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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shion+] 피부가 너무 좋아 죄송합니다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

만일 동화 속 모든 공주를 한자리에 모아 점심이라도 한다면 그 자리는 말다툼으로 끝나거나, 싸움은 면하더라도 모두가 ‘뭐 이런 자리에 나를 불렀나’ 하고 불쾌해하며 자리를 뜨게 될 것이다. 백설공주 탓이다.

백설공주로 말하자면 다른 공주들뿐 아니라 세상 모든 여자의 심기를 불편케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컨셉부터가 거두절미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라니. 사냥꾼과 일곱 난쟁이, 독사과로 요약할 수 있는 그녀의 파란만장한 시련이 시작된 것도 그 때문. 그녀는 본래 왕비 차지였던 ‘가장 아름다운 사람’의 자리를 빼앗았다.

그녀는- 그림 동화에 등장할 때면- 항상 어깨와 엉덩이에 커다란 패드가 들어간 빨강, 파랑, 노랑의 촌스러운 드레스를 입고, 단순한 빨강 리본 머리띠로 멋을 낸 게 고작이지만, 그 이름만큼이나 희고 깨끗한 피부를 갖고 있다. 함께 묘사되는 ‘피와 장미처럼 붉은 입술’과 ‘까마귀처럼 새까만 머리카락’은 그 깨끗한 피부를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 결국 그녀는 최강 피부 미인이고, 피부 미인이 다른 모든 미인을 물리치는 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하얀 피부는 노동하지 않는 신분의 특권이어서 백옥 같은 피부를 가진 여성이 아름답고 우아하게 여겨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던 것이 20세기 초반부터 서양에서 선탠이 크게 유행하면서 오히려 한겨울에도 열대 해변에서 선탠하며 구릿빛 피부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 럭셔리함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한 유행이나 스타일일 뿐, 대개의 사람은 여전히 하얗고 투명한 피부에 본능적으로 매혹당하는 듯하다.

여왕은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다운 이목구비와 몸매, 거기에 근사한 왕관과 드레스로 무장하고 있음에도 며칠째 세수도 못하고 숲을 쏘다니는 백설공주보다 아름답지 않다. 원인은 간단하다. 공주는 밤낮 먼지 구덩이를 쏘다녀도 피부만은 뭘 어떻게 했기에 저 정도로 좋은가 싶게 희고 투명한 반면, 여왕의 피부는 갈수록 칙칙해지기 때문이다.

흠, 피부는 정말이지 외모에서 고작 손바닥만큼도 차지하지 않는 부분인데, 전체를 결정짓고도 남음이 있다. 잔인한 사실은 피부는 후천적 관리보다 선천적 ‘타고남’이 중요하다는 것. 그러니 여왕의 질투심이 활활 타오를 수밖에.

새삼 어른이 되어 다시 백설공주 이야기를 대하니 백설공주보다는 여왕에게 더 감정이입하게 된다. 못된 짓만 골라서 하지만 “왕비님이 가장 아름다우십니다”라는 말 한마디 듣고 싶어 수줍게 “미러, 미러”를 읊조리는 그녀에게 망할 놈의 거울은 기미로 시커멓게 변한 그녀의 얼굴을 비춘 다음 이제 가장 아름다운 이는 백설공주이며, 그녀가 성장할수록 당신은 더 추해질 일만 남았다는 예언을 한다. 아, 이쯤 되면 누구라도 독사과를 제조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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