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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어에서 허무로

항로변경한 난니 모레티 감독의 새 이정표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

베스파를 타고 로마 시내를 달리며 ‘나의 즐겁지 못한 일기’를 중얼거렸던 신경쇠약 직전의 좌파 감독, 난니 모레티가 돌아왔다. 한국에서는 조금 늦게 개봉되는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2011)를 통해서다. 국내에서 개봉하지 않은 <악어>(2006)를 거슬러 <아들의 방>(2001)까지 올라가자면 무려 10년 만에 만나는 그의 신작이다. 그 세월 동안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런 영화를 만들게 한 것일까. 새 교황의 바티칸 탈출기 혹은 기묘하게 변주된 체호프의 심리극을 더 잘 이해해보고자, 한창호 영화평론가에게 모레티의 증후를 읽어달라 부탁했다. 그의 글을 통해 모레티를, 그리고 이 세계를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난니 모레티는 자신을 ‘갈매기’로 여기는 것 같다.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 말이다. 이해받지 못하며, 사랑에 고통받고, 마치 죽은 존재처럼 사는 자신을 갈매기라고 부른 드라마 속 젊은이의 아픔이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2011)에까지 전염돼 있다. 날카로운 아이러니가 넘치는 코미디의 전문가 모레티는 지금 냉소의 패기를 내려놓고, 체념과 애도의 슬픔을 나누고 싶어 한다. 정치 패러디극인 <악어> 이후 5년 만에 발표한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는 모레티 영화의 새로운 전환점으로 작동할 것 같다. 여기에는 코미디를 통제하는 통렬한 허무주의가 있다. 아마 이탈리아 영화사는 훗날 모레티를 평가할 때, 그의 출세작인 <나의 즐거운 일기>(1993)와 더불어 바로 이 작품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를 그의 대표작으로 기록할 것 같다. 모레티는 대단한 작품을 들고 다시 나타난 것이다.

‘벙어리’가 된 교황

알려진 대로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라는 제목은 반어법이다. 새로 교황에 선출된 추기경이 그 교황직을 거부하는 데서 영화는 출발한다. 의례대로 바티칸의 추기경이 베드로 성당의 발코니에 먼저 나가, 새로운 교황(미셸 피콜리)이 선출됐음을 알리는 선언을 한다. “하베무스 파팜.”(Habemus Papam,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 이제 새 교황은 신도들이 모여 있는 광장을 바라보며 발코니에서 손을 들어 축원을 하면 된다. 그러면 공식적으로 교황의 임무가 시작된다.

그런데 새 교황은 갑자기 “악!” 하고, 단말마적 절규를 하더니, “나는 못해”라며 콘클라베(추기경들의 투표)가 진행됐던 시스티나 예배당으로 도망가버린다. 주인공의 화려한 등장을 기다리던 광장의 수많은 신도, 또 이 모습을 TV 등을 통해 지켜보던 세계의 시민들은 순간 혼란에 빠진다. 이미 예정된 연설을 거부한, 혹은 연설을 하지 못하는 주인공을 만난 당혹감이다. 사람들은 세계 최고의 공연을 기대했으나, 카타르시스의 대단원이 없는 불안과 마주하는 허탈감에 빠졌다. 뭘 해야 좋을지 모를 막막함이 베드로 광장을 감싸고돈다.

난니 모레티는 1970년대 이탈리아를 휩쓸었던 극좌파 출신이다. 정치적으로 굳이 구분하자면 모레티는 좌파이지만, 제도권의 코뮤니스트들도 쉽게 믿지 않는, 어찌 보면 근본주의자에 가깝다. 그때부터 모레티는 사실상 자기 세대의 대변인이 됐다. 이들은 기성세대를 믿지 않았다. 부정부패와 권모술수에 능한 우익에 대한 반감, 권력을 잡기 위해 이념마저 자꾸 변경하는 좌익에 대한 실망이 이들 청년들이 공유하던 감정이었는데, 모레티는 우익은 물론이고 좌익까지 패러디의 대상으로 삼아, 단번에 이탈리아 영화계의 총아로 우뚝 섰다.

그때부터 우익은 그를 혐오하고, 좌익은 그를 흠모하는 관계가 형성됐다. 우익은 모레티를 미워하지만 자기 진영에 그와 같은 대중 장악력이 큰 영화감독이 없다는 사실을 늘 애석해 했고, 좌익은 자기들도 냉소의 대상에 곧잘 오르지만 그것은 격려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를 짝사랑하는 관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새로운 영화를 내놓을 때마다 이탈리아 전체에 커다란 논쟁을 가져오는 유일한 감독이 모레티다. 속된 말로 슬슬 하는 경우가 없다. 이를테면 이탈리아 좌파가 전후 최초로 정권을 잡았을 때를 배경으로 <4월>(1998)을 내놓았을 때도 그는 축하는커녕 트로츠키주의자가 만드는 빵가게에서 뮤지컬을 만들겠다고 딴청을 떤다. 첫 출발하는 좌파 정권, 그들의 오염된 정책을 과연 지지할 수 있을지, 오히려 불안하다는 것이다. 최근작인 <악어>에서는 당시의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뭐든지 집어삼키는 악어 같은 존재라고 맹공을 퍼붓는다. 이쯤 되면 모레티의 코미디가 출중한 것인지, 그 나라의 표현의 자유가 출중한 것인지 혼란에 빠진다.

그런데 이번에는 더 긴장됐다. 교황을 다루기 때문이다. 결코 세속인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없는 교황을 코미디의 대상으로 설정했는데, 그러고도 일반적인 선인(善人)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 게다가 모레티가 정신분석의로 출연해 교황의 정신을 분석한다니, 너무 까부는 게 아닐까? 오히려 자기부터 정신분석을 좀 받아야 하지 않을까 같은 염려들이 제기됐다.

단호하게 말하지만, 이 영화는 결코 교황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우리는 연설을 하지 못하는, 말을 잃은, 그래서 끝을 맺지 못하는 세상 속에 내팽개쳐진 불안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안톤 체호프의 심리극이 공연될 때

영화 초반부의 해프닝 같은 코미디는 중반에 새 교황이 바티칸을 탈출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이제부터 영화는 코미디라기보다는 안톤 체호프의 심리극을 닮아간다. 말을 잃은 새 교황은 다시 말을 되찾기 위해 과거를 기억하기 시작한다. 곧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평범한 시민인 척 속이고 찾아간 여성 정신분석의(마르게리타 부이)로부터 ‘부모애정결핍’이라는 말을 듣고 움찔하며, 또 직업을 묻는 질문에 ‘배우’라고 엉겁결에 거짓말을 해버린다.

‘배우’라는 단어는 참으로 복잡한 대답인데, 의미가 대단히 다층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배우 미셸 피콜리의 대답이기도 하고, 또 새 교황의 어릴 적 꿈이기도 하고, 지금 그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기도 하다. 그가 훌륭한 배우처럼 베드로 성당의 발코니라는 무대에 서서, 사람들이 기대했던 연설을 했다면 지금과 같은 혼란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모레티의 드라마가 늘 그렇듯, 미셸 피콜리가 ‘배우’라고 대답한 순간부터 이 영화도 자기반영적인 성격을 띤다. 곧 우리는 허구 속의 허구라는 흐릿한 경계에 놓여 있는 것이다.

혼자서 로마 시내를 돌아다니던 새 교황은 우연히 숙박한 호텔에서 순회공연 중인 극단을 만난다. 이들의 레퍼토리는 체호프의 <갈매기>다. 단원들 중에는 약간 미친 배우가 있는데, 그날 밤 그는 갑자기 복도로 나와 자신의 대사를 큰소리로 말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자기 대사는 물론이고, 다른 배우들의 대사, 그리고 대본의 괄호 속에 있는 지문까지 모조리 외워댄다. 암기에 대한 강박 때문인지, 정말 광기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그는 복도를 뛰다시피하며 연기에 몰입하고 있다. 미친 듯 말을 하는 그가 갑자기 어떤 대사를 잊은 순간, 새 교황이 그 대사를 대신 하기 시작한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어. 결혼하고 싶었지만 결혼도 못했고, 늘 도시에 살고 싶었는데, 여기 시골에서 삶이 끝났어.”

교황은 연극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엉겁결에 거짓말을 했다. 대신 동생은 배우가 됐고, 이런 이유들로 <갈매기> 같은 명작의 대사는 거의 다 외우고 있었다. 아마 결혼(사랑)도 하고 싶었을 테고, 시골(교회)이 아닌 곳에서 살고 싶었을 것 같다. <갈매기>에서는 시골의 늙은 지주인 소린이 내뱉는 대사인데, 새 교황은 그에게 강한 동일시를 느낀 것 같다. 사실 이 유명한 대사는 삶에 회한을 느끼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갈매기’라는 제목은 사랑받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한 채 사는 젊은 주인공이 자책하듯 내뱉는 자기 비하의 단어인데(“나는 죽은 갈매기예요”), 날고 싶지만 죽어버린 우리 모두에 대한 통렬한 비유에 다름 아니다. 죽은 갈매기를 풀어서 말하면, 바로 소린의 대사가 될 것이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어….”

King’s Speech vs. Pope’s Speech

“왜 항상 검은 옷만 입지?” “내 삶에 대한 애도야.” <갈매기>의 첫 대사이자, 영화의 종결부에서 볼 수 있는 연극 공연의 도입부다. 극단은 드디어 로마의 어느 극장에서 공연을 시작한다. 새 교황은 흥분된 마음으로 객석에 앉아 있다. 그러나 그는 연극을 다 보지 못하고, 자신을 결국 찾아낸 추기경들과 함께 바티칸으로 되돌아간다. 이제 다시 발코니에 나가서, 축원할 일이 남았다. 사실 그는 로마의 밤 버스에서 혼자 연설을 연습하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는 낭만적 합의를 꿈꿨던 톰 후퍼의 <킹스 스피치>(2010)와는 정반대에 있다는 점만 밝힌다. 그 영화에서 영국의 왕은 정말 동화 같은 명연설을 했다. 모르긴 몰라도 모레티는 <킹스 스피치>에서 혐오감을 느꼈을 것 같다.

우리는 설사 낭만적이라 할지라도 잠시 의지할, 그 어떤 비전도 갖지 못한 채 베드로 광장에 황망하게 남는다. 교황은 관례적인 ‘연기’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갈매기’일 뿐이라는 사실을 묵시적으로 전언하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교황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최후의 보루인 신탁에의 의지(依支)와 믿음마저 잃어버린 채 컴컴한 어둠 속에 갇히고 말았다. 발코니에서 검은 어둠 속으로 퇴장하는 교황의 뒷모습에서 죽음에의 애도마저 느꼈다면, 결코 과장이 아닐 것이다. 모레티는 이제 아이러니보다 니힐리즘에 기대고 있다.

이탈리아영화의 영광을 다시 한번

난니 모레티, 젊은 영화인들의 리더

청년 난니 모레티가 벌써 예순이 됐는데, 그의 감독으로서의 경력은 잘 알려져 있는 것 같다. 사실 그것만큼 중요한 게 영화계에서의 그의 활동인데, 이 부분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독불장군 이미지와 달리 모레티는 젊은 영화인들의 리더로서의 역할에 온 힘을 쏟고 있다. 후배 영화인들을 키우기 위한 그의 노력은 거의 독보적이다.

모레티는 1981년 <좋은 꿈 꿔>로 불과 28살에 베네치아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곧이어 1985년 <미사는 끝났다>로 베를린영화제에서 은곰상을 받으며 이탈리아의 차세대 감독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모레티는 일찍 찾아온 영화적 기회를 자기만을 위해 쓰지 않았다. 1987년 영화제작사 사케르 필름(Sacher Film)을 설립, 자신의 영화는 물론이고 ‘작가’를 꿈꾸는 후배 영화인들의 제작에 발 벗고 나섰다. 카를로 마차쿠라티, 다니엘레 루케티 등의 중견 감독들이 사케르 필름을 통해 경력을 쌓았다. 신인을 위해 사케르 필름 페스티벌을 개최, 단편 공모전도 연다. 지금 이탈리아 영화계의 대표주자로 떠오른 <고모라>(2008)의 마테오 가로네 등이 여기 출신이다.

말하자면 모레티는 이탈리아영화의 영광을 재현하고 싶었는데, 그가 보기에 가장 큰 문제는 제작 시스템의 낙후였다. 모레티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는지, 90년대 들어 그를 롤모델로 삼은 젊은 프로듀서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회사가 판당고(Fandango)다. 이번에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를 만든 회사이고, 현재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문제작들은 대개가 판당고를 통해 발표된다. 이를테면 프랑스 MK2 같은 작가영화 전문 제작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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