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예술판독기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오리엔탈리즘, 손쉽지만 고유한 파괴력

기모노 복장의 데본 아오키.

펑퍼짐하고 낮은 콧대, 가늘게 찢긴 양안, 작은 눈알 사이로 머나먼 미간, 쌍꺼풀 없는 민자 아이라인, 각진 턱선, 작은 키, LCD(평면!) 가슴, 돌출된 광대뼈가 만드는 평면적이고 드센 인상. 미녀의 이목구비를 결정할 때, 위에 나열한 요인 가운데 셋만 갖춰도 감점이다. 나열한 특징은 동양 여성의 일반적 외모다! 스모키 화장을 뒤집어쓴 농염한 눈매와 베이비페이스는 동양 여성이 추종하는 서구적 미녀의 기준점이다.

동양적 이목구비와 체형을 상대적으로 극복한 장쯔이, 공리, 전지현, 송혜교가 국제적으로 회자되는 건 나름 이해가 간다. 하지만 동양적 열세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선전하는 ‘동양 미녀’의 성공 비결은 뭘로 설명될까? 데본 아오키, 루시 리우, 샌드라 오, 탕웨이, 장윤주. 물론 부족함이 적은 미녀들이다. 하지만 완벽미를 갖췄기보다는 변별력으로 국제 기준을 추월한 경우에 가깝다.

가장 손쉬운 해법은 문화 오리엔탈리즘. 19세기는 서구 열강의 식민주의 취향이 유럽에 득세한 시기. 중동 여성의 나체와 아프리카 문화를 대상화한 문학과 예술은 제국주의 점령을 미화하고 대리 충족시켰다. 동양 코드를 간직한 상투적인 예술은 시장에서 가산점을 얻었고, 후대는 이들 얼굴에 오리엔탈리즘이란 경멸의 딱지를 부착했다. 하지만 그것은 사어(死語)이긴 고사하고 영감 고갈로 코너에 몰린 예술가가 손쉽게 집어드는 동시대 비장의 카드다. 성공 보장도 상승한다. 동양 전통을 재현한 모든 예술에 오리엔탈리즘의 혐의를 달 순 없으리라. 그러나 국외에서 호평된 작품이 내국인 견지에서 갸우뚱하다면 ‘작품 의도’가 의심되는 건 당연. <씨받이>를 필두로 거장 임권택이 내놓은 여럿,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부터 김기덕의 자기 해명작 <아리랑>까지 이국성은 시공을 가로질러 국외에서 호평되었다.

허구를 둘러싼 판타지가 이 정도라면 실물 여성을 둘러싼 사정은 오죽하랴. 동양적 결점(?)을 온전히 간직하고도 주목받는 미녀에겐 공통점이 있다. 서구적 특징과 동양성을 결합해 시너지를 발생시킨다는! 긴 흑단 머리, 낮은 콧대, 달덩이처럼 둥글고 펑퍼짐한 얼굴, 기모노와 치파오, 무협과 결합한 배역. 이상의 동양 캐릭터에, 팔등신 체형과 육감적 볼륨과 능란한 영어 구사력을 결합한 동양 여성만이 최종 낙점된다. <씬 시티>에서 데본 아오키는 닛폰도를 양 허리에 차고 서구적 누아르 공간에서 갱스터의 목을 따는 현대적 사무라이 미호(Miho)다. 동양 미녀 협객으로 재미를 본 성공담은 이외에도 많다. 가녀린 장쯔이는 <연인>에서 죽봉을 쥐고 대나무 숲을 활강하며 날아다니는 메이(Mei)다. <킬 빌>에서 기모노 차림의 루시 리우는 졸개들을 지휘하는 도쿄 야쿠자의 두목 오렌(O-Ren)이다. 대중문화의 코드를 충족시키는 한, 동양적 아이콘은 그저 ‘귀엽다’, ‘앙증맞다’, ‘섹시하다’ 같은 보편적 예찬 너머의 4차원 가치를 획득한다. ‘이국 취향 구걸’이라는 주변의 견제에도, 기왕에 타고난 유전적 매력을 포기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ps. 물론 배우의 연기력은 별개로 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