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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영화 <토리노의 말>
송경원 2012-02-22

압박하고, 누르고, 짓이기고, 몰아치고, 맴돌고, 옥죄고, 끝내는 사라진다. 혹자는 형식적 도취에 머물고 만 것은 아닌지 의심했고, 누군가는 ‘운명과 체념의 시’의 완성에 감동하며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이제 마지막이다. 헝가리의 거장 벨라 타르의 세계는 이 영화를 끝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말하고 싶은 것을 다 말했기에 떠난다는 그를 붙잡을 순 없겠지만, 덕분에 그의 영화세계는 스스로부터도 격리된 완전한 우주가 되어 보존되었다. 마지막을 위한 마지막. <토리노의 말>은 하나의 세계가 문을 닫는 과정이며 끝이고 멈춤이다.

1889년 1월3일, 토리노에서 있었던 일. 가혹한 채찍질에도 말은 움직이지 않았고 마부는 분노하여 더욱 거세게 채찍질했다. 마부를 말리던 니체는 흐느껴 울다 쓰러져 집으로 옮겨진 뒤 입을 뗀다. “어머니, 전 바보였어요.” 이후 그가 10년간 누워 있다 생을 마감했다는 이야기. 영화는 질문한다. 그때 그 말과 마부는 어떻게 되었을까. <토리노의 말>은 마부(에리카 보크)와 말, 마부의 딸(야노스 데르지)이 보낸 6일간의 후일담이자 그저 서서히 멈추고 침묵으로 감싸였다가 끝내 사라지고 마는 마지막에 대한 목격, 이를테면 반창세기다. 여기에 미래나 가능성 따윈 없다. 시간의 삭풍에 깎여나가고, 타락으로 말라가는 ‘정지의 운동’만이 있을 뿐. 벨라 타르에게 움직임이란 영화적 시간으로의 봉인과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이제 그것이 멈춘다. 그리하여 세계는 닫힌다. 하나의 세계가 소멸되는 풍경을 본다는 것은 실로 무섭고 고통스런 경험이지만 거장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엔 충분히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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