저 아무런 계획도 생각도 없이 사는 남자와 모든 걸 현실적으로 계획하에 사는 여자의 진부한 다툼을 반복하고 있다. 관객이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빈약한 에피소드와 감정을 메우는 건, 카메오의 등장과 다소 특이한 조연 캐릭터의 실없는 유머 정도다. 결국 이야기는 불가피한 이별에 대한 두려움과 이를 극복하는 사랑을 통한 신파에서 답을 찾는다. 누군가가 떠나고 다시 재회하는 식의 전개에서 으레 비추게 마련인 신파의 눈물은 영화의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관객의 감정도 자극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제목에 걸맞게 죽음이 끝낼 수 없는 이야기를 하려 했을 <네버 엔딩 스토리>는 아이디어가 고갈된 나머지 편의적인 설정으로 이야기를 끝내버린다. 때문에 죽음을 앞두더라도 원없이 사랑하라는 메시지도 공허해졌다. 설정의 발칙한 기운을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 야심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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