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mix&talk
[이준익] 꿈의 공장에서 빚어낸 치유
이후경(영화평론가) 사진 오계옥 2013-10-11

<소원>으로 돌아온 이준익 감독

지난 4월, 한국영화감독조합 사단법인 조합장으로 만났던 이준익 감독은 복귀작이자 아동 성폭행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소원>에 대해 말을 아끼며 “뚜벅뚜벅 걸어서 마지막 장면까지 가봐야겠다”고 전했다. 그 길이 어떤 모양일지,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무언가를 감추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신도 한치 앞을 모르겠으니 직접 가본 뒤에 이야기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 같았다. 그의 전공분야인 질펀한 시대극도, 소재만 보고 예상할 수 있는 스릴러나 법정드라마도 아닐 것이라는 귀띔만 했다. 그리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10월 초, 그가 따뜻한 공기를 한껏 머금은 영화 <소원>을 들고 돌아왔다. 그를 몇번이라도 만나본 사람이라면, 상처입은 소녀의 마음이 치유되는 과정에 집중한 이 영화의 온기가 이준익이라는 사람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쉽게 짐작할 것이다. 그를 만나러 길을 나선 월요일 오후, 주말 동안 흐렸다가 갠 날씨도 더없이 푸근했다.

-일반시사 때 관객이 많이 울더라. =눈물 흘리게 하려고 한 게 아닌데. 꽉 머금고 있게만 하려고 했는데.

-감독님도 현장에서 많이 울었다는 소문이 이미 자자하다. =엄청 울었지. 설경구 연기, 이레(소원 역) 연기 보고 무슨 수로 안 울겠나.

-눈물이 많은 편인가. =원래는 별로 없었다. 근데 인생 총량의 법칙이란 게 있잖나. 나이 먹어서, 젊어서 안 흘린 눈물까지 다 쏟아내는 거지. 특히 1970~80년대에 청년기를 보낸 사람들은 사회로부터 강인함을 강요당했기 때문에 더 그런 것도 있다.

-시나리오 받고 ‘이걸 거절하면 내가 나쁜 놈 아닌가’라는 생각에 연출을 결심했다고. =그건 좀 미화된 거다. 이 영화를 결정한 데 가장 큰 요인은 작가의 진정성이었다. 김지혜라는 여성 작가가 썼는데, 한 신 한 신에 작가의 인간관, 가치관이 아주 선명하게 박혀 있더라. 그게 영화로 표현되면 아주 보석 같은 장면들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욕심이 생겼다.

-욕심이 생기는 만큼 조심스럽기도 했을 것 같다. =소중한 금붕어 한 마리가 든 어항을 서울에서 부산까지 배달하는 기분이었다. 서울에서 부산 가는 길이 얼마나 먼가. 가다가 계단에서 넘어지거나 옆 사람이랑 부딪혀서 깨져버리지 않도록 조심조심했다.

-연출 수락 뒤 시나리오에서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를 덜어내는 작업을 계속 한 것으로 안다. =사건의 정황을 알려주는 최소한의 장면만 남겼다. 보통 상업영화 시나리오의 기본 틀은 사건의 연속을 구조화하는 거다. 애초의 사건을 더 큰 사건이 덮어버리고 그것이 더 큰 사건을 불러일으키면서 점입가경이 되는 것. 근데 이 시나리오는 사건은 딱 하나고 나머지는 다 사연이다.

-이레양의 어머니가 빼달라고 요청한 장면도 과감하게 삭제했다고. =나도 시나리오에, 찍은 다음에 안 쓸 수도 있음, 이라고 괄호 쳐놨던 장면들이었다. 고민의 여지없이 ‘오케이~!’ 하고 뺐지.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감독, 스탭, 배우들이 이 영화를 찍을 때의 태도에 관해 합의한 바가 있다면. =영화적 컨벤션으로 감정을 강요하는 카메라 앵글이나 연기나 연출은 무조건 배제하기로 약속했다. 그렇게 쭉 찍어놓으니까 나도 울긴 엄청 울었는데 신파에 끌려간 것 같지는 않다.

-인물과의 거리가 전작들에 비해 특히 중요했겠다. =그렇지. 근데 그 부분은 김태경 촬영감독이 워낙 엄격하게 지켜줘서 내가 말할 것도 없었다. 이미 딱 제 위치에 가 있는데, 뭐. (미소)

-피해 현장에서 소원이가 ‘112’번으로 전화 거는 장면의 카메라워크에도 서스펜스는 없다. =노란 우산에서 신발, 가방, 휴대폰, 손에서 컷! 더 안 찍었다. 더 찍어놓으면 붙여야 하니 말아야 하니 말 나올까봐.

-최근 아동 성폭행 등을 소재로 한 영화들에 대한 반작용으로 <소원>을 만든 측면도 있나. =한국영화가 비용 면에서 할리우드영화에 준하는 시각적 자극을 제공하기 어려우니까 다른 자극을 파고든다. 관계의 자극, 표현의 자극. 특히 아동 성폭행 같은 소재는 뉴스에서도 보도 윤리상 끔찍한 장면은 모자이크 처리를 하잖나. 근데 영화는 사실과 진실 사이의 간극을 메우겠다고 그 끔찍한 장면 속으로 카메라를 쭉 들이밀어서 공분을 일으키려 한다.

-<소원>을 종종 “소재는 ‘자극’이지만 주제는 ‘무자극’”이란 말로 요약하고 있다. =소재의 재현을 목표로 한다면 난 이 영화로 복귀를 하지 않지. 그런 위험한 선택을 왜 하겠나. 지금 생각하면 그래도 위험한 선택이었던 것 같긴 하다. (웃음) 찍다보니까 무서워지더라고. 잘못하면 복귀가 아니라 제대당할 수도 있잖아. 은퇴는 복귀라도 되지, 제대는 군대에서 안 받아준다니까.

-김태경 촬영감독에게는 ‘먹먹하게 찍자’는 주문을 자주 했다고. =진공상태 같은 느낌 있잖나. 구체적으로 까뒤집듯이 찍고 싶지 않았다.

-굳이 까뒤집지 않아도 충분히 힘든 장면들도 많았을 거다. 가령 소원이가 옷에 묻은 대소변을 닦아주려는 아버지를 성폭행범과 비슷하게 보는 장면. =진짜 힘들었지. 신체적 피해가 1차 피해라면, 2차 피해는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 같은 심리적 피해다. 그게 1차 피해보다 훨씬 더 큰 거다. 근데 1차 피해를 수습하려는 과정에서 아버지가 2차 피해의 유발자가 된 거다. 그 순간 아버지와 딸 사이의 동화는 없어진 거다. 아버지가 남자로 일반화돼버렸으니까.

-<소원>과 관련해 팀 버튼의 <빅 피쉬> 이야기를 자주 하던데. =<소원>을 찍고 나니 그 영화 생각이 나더라. 모두가 현실을 사는데 거짓말쟁이 아버지 혼자 동화로 사는 거잖나. 나중에 아들이 먼 길을 돌아서 아버지와의 동화를 되찾는 거고. <소원>도 아버지와 딸 사이에 사라진 동화를 코코몽을 통해 되찾는 거다. 그게 두 영화의 아주 작은 공통분모다.

-촬영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이런 사건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새롭게 인지한 부분이 있나. =8살짜리 애가 실제로 성폭행을 당하면 자기가 성폭행을 당했다고 인지할 것 같나, 그냥 난폭한 폭행을 당했다고 인지할 것 같나. 후자다. 그걸 찍다가 알았다. 그걸 증명하는 대사가 뭐냐면 회복실에서 처음 소원이가 아빠 보고 하는 말이야. “아빠, 회사는?” 자기가 성폭행 당한 줄 알면 “아빠, 나 죽을 것 같아. 나 어떻게 해야 돼?”가 먼저 나왔겠지.

-이레양은 어떻게 만났나. 부모조차 출연을 반대하는데 ‘이건 영화잖아. 하고 싶어’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내 앞의 감독은 떨어뜨렸던 아이인데 다시 보니 얘다, 싶더라. 난 레퍼런스가 없는 배우는 두 가지만 본다. 첫 번째는 목소리. 글과 말은 대뇌가 사고하는 거라 거짓말을 할 수 있지만, 목소리는 세포가 움직이는 거라 거짓말을 못한다. 두 번째는 눈빛. 콧구멍, 귓구멍으로 사람 마음이 보이나. 오직 눈을 통해서만 마음을 살짝살짝 들여다볼 수가 있다. 이레는 목소리도 가식이 없고, 눈도 활짝 열려 있잖나. 이런 친구는 이북말로 연기해도 관객이 다 따라온다.

-감독과 배우가 일찍이 고집한 대로 순서촬영을 했다. 실제로 해보니 잘한 결정이었나. =안 그랬으면 수렁에 빠졌을 것 같다. 이 영화가 사건은 하나고 나머지는 다 사연이잖아. 내가 당사자가 아닌데 그 사연의 감정을, 그 감정의 흐름을 어떻게 다 계산할 수 있겠나. 계산할수록 ‘삑사리’만 나지.

-논리보다 감정의 연속성이 중요했던 만큼 배우들의 직관에 의지를 많이 했겠다. =당연하다. 내일 힘든 신을 찍어야 하면 전날 배우한테 대사 좀 알아서 만져오라고 한다. 내가 내 할 일을 남에게 전가하는 아주 여우 같은 인간이거든. (웃음) 배우도 대사를 책임지게 만드는 거다. 멍청하게 감독 혼자 다 계산해놨다가는 어디 잘못되면 수습도 못한다니까.

-감정 신은 주로 배우를 따르는 편인가. =감정 신에서 배우를 안 따라가는 감독은 바보다. 특히 설경구는, 감정을 쥐고 가는 힘이 대한민국 최고다. 설경구가 이 영화 찍으면서 매일 줄넘기를 5500번 했다잖나. 아마 성폭행 당한 딸의 아버지의 감정을 만드는 데 그만큼 시간이 걸렸다는 뜻일 거다. 그렇게 감정을 만들어서 현장에 오면 슛 들어갈 때까지 아무하고도 눈을 안 마주치려고 한다. 마주치면 감정이 날아가니까. 그럼 감독도 무서워서 눈을 못 마주친다. 근데 인터뷰하면 그냥 했다 그러지. 그게 다 영업비밀이라 그렇다. 내가 다 까줄게. (웃음)

-마지막 법정 신도 설경구에게 완전히 맡겨놓고 찍었다고.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더라. 현장에서 이레 보고 아빠한테 뛰어가서 “집에 가자” 두번만 하라고 한 것밖에 없다. 스탭들한테도 그다음부터는 경구 하는 대로 따라가라고 했다. 그랬더니 경구가 이레를 안고 법정 밖으로 나가더라.

-순서촬영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다른 부분을 포기해야 했던 적은 없나. =오히려 경제적이었다. 촬영회차가 48회차에서 43회차로 줄었다. 제작비도 1억원 넘게 남겼고 순서대로 찍으니까 감정이 명확한 거다. 테이크를 많이 갈 필요도 없다. ‘저스트 온리’ 이거밖에 없으니까.

-사건이 일어난 뒤 주로 아버지의 시점에서 진행되던 영화가, 소원이의 회복 과정을 요약한 몽타주 신을 기점으로 소원이의 시점으로 옮겨간다. 몽타주 신이 과감하다. =무려 10분짜리다. 2시간짜리 영화에 10분짜리 몽타주를 넣는 무식한 짓을 해버린 거지. 김상범 편집기사도 나보고 이거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알아서 해오라더라. 근데 원래 개연성이 없는 것을 마구 찍어놓고 나중에 편집에서 개연성이 있게끔 조작하는 게 몽타주 아니겠어? (웃음) 그래서 집으로 현장 편집기사를 불러 소스 보면서 샥샥 골라서 4시간 만들어 갔다. 다들 보고 눈물 쫙 흘리더니 한컷도 안 바꾸고 그대로 집어넣더라. 이레로 화자가 넘어갈 때 그런 매직타임이 필요했다.

-그 몽타주 시퀀스에서 공동체 의식이 제일 강하게 드러난다. 공동체 의식은 전작들에서도 꾸준히 발견됐던 부분인데. =어떤 예술가들은 개인의 세계관을 더 우수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겠지. 하지만 난 아무래도 공동체 가치관에 물들어 있는 세대다. 물을 더 빼야 하는데, 아직 다 못 뺐다.

-왜 빼야 하나. =타인에게 공동체 가치관을 강요할 수도 있으니까. 이미 현실은 개인주의로 고착화됐는데 과거의 집단주의를 자꾸 주장하는 것은 퇴행적이지. 내가 퇴행적이다. <소원>같은 영화도 개인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피해자 개인에 대한 사회적 침해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근데 나같이 전근대적인 사람은 이런 사건을 반드시 알고 넘어가야 할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찍는 거지.

-이 영화의 공동체 의식이 ‘판타지’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는 건 사실이다. 근데 또 한편으로는 그게 감독님의 성격이고 감독님의 삶일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나한테는 현실이다. 내 주변 사람들은 다 착하다. 착하지 않은 사람은 안 만나니까. (웃음) 나는 도움을 엄청 많이 받으며 살았고, 그 도움을 다 갚지 못하고 있는 빚쟁이다. 그게 영화에 반영되는 거겠지. 인간의 뇌 회로는 자신의 삶의 경로에 비례하게 돼 있다. 그래서 성격이 운명이라는 거다. 내가 한 말이 아니라 375년(?) 전에 셰익스피어가 한 말이다.

-누군가는 이 영화 속의 공동체를 결코 현실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해도, 최선의 삶에 대한 가능성을 믿으며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보나. =그럼. 내게 있어서 영화는 꿈의 공장이라고. 관객이 내는 표값도 다 꿈값을 지불하는 거 아냐. 그렇게 산 꿈은 관객 것이 되는 거지.

삼청동 근처에서 진행한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이준익 감독의 등 뒤로 익어가는 가을 오후의 햇빛이 꿈처럼 아름다웠다. 그 햇빛 아래에 서서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잡던 그는 얼마 전 오토바이 사고를 당했다며 아무렇지 않게 팔과 다리를 걷어 흉터를 보여줬다. “상처를 정면으로 응시해야 그 상처를 이길 수 있다”는 <소원>의 테마일 뿐 아니라 그의 삶의 태도이기도 한 듯 보였다. 현실과 꿈의 길항작용 속에서 상처를 견디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힘. 그것을 가장 잘 아는 감독 중 한명인 그는 “죽다 살아났다.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거지”라며 씩 웃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는 영화감독으로서도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셈이다. 스탭들이 “한번 더 찍어야 한다”고 아우성을 피우면, “평생 이 영화만 찍을래?”라며 태연히 다음 컷으로 넘어간다는 이준익 감독. 그의 다음 장면이 기다려진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