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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길 위에서 만난 자유
씨네21 취재팀 2013-02-21

<황세준-목단행성(牧丹行星)>

황세준, <근대>, 2012, 캔버스 위에 유채, 280×200cm.

기간: 3월17일까지 장소: 갤러리로얄 문의: art.royaltoto.co.kr

화가 황세준의 그림은 피로하다. 불안하고 음하다. 그가 담고 있는 풍경 속 사람들의 행색이 그렇고 그들이 서 있는 풍경 또한 그렇다. 그림에선 활달하게 움직이는 상태가 아니라, 피로하여 잠시 잠적할 곳을 찾는 느낌이 묻어난다. 환한 빛은 없지만 그림자를 뿜어내는 흐린 공기는 회색과 푸른색으로 온도를 만들어낸다. 황세준의 그림에서는 자유가 느껴진다. 콕 집어 무어라 명명하기 힘든 대상을 다루고 있기 때문일까. 그러고 보니 화가가 그린 풍경은 모두 길 위에 있다. <정처>라는 그림 속의 사람도 길에 있고, <오후의 나무>도 뒤꽁무니를 뺀 버스 옆의 길 가운데의 나무를 비춘다. <귀대 터미널 풍경>에서는 버스를 기다리는 군인들이 있고, <버스, 벗>에서는 버스를 기다리는 도로가 있다.

황세준은 그림만큼이나 울림이 있는 글을 쓰는 작가로 잘 알려졌다. 전시 때마다 글을 남기는 그는 이번 전시에서 이렇게 썼다. “길치는 선천적으로 독자적이다. 못 찾기 때문에 다른 길로 간다. 사실 길이 찾아오는 것이다. 거기에는 어떤 위엄과 자유가 있다.” 하릴없는 근래의 생활 속에서 작은 위엄을 찾아보는 화가의 시선은 이를테면 이런 것 아닐까. 길치만이 갈 수 있는, 길치가 헤집어놓은 거리를 기록하는 것. 만날 보던 흔하디흔한 길이요, 발에 차일 만큼 숱한 건물과 아스팔트 도로가 달라 보인다. 예술은 “몸이 하는 기도인 것 같다”는 작가의 문장을 그의 그림을 보며 잠시나마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