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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 답 없는 질문지의 떨림

<사냥꾼> The Hunter(2010)

감독 라피 피츠 상영시간 88분 화면포맷 1.85:1 아나모픽 / 음성포맷 DD 5.1 페르시아어 자막 영어 / 출시사 아티피셜아이(영국) 화질 ★★★ / 음질 ★★★☆ / 부록 ★★★

당연한 풍경이 낯설게 다가올 때가 있다. 라피 피츠의 영화를 보다 그랬다. 이란영화에서 흔히 보이던 풍경이 피츠의 영화에는 없다. 사람들은 연기를 내뿜는 공장에서 일하고 잿빛 콘크리트 건물 사이를 오간다. 날씨는 내내 을씨년스럽다. 그래서 그가 만드는 영화에는 서늘한 정서가 가득 흐른다. 오죽하면 전작에, 원작의 제목 <이동>을 떼버리고 <겨울이다>라는 제목을 달았을까. 다큐멘터리 <아벨 페라라: 무죄>로 이름을 알린 피츠는 네 번째 장편 <겨울이다>로 베를린영화제에 진출해 호평을 들었다. 남편이 돈을 벌겠다고 외국으로 떠난 뒤, 아내와 딸은 테헤란의 변두리에 남는다. 도시로 흘러들어온 떠돌이 남자가 그녀의 주변을 맴돌다 같이 살게 된다. 일자리를 구하다 지친 그 또한 외국으로 가려 하는데, 죽은 줄 알았던 남편이 불구자가 되어 돌아온다. 미치도록 내리는 눈은 가난의 고통을 더욱 견디기 힘들게 한다. 하지만 피츠는 마지막의 짧은 순간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겨울이다>가 ‘이슬람 혁명’ 전 세대에 바치는 일종의 존경심이라면, <사냥꾼>은 혁명 이후 세대이면서 다수를 차지하는 이란인에 대한 영화다. 피츠는, 세상 모든 것처럼 영화는 시에 바탕을 둔다고 믿는다. 그러나 시적 이미지가 난무하는 아름다운 영화를 예상하면 곤란하다. 절제된 대사 대신 영화를 이끌어가는 건 풍부한 이미지와 사운드다. 혁명 당시의 사진으로 시작하는 도입부가 그 예다. 상관없어 보이는 인상적인 이미지- 터널, 숲, 고가도로, 세차장, 공장을 이어붙여 인물(과 사회) 및 영화가 지닌 정서를 압축적으로 전한다. 야간 경비원(감독이 연기했다)인 남자는 주간에 일하는 아내와 시간을 보내지 못해 아쉽다. 어느 날, 아내와 딸이 집으로 오지 않자 경찰을 찾아간 그는 충격적인 사실을 듣는다.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지나가던 아내가 총에 맞아 죽었다는 것. 게다가 딸의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황. 무표정한 얼굴로 사태를 지켜보던 그는 총을 들고 언덕에 오른다. 그리고 고속도로 위로 질주하는 차들을 겨냥하다 경찰차를 발견하고 발포한다. 두명의 경찰이 죽으면서 그의 위치는 사냥꾼에서 쫓기는 자로 바뀐다. 예전 인터뷰에서 선과 악이 대립하는 영화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한 피츠는, 선하다고 이미 규정된 인물의 영화를 두 시간 동안 본다한들 무엇을 얻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사냥꾼>은 주인공의 과거는 물론 현재에 대해서도 별 설명을 하지 않는다. 영화는, 사건을 계기로 인물이 어떻게 행동하게 되는지를 묵묵히 바라볼 뿐이다.

후반부로 가며 반전을 더하는 <사냥꾼>은 예상하지 못한 놀라움으로 끝맺는데, 진짜 공포와 긴장은 스크린 바깥에 있다. <사냥꾼>을 본 뒤의 떨림은 끝내 어떤 답도 손에 쥐지 못했다는 데서 기인한다. 피츠는 부분을 먼저 보여주다 전면을 나중에 제시하는 방식을 종종 취하는데, 부분과 전체의 인상은 판이하다. 어디에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진실의 얼굴은 달라진다. <사냥꾼>은 그런 영화다. 분명히 도덕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나 판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으며, 그렇다고 해서 이란의 사회정치적인 현실을 은유했다고 단정하기에도 망설여진다.

이 영화를 높이 평가한 영화평론가 조너선 로젠봄은 본질주의적인 측면을 들어 로베르 브레송의 영화와 함께 언급했으나, 안개처럼 모호한 현실에서 고독한 자가 주워든 답 없는 질문지라는 점에서 장 피에르 멜빌의 영화가 더 적절한 선배인지도 모르겠다. DVD는 감독 인터뷰(19분), 예고편을 부록으로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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