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영화읽기 > 영화읽기
[영화탐독] 질문이 너무 많아서 탈이야
송경원 2012-04-26

<인류멸망보고서> 중 김지운의 <천상의 피조물>

연일 호평이 쏟아진다. 기대 이상의 웃음이라든가, 다음을 기약할 만하다든가, 한국 SF장르의 척박한 토양에서 나름 선전했다고 하는 목소리들. 전체적으론 동의한다. 하지만 관객의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해 (혹은 제작여건상 어쩔 수 없이) 선택했던 옴니버스 형식은 결국 작품간의 편차를 피할 수 없는 구성이니만큼 이 지점을 한번쯤 짚고 넘어가고 싶다.

<인류멸망보고서>는 김지운을 보고 들어가서 임필성을 기억하고 나오는 영화다. 달리 말하자면 김지운 감독의 <천상의 피조물>은 슬프게도 (그리고 명백하게도) 이 영화의 구멍이다. 임필성 감독이 전후에 배치된 <멋진 신세계>와 <해피 버스데이>를 숨겨진 코미디의 재능을 제대로 꽃피운 만큼 구멍은 더욱 크고 깊게 느껴진다. 국내에서 옴니버스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사례가 드물다는 걸 상기해보면 <천상의 피조물>에 대한 실망감은 영화 전체를 주저앉힐 수도 있는 악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르영화에 강한 면모를 보여왔던 김지운 감독이 어디서, 왜 헛발질을 한 걸까.

단도직입적으로 <천상의 피조물>은 재미가 없다. 좀더 객관적으로 표현하자면 지나치게 딱딱하고 심각하다. 착상 자체는 나쁘지 않다. <천상의 피조물>이 던지는 불교적 화두, 인간과 닮은 것을 넘어 열반의 경지에 이르는 로봇이란 소재는 참신한 장르 변주라 할 만하다. 여기서 <아이, 로봇> 등 기타 영화들과의 유사함이나 로봇 RU-4의 디자인이 비욕 뮤직비디오 속 그것을 고스란히 차용했단 사실은 별 문제가 안된다. 애초에 SF란 것이 닮고 닮은, 그러나 여전히 풀리지 않은 질문을 기발한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무대 위에 던져놓고 그 화학반응을 즐기는 장르가 아닌가. <천상의 피조물>은 기본적으로 그에 합당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문제는 그것을 풀어낸 방식에 있다. <천상의 피조물>은 지나치게 말이 많다. 대사의 물리적인 양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물론 그 탓에 영화가 촌스러워지기도 했다). 영화 내내 허무맹랑한 허풍으로만 채워진 <맨 프롬 어스> 같은 영화의 기발함을 보라. 진짜 문제는 감독이 던지고자 하는 질문과 메시지가 짧은 시간 안에 소화하기 힘들 만큼 빽빽하다는 점이다. 영화는 창조주와 피조물과의 관계, 해탈과 깨달음, 정신과 물질의 충돌 등 해결되지 않는 질문들을 그저 산만하게 펼쳐놓기만 한다. 관객에게 화두를 던질 요량이면 그것 나름으로 괜찮다. 하지만 애초에 답이 없는 질문들을 무수히 던져두고 본인의 피상적인 깨달음을 훈계하는 방식의 연출은 보는 이를 불편하게 만들 뿐이다.

때문에 나는 장편으로 만들 아이디어를 단편으로 압축해놓은 탓에 일어난 문제라는 혹자의 변명에 동의할 수 없다. 적어도 모든 것을 일일이 설명하려는 욕심과 관객을 향한 계몽적 태도를 거두지 않는 한 장편으로 만든다 한들 아니 상영시간이 길어진 만큼 더 지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원래 SF에서 제시되는 전통적인 질문들은 이미 출구가 닫혀 있는 질문들이다. 애초에 정답은 없다. 그 길에 이르는 과정을 고민하고 기발한 표현양식을 즐기는 것이 SF의 본질이다. 하지만 <천상의 피조물>은 우리에게 30분짜리 지루한 강연을 들려준다. 부처의 얼굴에서 따왔다는 인명의 모호한 얼굴, 그거면 충분할 것을, 생각도 말도 너무 많았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