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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동] 탁상공론은 그만

영화나눔협동조합 이사장도 맡은 나우필름 이준동 대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우필름 이준동 대표는 몸이 열개라도 모자란다. 장준환 감독의 10년 만의 복귀작 <화이>를 제작하랴,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이하 제협)의 일을 챙기랴, 애니메이션 합작을 위해 미국과 한국을 수시로 오가랴, 이창동 감독의 신작을 준비하랴.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그가 일을 하나 더 벌였다. 4월6일 고양어울림영화관에서 열린 영화나눔협동조합(cinecoop, 이하 협동조합) 발기인 총회에서 이사장으로 선출된 것이다. 오래전부터 대안 경제와 그것과 관련한 활동에 관심을 가져온 까닭에 협동조합은 그에게 어색한 일은 아니다. 최근 제협 역시 협동조합 모델을 통해 영화제작과 배급을 시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의 머릿속에 있는 협동조합은 어떤 그림일까. 제협이 대기업 투자배급사의 제작 시스템과 다른 협동조합 같은 새로운 산업 시스템을 모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나눔협동조합 이사장으로 선출됐다. =바쁜 와중에 자리 하나를 더 맡게 되어 부담스러운 건 있다. 그러나 협동조합은 내가 주도적으로 한 게 아니다. 상임 이사를 맡은 최종태 감독이나 경기도의회 김달수 의원(민주통합당) 등이 오랫동안 고민하고 협동조합이라는 틀을 만들었다. 이 틀을 영화계 전체에 알리기 위한 ‘얼굴마담’ 같은 역할이 필요했던 거다. 내 이름이 협동조합을 알리고, 그것이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 정도는 해야겠다 싶어 맡았다.

-원래 협동조합에 관심이 있었나.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대안 경제의 한 방식으로서 협동조합을 고민한다는 기사와 자료가 나올 때마다 챙겨 읽었다. 하지만 영화산업과 협동조합의 접목은 생각하지 못했다.

-협동조합은 관객이 원하는 영화를 직접 선택해 배급과 상영을 하는 소비자 협동조합 방식과 관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영화를 직접 제작하는 생산자 협동조합 방식 두 가지를 모두 목표로 하고 있다.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가. 배급과 상영인가, 아니면 직접 제작인가. =소비자 협동조합과 생산자 협동조합 두 방식이 뒤섞인 모델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다만, 소비자 협동조합 방식으로 출발하되 조합원 수가 많아지고, 직접 제작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영화가 생기면 제작도 가능하다고 본다.

대안 경제의 한 방식

-어떤 형태든 간에 조합원 확보가 최우선 과제다. 사회적으로 생활협동조합의 바람이 불고 있다지만 여전히 협동조합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다. =많이 알려서 빨리 500명 이상의 조합원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잠재적인 자원은 많다. 협동조합은 아니지만 유사한 고민을 해온 시네마테크나 전국 여러 지역의 예술영화전용관 회원들 역시 조합 가입 대상이다. 그외 다양성 영화에 관심이 많은 관객에 알려서 가입하게 하는 방법도 있다. 지역의 문화센터를 이용하고 있는 시민들도 조합원이 될 수 있다.

-제협 역시 협동조합 방식의 대안적 제작 및 배급 모델을 추진하고 있다. =대답을 하기 전에 전제를 하자면 제협은 대기업 투자배급사와 적대적 관계가 아니다. 대기업 투자배급사가 한국 영화산업에서 일정한 역할을 해온 건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대기업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강화되면서 산업 생태계의 건강성이 나빠졌다. 제협이 책임있는 단체라고 한다면 적어도 4대보험과 최저생계비 정도는 합리적으로 지급될 수 있는 제작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 여러 고민 중 하나가 제작자가 얼마씩 출자해 재원의 기초를 마련하고, 배급까지 소화하는 생산자 협동조합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협동조합 방식의 시도를 두고 제협 내부에서 반대 의견은 없었나. =특별한 반대 의견은 없었다. 이것 자체가 나쁠 이유는 없으니까. 이건 새로운 시스템이 아니다. 대기업 투자배급사의 시스템은 그 자체로 존중하고, 영화산업의 건강성이 회복될 수 있는 또 다른 길을 하나 더 모색하고 시도하자는 것이다.

-협동조합과 함께 지적재산권 및 판권 문제 역시 올해 제협의 주요 사안 중 하나다. =용어를 저작권, 지적재산권, 판권(저작권법에 의하여 인정된 재산권 중 하나) 등 정확하게 구분해 사용해야 한다. 용어를 혼재해서 쓰고 있기 때문에 소유에 대한 개념도 혼선을 빚고 있다. 저작권은 창작자가 그 자신이 창작한 저작물에 대한 고유의 권한이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건 수익 배분과 관련한 지적재산권 및 판권이다. 2005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영화의 판권은 투자사가 5년 정도 가지고 있다가 그 이후부터 제작사에 귀속되는 식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 투자배급사가 영구적으로 판권을 직접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창작자는 자신이 작업한 작품에 대한 권리 또는 가져야 할 자부심을 잃었다. 이것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얘기다. 올해부터는 어떤 프로젝트에 한해 제작자가 메인이 되어 여러 경로를 통해 제작비를 조달하고, 배급사는 순제작비의 일부 투자 및 배급만 맡는 방식을 시범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동반성장’이란 틀 불만스럽다

-정확히 1년 만인 지난 4월16일 제2차 한국 영화산업 노사정 이행협약식이 열렸다. 1년 전 노사정 이행협약식에서 제기된 여러 과제가 해결되거나 이행되지 않은 게 사실이다. =노력은 했으나 실행된 건 하나도 없다. 그간 노사정에서 해결이 시급한 문제가 부율 조정, 교차상영 문제 해결 방안 등이었는데, 대기업쪽에서 어떤 건 실행하려고 하고, 또 어떤 건 미루려고 하다 보니 중요한 사안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최근 CJ를 비롯한 대기업 투자배급사는 무비꼴라쥬 20개관 확대를 비롯해 영화계 상생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듯하다. =CJ를 비롯한 대기업이 영화계와 소통하려는 노력은 보인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 CJ E&M 전략지원담당 탁용석 상무를 여러 차례 만나 영화계의 핵심 요구 사안 두 가지를 전달했다. 하나는 배급과 상영을 분리할 것. 또 하나는 제작을 하지 않을 것. 늘 얘기했지만 배급과 상영이 한 그룹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까닭에 불공정한 사례가 늘어나고, 그것으로 인한 문제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 그걸 끊자는 거다. 제작을 하지 말라고 하는 건 CJ엔터테인먼트 박동호 전 대표가 영화계에 약속했던 부분이다. CJ엔터테인먼트의 시네마서비스 인수와 관련한 이런저런 잡음이 나오던 2003년 당시, 박동호 대표는 CJ 부장급 인사 11명과 함께 제협을 비롯한 영화계와 대화를 한 적 있다. ‘CJ는 왜 제작을 하려고 하냐’는 영화계의 질문에 박동호 전 대표는 분명하게 대답했다.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영화의 프로세스를 이해할 필요가 있고, 영화의 프로세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화를 한두편까지는 직접 제작해야 한다. 단, 그 이상은 절대 제작하지 않겠다.’ 그 말을, 그 태도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협과 CJ가 내린 결론은 무엇인가. =배급과 상영을 분리하는 문제를 당장 시행하기 어렵다면 그건 장기적인 과제로 가지고 가고 제작은 원래 약속대로 그만두라고 전달했다. 그러나 CJ는 영화계의 요구 사항을 거절했다.

-그런 상황에서 현재 민주통합당 최민희 의원실은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 개정안 발의를 앞두고 있다. 영화상영업과 배급업 겸업 금지, 대기업의 영화제작업 참여 금지, 멀티플렉스 극장의 특정 영화 스크린 점유 제한 등 영화산업에서 대기업의 독과점을 막는 내용이 이번 개정안에 다수 포함되어 있다. =법 개정이 유일한 해결 방안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접점을 찾는 데 실패한 현재 상황에서 법 개정이 불가피한 것 같다. 사실 CJ가 정말 잘되기를 바란다. 나 같은 경우, 외국과 합작을 많이 시도하기 때문에 밖에 나가면 CJ와 함께 일을 한다는 사실이 나한테 많은 힘이 된다. CJ와의 협상에서 요구한 것도 CJ가 굴복하고, 손해 보라는 얘기가 아니다. 한국영화 전체가 튼튼하게 되면 가장 큰 파이를 가지고 있는 CJ 역시 더 발전할 수 있다는 거다. 그러나 현재 CJ가 하고 있는 방식은 CJ를 제외한 나머지 영화계 토양을 망치고 있다. 그것은 결국 한국 영화산업에도, CJ에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제2차 노사정 이행협약식을 열며 영화계 여러 구성원들이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있는데, 영비법 개정안 발의는 너무 성급한 건 아닐까. =물론 영진위에 의한 협상 테이블은 계속 만들어지겠지. 하지만 강제성은 없다. 개인적으로 동반성장협의회라는 틀이 불만스럽다. 고민만 하고 하나도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제작자가 바로 서야 모두 산다

-4월2일 박근혜 정부의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이 MBC 라디오에 출연해 창조경제를 두고 “영화를 만들면 CJ 같은 배급사가 대가를 많이 가져가는데 창조적 아이디어를 낸 시나리오작가가 대가를 가져가도록 하는 게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경제 생태계”라고 말했다. 제협을 비롯한 감독조합, 영화인회의, 여성영화인모임은 그 발언에 대한 지지 성명서를 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창조경제에 대한 지지 선언이 아니다. 창조경제가 김광두 원장이 말한 그런 내용이라면 우리는 기대를 하겠다는 뜻이었다.

-대기업과 각을 세우고 있는 제협의 최근 행보를 두고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PGK) 같은 후배 프로듀서들은 “선배 제작자 역시 대기업 자본의 혜택을 어느 정도 받지 않았냐”고 비판할 수 있을 것 같다. 대기업 중심으로 짜여진 산업환경으로부터 제협 역시 자유로울 순 없을 것 같은데. =(고개를 숙이며) 산업환경이 대기업 중심으로 구조화된 이유가 어찌됐든 간에 기본적으로 그건 우리 선배 제작자의 책임이다. 선배 제작자가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논리에 대해서는 받아들여야지. 변명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대기업 중심의 영화산업 환경을 즐겼는가. 그건 아니라는 거지. 제협을 중심으로 우리 역시 산업의 건강성과 공정성에 대해 끊임없이 얘기하고 노력해왔으나 역부족이었다. 그렇다고 책임이 면책되는 건 아니지만. 다만, 전에도 노력해왔듯이 지금부터라도 더 열심히 노력해 더 건강한 산업을 만들 수 있도록 힘을 합쳤으면 좋겠다.

-현재 <화이>를 제작하고 있다. 아직 촬영 중이지만 만족도는 어떤가. =좋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뛰어난 연기력과 카리스마를 동시에 갖춘 김윤석을 비롯해 박용우, 조진웅, 장현성, 김성균, 여진구 등 베테랑 배우들이 탄탄하게 포진해 있다. 10년 만에 충무로 복귀하는 장준환 감독과 함께 작업할 수 있게 되어 영광스럽다. 김지용 촬영감독, 모그 음악감독 등 스탭도 현재 충무로 최고들이고. 무엇보다 <화이>는 이제껏 한국영화는 물론이고 세계 영화사에서 단 한번도 만들어지지 않은 새로운 이야기라는 데 자부심을 갖는다.

-그런 이유로 <화이>에 거는 흥행 욕심이 더욱 클 것 같다. 특히 최근 1, 2년 동안 제협의 후배 제작자의 흥행 성공을 보며 속으로 칼을 갈았을 것 같다. =원동연 대표가 “형, 제작자는 두 가지 유형밖에 없는 것 같아. 1천만 관객 넘긴 제작자와 1천만 관객 못 넘긴 제작자”라고 말했다. 후배들의 깐죽거림 때문에 속이 불편하긴 하지만…. 많은 관객이 영화를 봐줬으면 좋겠다 싶은 욕망보다 완성도있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욕망이 더욱 강하다.

-이것저것 챙겨야 할 일이 많아 정신이 없을 것 같다. =지금까지 한국의 제작자들이 뒤로 물러서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물론 좋은 의미에서 그런 태도를 보인 거겠지만. 제작자들이 제 위치를 세우지 못하기도 했다. 요즘 <씨네21>이나 영진위가 발간하는 <한국영화>를 보면 프로듀서 이름은 있는데 제작자 이름은 없다. 영화산업에서 제작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건 분명 있지만 앞으로라도 제 역할과 위치를 적극적으로 세우면 될 것 같다.

이준동 대표는 한국 영화산업보다 자신의 작품 이야기를 할 때 얼굴이 환했다. <화이>만큼이나 미국과 합작하고 있는 애니메이션도 많은 공을 들이고 있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희곡 중 하나인 <시집 가는 날>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인데, 현재 미국의 여러 감독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중이란다. 이중 한국의 영화팬들이 깜짝 놀랄 만한 감독도 포함되어 있다. 애니메이션은 2015, 2016년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 이후 오랜만에 선보이게 될 이창동 감독의 신작 역시 그의 올해 계획 중 하나다. 챙겨야 할 작품이 한두 가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가 끊임없이 한국 영화산업을 고민하고, 산업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뛰어다니는 이유가 있다. 보다 건강하고, 합리적인 제작환경 조성이 자신을 비롯한 동료 영화인들이 오랫동안 영화를 만들기 위한 필수조건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 어느 때보다 그의 어깨가 무거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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