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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 x cross] 댄서의 순정
이주현 사진 오계옥 2013-10-23

서바이벌 <댄싱9>에 출연한 현대 무용계의 별 이선태

10월5일, 댄스 서바이벌 프로그램 <댄싱9>이 막을 내렸다. 레드윙즈가 블루아이를 근소한 점수 차로 따돌리고 우승했고, 우승팀의 MVP는 비보이 하휘동에게 돌아갔다. MVP는 심사위원 점수와 시청자 투표 결과를 합산해 뽑았는데, 심사위원 점수만으로 따지면 단연코 400점 만점에 399점을 받은 이선태가 MVP감이었다. 솔직히 이러한 점수나 결과보다 더 놀라운 건 현대 무용계의 총아인 이선태가 <댄싱9>에 출연했다는 사실 그 자체다. 제38회 동아무용콩쿠르 대상, 제5회 서울국제무용콩쿠르 시니어 남자 컨템포러리무용 1위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의 소유자인 그가 왜 잘하면 본전, 못하면 망신인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했을까. 2013서울국제공연예술제 무대에 오르기 전날, “아직도 <댄싱9>의 연속인 것 같다”는 이선태의 소중한 시간을 잠시 훔쳤다.

-<댄싱9>이 끝난 지 일주일 만에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무대에 선다. =제대로 발 뻗고 잘 틈도 없었다. SPAF를 준비할 시간이 많지 않아서 연습을 많이 하지 않아도 가능한 파트만 맡았다. 솔로 무대도 2~3분밖에 되지 않는다.

-<댄싱9> 제작진으로부터 먼저 출연 제의를 받은 것으로 안다. 분야별로 내로라하는 춤꾼들에게 제작진이 연락을 취했던 건가. =내로라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여기저기 연락을 많이 한 것 같더라. 순수예술하는 사람들이 방송 출연을 꺼리는 편이라 현직에서 활동하는 무용수들을 직접 만나 프로그램의 취지를 상세히 설명한 것 같다. 나 역시 <댄싱9>의 포커스가 춤에 맞춰져 있다는 생각이 들어 출연하게 됐다. 설득당한 건 아니다. 비보잉, 발레, 현대무용 등 각 장르의 댄서들이 한팀을 이뤄 콜라보레이션을 한다는 얘기에 끌렸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게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했을 텐데. =물론이다. 나름 무용대회에서 수상도 많이 했고, 학교(충남예술고등학교)에서 제자들도 가르치는데 혹시 떨어져 추한 꼴 보이면 어떡하나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연한 건 현대무용의 현실 때문이었다. 국립현대무용단 빼고 후원을 받는 현대무용단은 없다. 공연 하나 올리면 댄서들이 직접 티켓 팔고, 세트 만들고, 의상도 사러가야 한다. <댄싱9>을 통해서 현대무용이란 장르의 매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댄싱9>이 터닝포인트가 될 거라 생각했다. 그동안 뚜렷한 목적의식 없이 댄서로만 지냈던 것 같다. 사업을 펼친 것도 아니고 본격적으로 안무자의 길에 뛰어든 것도 아니고. 그때 <댄싱9> 출연 제의가 왔다.

-이름난 무용수조차 무용만 해서는 먹고살기 힘든 게 현실인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레슨밖에 없다. 돈을 벌려면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데 나는 공연을 하는 게 주목적인 사람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무용수들이 퍼포먼스와 티칭을 동시에 하고 있다.

-춤의 시작은 비보잉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비보잉을 했다.

-충남 부여 출신인데, 충남에서 유명한 비보이였나. =충남까지는 진출을 못했고 부여에선 잘했다. (웃음) 3살 많은 형이 있는데, 맨날 형들이랑 어울려 다니면서 춤췄다. 그런데 형들이 고3 되더니 춤을 안 추겠다는 거다. 중3 때 혼자 남은 거지. 그러다가 중학교 1, 2학년 교실을 돌아다니면서 애들 불러 모아 춤을 가르쳤다. 공연도 하고. 공연장에서 우연히 예술고등학교 선생님 눈에 띄어 충남예고에 진학했다. 춤을 계속 출 수 있다는 얘기에 혹했다.

-184cm의 키에, 손발도 큼지막하다. 무용을 하기에 탁월한 신체조건이라고들 한다. =한국에 키 큰 남자 무용수가 많이 없어서 돋보이는 것 같다. 그런데 키가 크면 춤추기가 힘들다.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은 속도로 움직이려면 더 빨리 움직여야 하니까. 어릴 때 같이 춤추던 형들이 ‘너는 키가 커서 무대에 서기만 해도 상 탈 거야’라는 말을 많이 했다. 난 실력으로 상 받고 싶은데 키 커서 상 받는다는 말이 너무 싫었다. 둔해 보이지 않으려고 연습을 정말 많이 했다.

-<댄싱9>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무대가 있나. 데이미언 라이스의 노래에 맞춰 한선천과 함께 꾸민 듀엣 무대가 인상적이었는데. =나 역시 그 무대가 좋았다. 작품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다른 팀 멤버와 함께 작품을 만들고 그 안에서 경쟁을 하는 게 너무 잔인하더라. 서로 약간의 이기심을 부려야 되는 상황이었는데 그러기 싫었다. ‘최대한 컨셉에 맞게 잘 어우러지자’는 생각을 많이 했던 무대다. 또 선천이가 감정 표현이 굉장히 좋다. 내가 선배인데 꿀릴까봐 긴장도 많이 했다. (웃음) <댄싱9> 하면서 가장 집중했던 무대다.

-방금 선보인 춤이 몇점짜리 춤인지, 작품을 선보일 때마다 심사위원들에게 평가받는 게 불편하진 않았나. =그건 쇼였으니까. 어떤 볼거리를 어떻게 더 잘 보여줄 것인지 결국은 서로 싸움하는 거다. 게다가 서바이벌에 스스로 참가한 거였으니 불만을 표할 이유는 없었다.

-11월에 우승팀 레드윙즈의 갈라쇼가 열린다. 표가 5분 만에 매진됐다고 들었다. 이번 SPAF 표도 매진됐다던데, 확실히 <댄싱9>을 통해 현대무용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는 것 같다. =지금이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현대무용을 보러 공연장에 찾아오고 있는데 여기서 실망을 안겨주면 정말 끝이다. 대중이 계속해서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11월27일엔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개인 안무 작품을 선보인다. 서울국제안무페스티벌(SCF)이라는 안무 경연에 참가하는데, 그때 선보일 안무도 좀더 대중적으로 꾸밀 생각이다.

-최종적으로 안무가로서의 길을 걷고 싶나. =예술을 하고 싶다. 그러려면 무언가 창작을 해야 된다. 시인이 시를 쓰고 화가가 그림을 그리듯 무용하는 사람은 안무를 짜고 자기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현대무용을 널리 알리고 싶다. 예전과는 전혀 다른 현대무용판을 만들고 싶다. 한국이 파리가 될 수 있는 그날까지.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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