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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호의 오! 마돈나] 아프리카의 밤과 어울리는 이국정서

에바 가드너 Ava Gardner

에바 가드너는 팜므파탈로 등장했다. 필름누아르의 고전인 <살인자들>(감독 로버트 시오드막, 1946)을 통해서다. 가드너는 순진한 청년 버트 랭커스터를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여성으로 나왔다. 라틴 여성 같은 열정, 너무나 완벽하게 잘생긴 얼굴, 군살 없는 몸매, 허스키한 목소리 그리고 범죄의 어둠에 그늘진 인상까지, 가드너는 필름누아르를 위해 태어난 배우처럼 보였다. 그 인상이 강렬해서인지 가드너는 이후에도 주로 ‘일탈한’ 혹은 ‘다른’ 여성을 연기하며 경력을 쌓았다. 가드너의 스타 이미지는 미국이 아닌 곳, 이를테면 아프리카, 멕시코 같은 ‘다른’ 지역을 배경으로 할 때 더욱 돋보였다.

헤밍웨이와의 인연

가드너에겐 헤밍웨이가 행운의 길잡이였다. 단역으로 떠돌던 가드너를 배우로 각인시켜준 작품인 <살인자들>은 헤밍웨이의 단편이었고, 그녀를 대중적인 스타로 주목받게 한 작품도 헤밍웨이의 소설을 각색한 <킬리만자로의 눈>(1952)이었다. 헤밍웨이의 작품 속 분신인 작가 해리(그레고리 펙)가 파리의 재즈클럽 바닥에 혼자 앉아 담배를 피우려고 할 때, 그 담뱃불을 빌리려고 옆에서 얼굴을 내미는 신시아(에바 가드너)의 클로즈업은 외국 또는 외지에서의 설렘으로 기대할 수 있는 ‘다른’ 사랑의 표상이었다. 가드너는 자유분방하고, 모험심 많고, 성적 매력도 넘쳐 보였다. 아마 많은 관객이 이때 가드너의 모습에 반했을 것 같다(히치콕의 1954년 작품 <이창>에서 그레이스 켈리가 잠자고 있는 제임스 스튜어트에게 키스하며 화면에 처음 등장하는 클로즈업 장면은 이 영화를 참조한 것으로 짐작된다). 감독 헨리 킹은 가드너의 예리한 얼굴선을 강조한 프로필 클로즈업으로 단숨에 그녀의 매력을 포착한 것이다.

그레고리 펙과 에바 가드너의 스크린 커플은 시오드막이 <살인자들>의 성공 이후, 가드너를 다시 기용한 <위대한 범죄자>(The Great Sinner, 1949)에서 처음 인연을 맺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도박꾼>을 각색한 영화인데, 여기서 펙은 역시 도스토예프스키의 분신인 작가로, 그리고 가드너는 러시아 장군의 딸이자 도박중독자로 나온다. 말하자면 가드너는 러시아라는 이국의 여성이자 도박꾼이라는 일탈의 이미지로 경력을 쌓아가고 있었다. 이후 가드너는 미국의 표준적인 백인 여성으로 나와서 큰 인상을 남긴 경우는 거의 없다. 늘 이렇게 외국에서 혹은 바깥에서, 다른 이미지로 등장할 때 더 큰 사랑을 받았다.

<킬리만자로의 눈>은 아프리카에서의 현지 촬영으로도 유명하다. 실제로 헤밍웨이가 사파리 사냥을 좋아했고, 영화는 작가의 생생한 경험을 표현해놓았다. 가드너가 카키색 사냥복을 입고 초원과 밀림에 서 있을 때, 그곳이 그녀에겐 미국의 대도시보다 훨씬 더 어울려 보였다. 자연스럽고, 그래서 간혹 야만적이고, 무엇보다도 성적 에너지가 넘쳤다. 헤밍웨이의 작품에 연속해서 출연하며 가드너는 실제로 그와 친분을 트기 시작했다.

<킬리만자로의 눈>은 헤밍웨이의 취향에 따라 아프리카, 프랑스, 스페인 등을 배경 삼아 촬영됐다. 반면에 존 포드의 <모감보>(1953)는 전적으로 아프리카에서만 진행된다. 사파리 사냥 사업을 하는 남자(클라크 게이블), 부자 추장을 찾아 그곳에 도착한 과거가 수상한 여성(에바 가드너), 그리고 인류학자의 아내인 순진한 여성(그레이스 켈리) 사이의 삼각관계를 다룬다. 마초맨인 게이블을 가운데 놓고, 가드너와 켈리는 당대의 표현을 쓰면 라틴계 백인/순수 백인, 경험 많은/순결한, 야만적인/우아한, 육체적/정신적 등의 이항대립으로 비교된다.

배우의 비중을 놓고 보자면 이 영화는 게이블과 가드너 사이의 모험으로 예상됐는데, 영화는 사실 신인배우 켈리(그녀의 데뷔작)의 등장을 알리는 작품이 됐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켈리의 순수한 이미지가 더 커 보였다. 아마 그래서 가드너는 포드에 대해 별로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은 듯하다. 훗날 포드를 가리켜 “지상에서 가장 비열하고, 완전한 악당인데, 하지만 숭배한다”라고 말했다. <모감보>에서 창백한 피부를 가진 그레이스 켈리와 비교되면서, 가드너의 이국적인 이미지는 더욱 굳어졌다. 가드너는 ‘아프리카의 밤’과 어울리는 스타로 자리를 잡았다.

존 포드와 존 휴스턴

가드너가 자주 들은 질문은 스페인계냐는 것이다.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그런 혈통을 찾을 수 있을지 몰라도 가드너는 남부의 평범한 미국인의 딸로 태어났다. 부모는 목화와 담배 밭에서 일하는 가난한 농부였다. 가드너는 7남매의 막내였고,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16살 때, 아버지가 죽은 뒤 가드너는 자기 앞길을 스스로 헤쳐나가야 했다. 뉴욕에 사는 언니 집에 놀러갔다가, 사진작가였던 형부의 권유로 얼굴 사진을 몇장 찍었다. 형부는 그 사진을 윈도에 전시했고, 가드너의 빛나는 외모는 곧 할리우드 에이전트의 눈에 띄었다.

시오드막 감독에 의해 주목받기 시작한 가드너는 1950년대 들어 자신의 전성기를 열었다. 대부분 이국정서를 자극하는 캐릭터로 나온 작품에서다. <쇼 보트>(감독 조지 시드니, 1951)에선 흑인 피가 섞인 인물로, <맨발의 백작부인>(감독 조셉 맨케비츠, 1954)에선 스페인의 집시 여인으로, <보와니 분기점>(감독 조지 쿠커, 1956)에선 영국과 인도의 혼혈 여성으로 등장했다. 헤밍웨이 작품에 세 번째로 출연한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감독 헨리 킹, 1957)는 스페인에서 주로 촬영됐는데, 가드너는 헤밍웨이의 영화 속 분신인 제이크 반스(타이론 파워)의 색기 넘치는 파트너로 나왔다. 이 영화를 마친 뒤, 가드너는 당시의 남편이었던 프랭크 시내트라와 이혼했다. 그러고는 헤밍웨이가 있는 스페인으로 떠났다. 두 사람은 자주 대중에게 목격됐는데, 하지만 늘 서로를 친구로 소개했다.

40대 이후, 곧 여배우로서 주연의 자리에서 내려올 때, 가드너가 만난 감독이 존 휴스턴이다. 멕시코의 아름다운 해변을 배경으로 현지 청년들과 자유분방한 관계를 맺는 <이구아나의 밤>(1964)은 가드너의 이국정서 캐릭터가 없었다면 외설로 폄하됐을지도 모른다. 휴스턴 특유의 위험한 윤리의 드라마는 가드너의 이국적인 캐릭터에 의해 큰 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의 협업은 <천지창조>(1966), <법과 질서>(1972)로 이어졌다.

에바 가드너는 할리우드의 전통적인 여성 이미지와 대척점에 선 인물로 사랑을, 또 보기에 따라서는 차별을 받았다. 순응적인 여성과는 다르기 때문에 매력적이었고, 바로 그런 이유로 거부되기도 했다. 하지만 가드너가 영화사에 남아 있는 것은 바로 그 다름의 매력이 더 크기 때문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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