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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리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엣지와 에코 사이
이효리(가수) 일러스트레이션 이선용(일러스트레이션) 2012-06-11

스타일의 완성은 가방이다. 얼마 전 세계적인 의류 브랜드 행사에 초청을 받아서 갔다. 요즘 그런 행사에는 포토월이 설치되어 있다. 나 역시 사진에 잘 찍히기 위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공들여 빼입고 포토월에 섰다. 헤어, 메이크업, 의상, 액세서리, 신발까지 나름 완벽하게 준비를 마쳤는데, 뭔가가 허전했다. 가방, 그것이 문제였다.

동물보호 활동을 시작한 이후 가죽가방을 들지 않겠다고 내 자신과 약속을 했다. 그 탓에 공식적인 자리에 갈 때마다 그날의 의상과 어울리는 가방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제일 듣기 싫은 건 “이효리, 동물보호하더니 요즘 스타일이 밋밋해졌어”라는 소리다. 동물보호 활동을 하고 채식을 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멋지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날 행사에는 드레스에 어울릴 만한 에코백을 발견하지 못한 터라 그냥 맨손으로 가야 했다.

솔직히 아쉽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나 역시 20~30대 또래 여자들처럼 가죽으로 만든 가방에 열광했다. 잇 백(It Bag)이라며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저거 하나쯤 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하며 지갑을 열었다. 남들보다 비싼 가방을 들고 잘난 척 으스대고 싶은 마음도 분명 있었겠지만, 특히 부드럽고 질 좋은 가죽의 아름다움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가장 양질의 가죽은 송아지가 태어나자마자 모공이 채 열리기도 전에 벗긴다는 사실을 안 뒤 생각이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아직도 그런 가방들을 볼 때 참 예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어쩌겠는가. 나도 아름다운 걸 좋아하는 여자다. 이런 글에서라도 ‘인조가죽도 진짜 가죽 같아요’ 혹은 ‘요즘은 인조가죽이 더 잘 나온다’ 이런 말을 해야겠지만, 좀더 솔직해지자면 아직 그 말에 동의할 수는 없다. 희생의 대가로 얻은 진짜 가죽의 아름다움은 아직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에코백, 그러니까 친환경 가방에 지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소재와 디자인이 다양한 에코백들은 가격이 저렴하고 동물과 환경에도 미안하지 않으니 일석이조다. 그런데 요즘 들어 많은 기업에서 앞다투어 에코백을 출시하는 걸 보고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됐다. 에코백이 정말로 친환경적일까? 사실 폴리에스테르가 섞인 천가방은 환경에 그리 좋지 않다고 한다. 재활용 에코백도 소재가 100% 재활용품이 아닌 경우가 있고, 재활용품을 수집해서 세척하는 과정에서도 환경에 유해한 물질이 많이 발생한단다. 에코백의 또 다른 단점이 하나 있다. 쉽게 살 수 있고, 또 쉽게 버려진다는 거다.

에코백은 원래 트렌디한 아이템이 아니었다. 값비싼 가죽가방에 대항하는 착한 아이템이었다. 그런데 에코백이 트렌드가 되자마자 모두가 가져야 할 패션 아이템이 되어버렸다. 많은 기업은 극히 일부분만 환경친화적이면 뭐든 ‘에코’라는 이름을 붙여 새로운 패션 아이템을 원하는 사람들의 지갑을 열게 한다. 에코라는 단어는 진정한 환경보호의 의미를 떠나서 점점 트렌드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요즘 나는 소비를 한다는 행위 자체가 에코와는 멀어지는 일이라는 걸 조금씩 깨닫고 있다. 맞다. 소비를 하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 대신 줄일 수는 있다. 좀더 따져가며 똑똑하게 소비를 할 수도 있다. 오늘따라 어깨에 멘 에코백이 유난히 무겁다. 아니, 내가 지금 어깨에 메고 있는 가방이 진짜 에코를 위한 백이 맞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