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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 업] 유대인이 희생양이라고?
이주현 2013-04-09

<어둠 속의 빛> 아그네츠카 홀랜드 감독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광기에 사로잡힌 잔인한 처형자가 될 수 있었는지 정말 미스터리다. 드라마틱한 음모, 사건, 도전이 가득했던 시대였기에 당시 생존자들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그네츠카 홀랜드 감독은 꾸준히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을 영화로 만들어왔다. <어둠 속의 빛>은 <전장의 로망스> <유로파 유로파>에 이은 아그네츠카 홀랜드 감독의 세 번째 홀로코스트영화다. “수년 동안 홀로코스트 관련 지식을 쌓아왔다”고 자부하는 그에게 서면으로 말을 걸었다.

-유대인이었던 당신의 조부모가 게토에서 사망했다. 그 시대를 돌아보고 그 시대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것이 고통스럽진 않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둠 속의 빛> 연출 제의도 여러 번 거절했다. 하지만 조부모님과 아버지의 운명을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다. 어떻게 보면 그분들에 대한 마음의 짐이 있었던 것 같다.

-<어둠 속의 빛>은 실존 인물이었던 레오폴드 소하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의 삶의 어떤 부분이 당신을 사로잡았나. =유대인에 대한 생각이 변했다는 점이다. 처음에 그는 유대인을 인간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다(홀로코스트 역시 나치군이 유대인을 인간이 아닌 쥐, 이, 악마로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다 서서히 유대인들(특히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되고, 진심으로 그들을 돌보기 시작한다. 나는 책임감 또한 사랑의 한 형태라고 생각한다. 소하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유대인들을 사랑하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의 주요 공간은 하수구다. 하수구라는 공간을 영화적으로 어떻게 활용하려 했나. =20%는 실제 하수구에서, 나머지는 세트장에서 촬영했다. 촬영 자체가 굉장히 힘들었다. ‘어둠’과 ‘하수구’는 이 영화의 중요한 캐릭터라 할 수 있다. 감독 입장에선 꽤 힘든 작업이었지만, 살면서 어둠 속에서 영화를 만들 기회가 몇번이나 오겠나. 또한 관객도 실제 유대인들이 느꼈던 것과 비슷한 경험을 하길 바랐다.

-하수구에 숨어 지내는 11명의 유대인 한명한명에게 세심하게 캐릭터를 부여했다. =유대인의 모습을 사실감있게 담고 싶었다. 유대인들을 그저 희생양으로 보거나 천사 같은 이미지로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묘사하는 영화들에 진저리가 난다. 유대인들 역시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다. 좋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쁜 사람도 있고, 용감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겁쟁이도 있다.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도 있지만 이기적인 사람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옥처럼 끔찍한 상황에서도 이들은 그저 평범한 사람들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사랑도 하고, 섹스도 하고, 아이들과 어울려 놀고, 희망도 품고, 싸움도 한다는 말이다. 이름없는 희생자 집단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고유의 캐릭터를 부여하는 게 중요했다.

-인물들의 섹스장면을 종종 보여준다. 그 장면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뭔가. =그들의 경험의 진정성을 표현하는 데 중요한 요소라고 봤다. 친구 중 하나가 1943년 게토 폭동 당시 마지막 지휘관으로 바르샤바 게토에서 살아남았다. 그 친구가 말하길 그런 끔찍한 상황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사랑과 섹스, 친밀감을 갈구하고 누군가의 체온을 그리워한다고 했다. 친구는 이에 관한 책도 썼는데, 영화를 만들게 되면 이 이야기를 꼭 화면에 담겠다고 친구에게 약속했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쥐는 실제 쥐인가. 쥐를 대하는 유대인들의 태도 변화도 흥미로웠다. =조련된 쥐들이다. 말을 잘 들었다. 당시 사람들은 쥐들에 금세 익숙해졌고, 아이들은 쥐를 애완동물처럼 다뤘다고 한다. 우리 배우들, 특히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금세 쥐에 익숙해졌다.

-소하 역을 맡은 배우 로버트 비엑키에비츠의 연기가 훌륭했다. 한국에는 비교적 덜 알려진 배우다. =훌륭하고 용감하고 특색있는 배우다. 또 사랑스러우면서도 성실하고 정직한 남자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충실한 동료다. 곧 선보이게 될 안제이 바이다의 전기영화에서 폴란드 정치인 레흐 바웬사를 연기했는데, 실제 인물보다 더 레흐 바웬사 같을 정도다.

-현재 만들고 있는 혹은 구상 중인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최근에 <HBO> 유럽 채널의 3부작 미니시리즈를 완성했다. 옛 소련군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과 체코슬로바키아 자유화 운동인 ‘프라하의 봄’ 이후 1969년대를 배경으로 한 정치드라마다. 당시 그곳에 학생 신분으로 체류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특별한 작품이다. 제목은 <Burning Bush>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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