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만찬>의 가족은 사는 게 힘들다. 자식들 용돈받는 노부부는 눈치 보기 바쁘고, 장남 인철(정의갑)은 갑자기 직장에서 해고당했다. 이혼한 딸 경진(이은주)은 심장병으로 고생 중이다. 막내아들 인호(전광진)는 대리운전을 하며 힘겹게 살아간다. 이 정도면 됐다 싶은데도 가족의 고통은 더해간다. 아이를 갖지 못하는 인철 부부와 자폐증인 경진의 아들, 동거녀의 임신 소식에도 돈 걱정이 앞서는 인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렇다고 이 가족들만의 ‘불행’은 아니다. 해고, 취업난, 질병, 이혼 등 한국 사회의 보편적 고질병을 보여주는 인철의 가족은 낯설지 않게 보인다. 여동생의 이혼 문제로 골머리를 썩는 인철이 “지나고 나면 다 별거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이 고난이 ‘일상적’이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희망을 버리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만찬>의 파국은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인철의 가족에게 살인, 죽음 등의 극단적 장치를 던져놓고, 그들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평정을 찾는 과정을 덤덤하게 지켜본다. 커다란 사건의 한가운데 배치된 가족의 식사 장면이 주는 상징성이 크다. 가족이 바라는 최상의 식사는 엄청난 산해진미가 아니다. 엄마가 한 김치찌개, 반주 한잔, 평범한 대화면 족한데 현실은 이렇게 소박한 한끼 식사마저 힘들게 한다. 영화의 제목 ‘만찬’이 연상되는 설정으로, 이 장면은 회상 장면으로도, 또 인철의 바람을 드러내는 판타지 장면으로도 비쳐진다.

결코 해결될 것 같지 않은 고통 속에서도 영화는 거리를 뒤덮은 함박눈과 쇼팽의 <녹턴>이 선사하는 아름다운 선율로 마무리된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감독의 의도가 잘 반영된 부분이다. 중년 가장 인철의 고뇌를 다채로운 표정에 살려낸 배우 정의갑의 연기가 훌륭하다. 전작 <처음 만난 사람들> (2007) 이후 김동현 감독이 6년 만에 내놓은 신작으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