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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취향] 내 인생의 축제를 찾아
김차인애 2012-03-09

너무 우울하다. 이 상태가 3주 가까이 지속되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뭔가 이 고리를 빨리 끊어야 할 텐데…. 회사에서 작업해야 하는 광고가 많아서일까, 기다리다 지쳐버린 입찰 준비를 해야 해서 그런 걸까, 못 쓰는 글솜씨로 타인의 취향을 써야 하는 압박감 때문인가… 생각하다가. 아, 언니! 그렇다. 요즘 너무도 우울한 이유가 언니네 식구들, 특히 조카 때문이라고 스스로 결론내렸다. 3월3일. 언니네 식구들이 캐나다로 이민을 가는 날이다. 이민을 간다는 사실은 이미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도 머리로만 받아들였을 뿐 마음으로는 아니었나보다.

동생이 없었던 나는 조카 돌보는 것이 무척 좋았다. 회사를 다니던 언니와 형부 때문에 조카는 우리집에서 꽤 오랫동안 같이 지냈는데 나는 조카와 동생처럼 때론 친구처럼 함께 노는 걸 무척이나! 매우! 좋아했다. 그런 조카가! 그리고 언니와 형부가 이민을 간단다. 2~3년 정도 잠깐씩 외국에 나가 살 때는 그다지 슬프지 않았다. 2~3년 지나면 한국에 돌아올 거고, 2~3년은 짧으니까. 그런데 이민은 느낌이 달랐다. 어려서부터 같이 봐온 조카의 10대 시절을 자주 못 본다는 게 슬펐고, 언니가 해주는 맛있는 밥을 자주 못 먹는다는 것도 슬펐다. 다시 못 볼 것도 아닌데 하고 마음을 추슬러도 봤지만 촌스럽게도 뭔가 무기력하고, 많이 우울했다.

이것저것을 해봐도 허한 마음이 채워지지 않자 오랜만에 서점엘 가보았다. 평소 TV에서 보고 관심있어 했던 어느 교수가 <지식나눔콘서트 아이러브人>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강의했던 게 기억나 그분의 책을 몇권 샀다.

“나만의 축제를 기획해야 한다. 축제는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는 행위다. 운명으로 정해진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체가 되어 내 삶의 시간을 바꾸는 행위가 축제다. 작은 축제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그들에게 삶은 매년 새롭고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글귀만을 추려본다. 생각해보니 내 인생의 축제는 대학교 때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하고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나의 축제는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그렇다고 평소에 하루 24시간을 28시간으로 늘려 기계처럼 살지도 않았는데 지금의 내 삶은 왜 이다지도 팍팍하단 말인가. 이렇게 시작된 나의 고민은 역시나 자기반성의 시간을 잠시 가진 뒤 역시나 희망차게 끝을 맺는다. 일단 당장 해결해야 할 광고와 입찰 준비를 끝내놓은 다음, 새로운 마음으로 나만의 축제를 계획해보련다. 나만을 위해서든 우리를 위해서든, 그리고 화려하든 조용히 시작되든 상관없지 않을까. 그리고 내 친구 아기엄마인 빵순이에게도, 최근 연애를 시작한 친구 송송에게도 물어봐야겠다. 그대가 기억하는 마지막 축제는 도대체 언제였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