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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된 형식속에 담아낸 감정 <신과 인간>

알제리의 한 산골 마을, 7명의 수도사와 1명의 의사가 가난한 마을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 있다. <신과 인간>의 초반부는 수도원의 평화로운 일상을 담는다. 수도사들은 함께 성가를 부르며 예배를 드리고, 밭을 경작하며 자급자족의 삶을 이어간다. 마을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고, 고민거리를 들어주고, 이슬람식 축제에 참석해 기도를 나누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그러던 어느 날 도로의 작업장에서 외국인 인부들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마을에 위기가 찾아온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수도사들은 수도원을 떠나 고국으로 돌아갈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신과 인간>은 1996년에 알제리에서 일어났던 실제 사건을 다루고 있다. 무장 이슬람집단은 7명의 프랑스 수도사들을 납치했고, 인질 교환 협상이 결렬되자 그들을 살해했다. 그러나 10여년이 지난 뒤 수도사들의 죽음이 무장 집단이 아닌 알제리 정부군에 의한 것이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진상을 밝히려는 노력이 이어지게 된다. 영화의 제작이 착수된 시점도 그즈음이다. 그러나 <신과 인간>은 당시 수도사들이 무장 집단과 알제리 정부군이라는 이중의 위협 속에 놓여 있었다는 점을 암시하면서도, 사건의 진실을 본격적으로 파헤치지는 않는다. 영화가 그보다 집중하는 것은 수도사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어떻게 수도원에 남을 수 있었는지의 문제다. 영화는 수도사들의 일상을 차분히 좇으며, 신념과 생존 욕구의 갈등 속에서 이들이 최종 선택을 내리게 된 전 과정을 재구성한다.

이처럼 개인의 ‘선택’에 천착한 영화의 틀 때문에, 수도사들의 비극에 놓인 역사성은 이야기의 중심에서 상대적으로 배제된다. 물론 <신과 인간>에는 프랑스 식민주의에 대한 반성적 언급도 등장한다. 그러나 영화는 식민주의가 어떻게 알제리의 가난과 내전의 기원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문제 삼지 않으며, 그에 대한 언급마저도 수도사들의 절박한 상황과 선택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동원되고 있다. 수도사들은 이슬람 의식에 참여하고 코란을 읽으며, ‘인샬라’를 읊조린다. 하지만 이들이 종교적인 관용과 연대를 실천하는 바로 그 순간에도, 가톨릭 수도원이 이슬람 마을 한가운데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환기하는 역사적, 정치적 의미는 사라지지 않는다. 수도사들의 비극에는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로만 환원될 수 없는 복잡한 역사적 관계와 정치적 조건들이 얽혀 있는 것이다. <신과 인간>은 이 지점에 대해 줄곧 침묵한다.

그러나 이같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인간 존재에 대한 각별한 성찰을 이끌어내고 있다. <신과 인간>의 가장 큰 미덕은 수도사들의 선택을 낭만화하지 않는 태도에 있다. 영화는 종교적 신념에서 기인한 반목과 전쟁을 숙명으로 치환하지 않으며, 두려움과 고통을 굳이 세련된 영상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신과 인간>의 화면은 수도사들의 단조로운 일상만큼이나 절제되어 있다. 그런데 그 절제된 형식과 차분한 행동들이 오히려 인물들의 소요하는 감정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수도사 크리스티앙(랑베르 윌슨)의 무표정한 눈가에 살짝 눈물이 맺히는 장면이나 의사 뤽(미셸 롱스달)이 기둥에 매달린 예수 그림에 잠시 얼굴을 대보는 장면처럼, 작은 움직임과 미세한 표정 변화가 역설적으로 이들이 겪는 격통을 생생하게 담아내기도 한다. 이들의 고민과 갈등이 느린 호흡의 화면 속에 쌓이는 동안, 누군가에게는 형이상학 혹은 죽음에의 충동에 지나지 않을 이들의 신념이 조금씩 설득력을 얻게 된다.

수도사들의 신념은 종교적이지만, 생의 위협 속에서 그들이 신념을 지키기 위해 겪어내는 모든 씨름은 다분히 인간적인 것이다. <신과 인간>에는 성가가 끊임없이 등장하지만, 정작 수도사들이 최후의 만찬을 나누는 장면에서는 <백조의 호수>의 테마가 흐른다. 이때 카메라는 수도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클로즈업하며 이들의 시선과 웃음, 눈물을 고양된 음악 속에 담아낸다. 수도사들이 늙고 고부라진 육체 위로 드러내고 삼키는 모든 감정은 그 자체로서, 임박한 죽음 앞에 선 인간 존재의 한계와 심연을 보여준다. 주연배우들의 탁월한 연기는 영화의 성찰을 훌륭히 뒷받침한다. <네가 죽을 것을 잊지 마라>로 주목받은 자비에 보부아 감독이 연출했고, 2010년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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