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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 x cross] 우리가 밝은 음악 하는 팀이라고?
장영엽 사진 백종헌 2013-04-24

2집 앨범 ≪선명≫으로 돌아온 인디밴드 가을방학

“어떤 의미로든 더 선명해지고 싶었다.”(계피) 청량한 보이스와 정곡을 찌르는 가사로 사랑받았던 인디밴드 가을방학이 더 깊어졌다. 2년 반 만에 발매한 그들의 정규 2집 앨범 ≪선명≫은 가을방학의 어떤 변화를 짐작해볼 수 있는 음반이다. 고음과 저음을 넘나드는 보컬 계피(왼쪽)의 목소리는 한층 호소력이 짙어졌고, 전반적인 음악 작업을 맡고 있는 정바비의 가사와 멜로디는 보다 깊은 여운을 안고 있다. <좋은 아침이야, 점심을 먹자>의 활기로 시작해 <가을 겨울 봄 여름>의 차분함으로 끝맺는 ≪선명≫의 열두 트랙이 담고 있는 변화에 대해 두 멤버에게 물었다.

-2집 ≪선명≫의 음반 작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계피_녹음은 올해 2, 3월에 본격적으로 했고, 바비씨가 1년 동안 혼자서 데모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정바비_평소 곡 작업을 일상에서 계속 하는 스타일이다. 음반 작업을 해보자고 해서 그때부터 시작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1집 ≪가을방학≫을 만들 때도 그랬지만, 대략 스무곡 정도가 모이면 열곡에서 열두곡 남짓을 앨범으로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선명≫도 스무곡 정도의 데모를 모아 음반을 만들려 했는데, 프로듀서를 찾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프로듀서를 찾기 어려웠다는 건 곡의 느낌과 맞는 이를 찾기 힘들었다는 말인가. =정바비_한국 음악계 자체가 프로듀서 풀이 없다. 예를 들면 노라 존스가 최근 앨범 색깔이 달라진 건 데인저 마우스란 프로듀서와 함께 작업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음반의 느낌에 맞는 프로듀서와 작업할 수 있는 여건이 내가 알기론 한국에 없다.

-1집은 이병훈 음악감독, 2집은 김홍집 음악감독이 프로듀서를 맡았다. 영화음악감독을 프로듀서로 선택한 이유는 뭔가. =정바비_프로듀서 풀이 없는 상황에서, 영화음악감독들이 가장 전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고 노련한 분들이기 때문이다. 계피_두분의 성향이 굉장히 다르다는 점이 재밌었다. 보컬 파트만 얘기하면 이병훈 감독님은 내게 연기 지도를 하셨다. 내 목소리는 어떤 음역대에서 어떤 감정을 어떤 식으로 표현했을 때 듣기가 좋다는 지향점이 확실히 있었다. 그런데 2집의 김홍집 감독님은 그와 정반대로 웬만하면 아무 말씀도 안 하고 계속 기다리시더라. 나만의 리듬을 타 어떤 종류의 음악이 나오길 그냥 기다리시는 것 같았다. 두분의 스타일엔 장단점이 있겠지만, 내가 완전히 다른 두 가지를 느낀 건 확실하다.

-바비씨는 언니네이발관과 줄리아하트, 바비빌의 멤버였고 계피씨는 브로콜리 너마저, 우쿨렐레 피크닉 등의 그룹에서 활동했다. ‘가을방학’이란 이름으로 활동할 때의 느낌은 어떻게 다른가. =정바비_예를 들면 바비빌로 활동할 땐 컨트리문법이란 틀이 있는 거고, 이건 농담이지만 언니네이발관은 허투루하면 잔소리를 하는 석원이 형의 지랄이 있었고. (웃음) 가을방학 음반의 소실점은 계피의 목소리다. 가을방학이란 팀엔 내가 어떤 노래를 만들든지 확실한 색깔을 가진 계피라는 보컬리스트로 인해 생기는 기분 좋은 제약이 있다. 계피_처음엔 역할 분담이 확실해서 편했던 것 같다. 브로콜리 너마저로 활동할 때에는 보컬이 두명이기도 했고, 기타를 쳐야 했는데 실력이 그리 좋지 않았다. 가을방학은 바비씨가 모든 음악적 부분을 맡고 있고 보컬로서 충실할 수 있어 굉장히 마음이 편했다. 그런데 그렇게 1집 활동을 해보니 노래만 불러서는 충족이 안되는 부분이 생기더라. 그래서 이번 2집 작업에선 보다 적극적으로 내 생각을 얘기했던 것 같다.

-20여곡의 데모 중에서 선별 작업을 할 때, 어떤 곡들을 취하고 어떤 곡들을 배제했나. =정바비_1집 ≪가을방학≫을 내고 받은 피드백 중에 우리를 놀라게 했던 건 ‘가을방학은 밝은 음악을 하는 팀’이라는 시선이었다. 전반적으로 내가 만든 음악 중엔 좀 어둡고 처연한 곡들이 있는 한편 귀엽고 밝고 템포감있는 소소한 곡들도 있는데, 1집 때는 그 소소한 느낌의 곡들을 다 썼다. 그래서 음악이 밝게 느껴진 것 같은데 2집 때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을방학의 이미지엔 2집이 더 맞는 거 같다.

-가을방학 음악의 묘미 중 하나는 스토리가 있는 가사다. 대개의 경우 남성 화자의 이야기를 여성 보컬이 노래로 풀어낸다는 점에 그 미묘한 매력이 있었다. 2집 가사를 쓸 때 어떤 특정 화자를 염두에 두고 쓰는지 궁금하다. =정바비_5월에 가을방학 2집이 일본에서 발매될 예정이다. 가사를 일본어로 번역해야 하니 “화자가 누구냐”라는 질문을 곡마다 받았다. 일본어엔 한국말과 달리 성별에 따라 달리 표현해야 하는 주어가 있기 때문에 한국어에서 (화자를) 모호하게 만들었던 장치를 쓸 수가 없다. 1집은 경우에 따라 남성 화자를 쓰거나 화자를 생략하는 방향으로 갔는데, 2집은 거의 다 여성 화자로 갔다. 나도 그게 맞다고 생각했고, 계피도 그렇게 하고 싶다고 했다. 이 점이 2집의 변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더운 피> 같은 곡은 굉장히 세게 느껴진다. 가사든 절절한 감성이든. =정바비_가장 안 풀린 노래였다. 어떻게 보면 멜로디가 프렌들리한 곡인데, 굳이 이 프렌들리한 노래에 ‘피’ 같은 센 단어를 쓸 필요가 있냐는 고민이 있었다. 같은 이야기를 하되 보다 온건한 노선으로 가사를 고쳐쓰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결국엔 거의 데모 버전과 다르지 않게 곡이 유지됐는데, 나는 마지막까지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프로듀서 형은 괜찮다고 했지만. 계피_처음엔 가사에 이의를 많이 제기했다. 미학적인 관점에서 강한 감정을 강한 가사로 표현했을 때, 강한 감정을 절제해서 표현하는 것보다 에너지가 약하지 않을까 싶었다. 녹음하기 전날까지 고민을 했는데, 바비씨가 어떤 이유에서든 이대로 가자고 하더라. 나도 거기에 동의한 건 이 가사가 본인이 한번 다녀온 경험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음악을 하는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목적이 자기 표현이잖나. 그 표현을 바비씨가 했다고 하니, 미학이고 뭐고 그대로 가야겠다 싶어 가사를 그대로 쓰게 되었다. <더운 피>는 이번 앨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두곡 중 하나다.

-개인적으로든 음악적으로든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은가, 다른 점이 많은가. =정바비_예전에 계피가 우린 굉장히 다른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여기에 보충설명을 하자면 우린 굉장히 다르지만 결정적인 공통점을 가진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계피_(웃음) 뿌리는 같은데 표현은 완전 정반대로 하는 사람들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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