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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공공의 적
2002-01-22

이주의영화/ 공공의적

■ Story

강철중(설경구)은 아시안 게임에서 은메달을 받아 경사로 특채된 권투 선수 출신 형사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강철중의 계급은 경사, 순경으로 낮아지기만 한다. 범인 잡기에는 별 관심이 없고, 마약범에 마약 빼앗아 팔아먹고, 길거리 노점상에 용돈을 받아 쓰는 악덕 경찰이다. 감찰이 들어오는 바람에 함께 부정을 저지르던 강력반장이 바뀌고, 선배가 자살을 해도 강철중의 삶은 별반 바뀌지 않는다. 억수같이 비가 내리던 밤, 조규환(이성재)을 만나기 전까지는. . 승승장구하던 펀드 매니저 조규환은 철저한 자본주의형 인간이다. 위기에 몰린 회사를 냉정하게 부도처리하며 사장을 자살로 내몰고, 자신을 화나게 한 택시기사는 벽돌로 때려죽인다. 조규환은 한달만 기다리면 수백억원으로 불어날 투자금을, 철거 위기에 몰린 고아원을 돕겠다며 빼오라는 아버지를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 아니 용서할 수 없다. 그래서 조규환은 태연하게 부모를 죽인다. 그는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잔인하게 내쳐버린다. 부모를 죽인 날 밤, 강철중을 만나기 전까지는.

■ Review 20세기 초반 미국의 ‘공공의 적’(<퍼블릭 에너미> (Public Enemy)의 제임스 캐그니)은 자본주의 질서를 비웃으며 자신의 왕국을 세워가는 갱이었지만, 21세기 벽두 한국의 ‘공공의 적’은 다국적 금융자본의 첨병으로 한국사회, 경제를 이끌어가는 엘리트 펀드 매니저다. 우습다고? 물론이다. 3년 만에 감독으로 복귀한 강우석의 경찰코미디 <공공의 적>은 지독하게 웃기고, 한편으로 사회의 X같은 ‘시스템’을 맹렬하게 씹어댄다.

<공공의 적>이 능청맞고, 또 활기차게 다가오는 큰 이유는 강철중이란 캐릭터가 워낙 생생하기 때문이다. ‘타락과 도덕의 경계’에 서 있는 경찰은 이미 <투캅스>에서도 본 적이 있다. <마이 뉴 파트너>나 아벨 페라라의 <악질 경찰>에서도. 그들은 부패를 즐기거나, 일종의 고행처럼 악행에 참가한다. 하지만 강철중은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다. 서두의 내레이션부터 ‘무비판’에 ‘도덕관념 마비’의 강철중은 경찰의 ‘의무와 책임’을 한마디로 씹어버린다. 그리고는 바로 마약범에 강제로 마약을 뺏은 강철중의 얼굴이 나온다. 악행을 하느라 얼굴 이곳저곳이 터지고 부어오른 모습. 강철중은 자신의 욕망에 따라, 직감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는 야수 같은 존재다. 그가 속한 경찰조직은 단지, 그에게 무기를 쥐어주는 수단일 뿐이다.

다른 작품들처럼, 강철중은 자신보다 더 큰 악을 만나자 변한다. 삥땅치고, 나쁜 놈들을 조금 괴롭히는 정도의 악과는 비교가 되지도 않을, 사람이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르는 ‘공공의 적’을 비로소 만난 뒤에. 그래서 강철중은 사람이 된다. 그건 상업영화가 가져야 할 도식적인 결말이지만, <공공의 적>에서는 일말의 논리를 갖는다. 강철중은 세상이 모두 악의 구렁텅이이고, 자신도 그 틈에서 얼렁뚱땅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사소한 악을 행했다. 하지만 조규환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인간이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 감겨 있던 눈을 뜬다. ‘공공의 적’을 보는 눈을. <나쁜 경찰>에서의 형사는 수녀를 강간하고 강도질을 하는 범인들을 추적하며, 그들이 단지 세상의 악에 물들어버린 평범한 소년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좌절에 빠져버린다. 그리고 스스로를 파멸시킨다. 그러나 강철중은 그렇게 심오하지 않다. 그 심오하지 않음, 그 단순함이 <공공의 적>을 코미디로 만든다.

부모를 죽인 냉혈한과의 싸움이라는 소재는, 코미디보다는 서늘한 누아르에 적합해 보인다. 그러나 강우석은 <마누라 죽이기>처럼 스릴러에 어울릴 법한 소재를, 코미디로 능청맞게 뽑아내는 솜씨가 있다. <공공의 적> 역시 탁월한 감각으로 도발적인 웃음을 끌어낸다. 조규환을 비호하는 검사가 강력반을 찾아와 강철중을 비아냥거리자, 늘 철중에게 시비걸던 반장은 갑자기 욕설을 해대기 시작한다. 양복을 입고 취조를 받던 용의자를 씹으며, 구타를 하며 ‘권력’을 조롱한다. <공공의 적>은 권력과 시스템 자체에, 진지하고 날선 비판을 가하지는 않는다. 그냥 강철중처럼, 치받아버린다. 강철중은 편의에 따라 증거를 조작하고 시스템을 조롱한다. 그건 시스템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엿먹어라’ 외치고는 도망쳐버리는 것이다. 요즘의 코미디영화들이 그랬다. <주유소 습격사건>의 폭력과 일탈은 권위적인 사회 모순에 근원을 두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해소하는 방식은 단지 카타르시스일 뿐이었다. 그들은 시스템을 부수지도, 돌아오지도 않는다. 그러나 ‘공공의 적’을 발견한 강철중은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엘리트’들을 무참하게 박살낸다. 결코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주먹으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

그런 점에서 <공공의 적>은 돈 시겔의 <더티 하리>와 닮아 보인다. 하지만 더티 하리는 ‘사회 체제의 적’을 죽인다. 강철중은 ‘공공의 적’. 인간이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한 자들을 응징한다. 그는 ‘사회질서 수호’ 같은 데에는 추호의 관심도 없다. 그는 그냥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한 자들만을 골라내서 반죽여버린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그것은 값싼 폭력이 아니다. ‘쌈마이’영화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자랑스러워하는 시대에도, <공공의 적>은 적절한 품위를 지킨다. 순경으로 강등되어, 분식집에서 행패를 부리는 ‘조폭’들을 패는 강철중의 활약을 보고 있으면 묘하게 후련한 기분이 든다. <공공의 적>으로 강우석은, 앞으로 한동안은 어떤 코미디영화가 등장해도 한마디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했다.

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

<공공의 적> 조연배우

맛깔나는 코미디의 갖은 양념들

<공공의 적>에서 설경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80%에 이른다. 체중을 20kg이나 불리며 ‘악질 형사’ 강철중으로 변신한 설경구의 연기는 ‘정점’이다. 이 이상의 연기가 무엇인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설경구는 <공공의 적>을 장악하고 있다. 이성재의 열연이 희미해질 정도로. 그러나 <투캅스>가 그랬듯이, <공공의 적>의 자글자글한 맛을 내는 양념은 여전히 개성이 넘치는 조연들이다. 중후한 연기력으로 무장된 중견 연극배우부터, 보는 것만으로도 웃음을 찾을 수 없는 외모의 개성파 조연까지 웃음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반드시 나타나는 조연들이 <공공의 적>의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우선 웃음보다는 연기력으로 승부하는 배우가 있다. 마약범과 싸우다가 상처를 입고 투덜거리는 강철중에게, ‘약 뺏기고 두들겨맞은 걔들은 얼마나 열받겠냐’며 참으라고 말한 뒤 자살하는 선배형사 역으로 중견연극배우 기주봉이 출연했고, 분위기 쇄신 차원으로 부임한 엄 반장 역으로는 역시 연극무대에서 활동하는 강신일이 나왔다. 등장하자마자 욕설을 입에 달고, 부하들 군기잡기에 나서지만 차츰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묵직하게 보여준다. <친구>의 화자 서태화는 조규환을 비호하는 관할지역 검사로, 윤문식은 강철중에게 ‘공공의 적’으로 찍혀 일망타진 당하는 사채업자의 우두머리로 나온다.

웃음을 주면서,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조연들로는 이문식, 성지루, 유해진 등이 있다. <달마야 놀자>에 나왔던 이문식은 업소에 술을 대며 이권을 치는 안수 역으로 나온다. 성을 붙여 빠르게 부르면 ‘산수’가 된다. 산수는 강철중에게 폭력혐의로 잡혀 왔다가, 난데없이 십자드라이버를 들고 연쇄절도범으로 둔갑한다. 강철중이 뺏은 마약을 팔아주는 거간꾼이자 정보원 노릇도 하는 대길 역은 성지루, 한때 칼잡이로 날리다가 지금은 제비족으로 살아가는 용만 역은 유해진이 맡았다. 두 배우 모두 <신라의 달밤>에 나왔다. 강철중의 명령으로 시체실에 나와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공공의 적>에서 조연배우들의 쓰임새를 잘 말해주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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