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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편지와 부음
김혜리 2013-05-03

▲앞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영화로 추도사를 쓰고, 자서전을 쓰게 될 것이다. 신귀백 감독의 <미안해, 전해줘>와 이호재 감독의 <잉여인간들의 히치하이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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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로 넘어가는 자정. 우편으로 따로따로 날아온 영화 두편을 들고 TV 앞에 앉았다. 발송인은 양쪽 다 영화를 만든 감독님들이다. 언제 스크린에서 상영하게 될지 운명이 (아마도) 정해지지 않은 영화들. 얼마 전 인터뷰한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의 오멸 감독이 극장 개봉하지 않은 전작 <이어도>에 관해 들려준 말이 떠올랐다. “<이어도>는 내가 보여주고 싶은 사람에게 보내줘요. 그게 저한테는 개봉이에요.” 그래서일까? 개봉 날짜를 받아놓은 영화의 시사용 DVD를 볼 때보다 엄숙한 자세가 나왔다. 이 영화들에겐 지금 내 방이 개봉관이니까.

전주에서 날아온 신귀백 감독의 <미안해, 전해줘>는, 2004년 타계한 박배엽 시인을 추억하는 다큐멘터리다. 가족과 친구의 목소리를 통해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시인의 초상이 한 조각씩 맞춰진다. 고인은 생전에 동인지 활동만 하고 시집은 출간하지 않았다. 논리와 고집이 강했다. 전북대 앞에서 시인이 14년간 운영한 인문사회과학 서점은, 장사보다 후배들에게 밥과 술을 먹이는 데에 뜻을 둔 공간이었다. 목수 일을 즐겨 했는데 직선을 싫어해 슬쩍 휜 책장을 짰다. 휴전선을 건너지 않고 중국으로 우회해 백두산에 가는 게 무의미하다고 주장한 일화가 유훈처럼 남아, 몇몇 지인은 지금도 백두산 관광을 망설인다. 이제 장년에 이른 친구들은 이렇다 할 토론 없이 취하기만 하는 술자리가 끝나면 “배엽이가 있었다면 뭐라고 했을까?” 생각하곤 한다. 절대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궁극적으로 <미안해, 전해줘>는 청춘에 관한 영화다. 우리가 평생 버리지 못하고 끌고 다닐.

<미안해, 전해줘>의 카메라 앞에 앉아 회고하는 문인들을 바라보다가 불쑥 깨달았다. 예전에는 머리 희끗한 얼굴이 화면에 나오면 그저 “어르신이네” 하고 말았던 내가, 이제는 그들이 젊은 시절 어떤 모습의 청년이었고 어떤 분위기의 아가씨였는지 저절로 유추할 수 있게 되었다. 보이지 않던 것을 볼 수 있게 된 조홧속이 신기한 동시에, 대신 더이상 볼 수 없게 된 것도 있으리라 짐작하니 한쪽이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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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로 온 두 번째 영화, <잉여인간들의 히치하이킹>은 말하자면 <미안해, 전해줘> 세대의 아들뻘에 해당되는 청년들이 DSLR 카메라로 쓴 현재진행형 청춘일기였다. 촬영, CG 등 각기 다른 장기를 가진 영화과 동창과 이호재 감독은 아르바이트로 등록금 전액을 마련하지 못하자 내친김에 비행기표를 사서 유럽으로 떠난다. 민박과 호스텔의 홍보영상을 찍어주고 대신 음식과 잠자리를 얻어가며 1년 동안 유럽에 체류하겠다는 계획이다. 생존이 해결되면 뮤지션을 발굴해 뮤직비디오도 찍고 여행의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찍겠다는 원대한 포부도 품는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점점 불안해진 건 동봉된 편지 때문이었다. 이호재 감독은, 극장 영사실에서 영화를 독학하다 전공까지 하게 됐다고 자기를 소개했다. 그리고 기사를 읽으며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웠던 우리 잡지 지면에서 본인이 만든 영화에 관한 글을 언젠가 읽기를 소망해왔으나 ‘그 바람 이 이뤄질 것 같지 않아’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낸다고 썼다. 응? 혹시 그는 영화를 포기할 생각을 하는 걸까? 그러나 눈앞에서 전개되는 영화 속 이호재 감독과 세 친구들은 너무도 진취적이고 끈질겼다. 굶고 한뎃잠을 자면서도 부지런히 카메라를 돌리고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었다. 대체 저 여행과 이 편지 사이에 어떤 경험이 있었기에 저토록 대책없이 씩씩한 젊은이의 무릎을 한풀 꺾어놓았을까. 제일 부당하게 느껴진 건 일행이 줄곧 스스로를 ‘잉여인간’이라는 자조적 이름으로 부른다는 사실이었다. 지금의 20대는 얼마나 과로해야 잉여가 아니라고 안심할 수 있는 건지. 고백건대 나는 청춘을 통틀어 저들만큼 용감하게 내 자신을 세상에 던지고 참을성있게 가능성을 시험해본 기억이 없다.

신귀백 감독은 몇해 전 광주극장에서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에서 나를 만난 인연으로 영화를 보낸다고 메모를 붙였다. 이호재 감독은 청춘을 기록한 이 영화 안에, 자신이 읽으며 성장한 영화 기사의 흔적도 있을 거라고 썼다. 독자엽서 대신 영화로, 잡지의 답장을 받은 기분은 신기하다. 참 이상한 펜팔. 이제 다시 우리가 새로운 주소로 답장을 쓸 차례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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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 감독은 바야흐로 유럽 공동체 관광 홍보 대사가 될 기세다. 뉴욕이 긴 세월 독점했던 이 탁월한 도시 감식자를 유럽이 나눠 갖는 일에 대해선 전혀 불만이 없다. <로마 위드 러브>가 당혹스러웠던 이유는 영화적 긴장감이 두드러지게 희박해서다. 우디 앨런의 책상 서랍에 상비된 아이디어- 서로 특별히 연관되지 않는- 중 몇 가지를 골라, 로마 하면 대뜸 연상되는 키워드와 조립한 인상이다. 개중 재미있는 부분은 앨런이 직접 출연한 에피소드인데 그 단락을 가리고 보면, 마치 우디 앨런의 독실한 팬인 다른 감독이 작정하고 앨런을 모사한 영화 같다. 치명적인 유혹녀로 분한 엘렌 페이지의 캐스팅도 치명적이다. 그녀가 연기한 모니카는 아무리 봐도 스칼렛 요한슨풍 캐릭터이고, 페이지와 요한슨은 달라도 너무 다른 배우다. 우디 앨런 감독은 평생의 걸작을 향한 야심 따윈 없다고, 규칙적으로 영화를 만듦으로써 ‘제정신’을 유지하며 사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고 밝혀왔다. 결과적으로 <로마 위드 러브>는 내게 앨런의 소신을 절감하게 한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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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가 타계했다. 일반 관객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동료’들이 SNS를 통해 조의를 표하고 있다. 놀라운 점은, 쏟아지는 메시지의 다수가 단순히 존경을 담은 애도가 아니라 개인의 내밀한 기억이 삽화로 들어간 ‘이야기’라는 점이다. 많은 감독들은 이 영화로 말하고 싶은 바가 뭐였냐는 기자의 질문에 “내 영화를 통해 답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대화의 계기를 제공하고 싶었다”고 답하곤 한다. 에버트의 부음이 불러온 추억의 홍수는, 영화평이 영화로부터 비롯되는 수백만개의 이야기 중 첫 번째 고리임을 방증한다. 소심한 나는 자문해본다. 그걸로 족하지 않은가?

에버트의 글과 방송을 보고 영화평을 쓰기로 처음 결심했노라 털어놓는 평론가와 저널리스트들도 적잖이 보인다. 반대로 내게 로저 에버트는 “넌 결코 평론가가 될 수 없다”고 100% 확인시켜준 인물이었다. 그는 연간 300편에 달하는 영화를 보고 마감을 지켜 일정한 밀도의 리뷰를 썼으며, 규칙적으로 블로그 포스팅을 했고 각국의 젊은 평론가 지망생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동시에 상아탑의 영화학자들과 견해를 나눴다. 어차피 모든 평론가가 에버트만큼 왕성히 일할 수 없고 그럴 기회를 누리지도 못하지만, 감히 영화와 평생 동행하겠다는 사람에게는 기본적으로 막대한 에너지와 속도가 요구된다는 전제를 에버트의 행보는 명심하게 했다. 어디서 읽었는지 가물가물하지만 리뷰를 어쩌면 그렇게 빨리 쓰냐는 질문에 에버트는 이렇게 대꾸했다고 한다. “난 남보다 글을 빨리 쓰는 게 아니라 책상에 빨리 앉을 뿐이다.” 가공할 근면함도 근면함이지만, 에버트의 가장 큰 재능은 영화에 끊임없이 기대를 걸고 매일 스크린 앞에서 난생처음처럼 흥분하는 능력이었다고 믿는다. 근본적으로 에버트는 어이없으리만큼 긍정적인 인간이었다. 종양 제거 수술로 먹고 마시는 능력을 잃은 다음, 요리책을 썼으니 말 다했다. 에버트가 마지막으로 리뷰한 영화는 테렌스 맬릭 감독의 <투 더 원더>였다고 한다. 나는 천국의 극장에서 그가 제일 처음 본 영화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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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크 쉘터>의 아내 사만다

연말이 되어봐야 알 일이지만, ‘올해의 아내 상’의 강력한 후보가 등장했다. <테이크 쉘터>의 커티스는 악몽이 가져다준 강박 때문에 가족의 행복을 위협하는 행동을 한다. 아내 사만다(제시카 채스테인)는 실망하고 분노하지만 놀라운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준다. 다음은 그녀의 매뉴얼이다. 1. 남편이 가정을 지킬 의지가 있는지 확인한다. 2. 대전제에 합의한 이상 쓸데없는 감정싸움으로 고통을 늘리지 않는다. 3. 경제적 피해를 응급 복구할 절차를 밟는다. 4. 일상의 리듬을 평소대로 유지해 심리적 안정을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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