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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웅의 일상어 사전] 엄친아
권혁웅(시인) 2014-12-19

[ 엄치나 ]

겉뜻 모든 조건을 갖춘 완벽한 사람 속뜻 머리 나쁜 사람

주석 엄친아는 ‘엄마 친구 아들’의 줄임말이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외모도 훌륭하고…. 한마디로 좋은 건 다 갖춘 사람이란 뜻이다. 이 이름의 유래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자식에게 훈수 두는 엄마가 범인인데, 대개는 그 자신이 공부를 안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엄마 자신의 체험과 비교할 수 없어서 만들어낸 인조인간이 엄친아다. 그러니 못하는 게 없을 수밖에. 요즘은 사회가 머리 나쁜 엄마 노릇을 한다. 요즘 엄친아는 잘생긴 재벌 아들, 공부도 잘하는 연예인, 과 수석을 놓치지 않는 운동선수다. 타고난 재산, 집안, 머리, 육체를 가진 사람의 엄마가 왜 우리 엄마와 친하겠는가? 반칙도 이런 반칙이 없다.

엄친아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후보가 여럿 있다. 엄친딸(엄마 친구 딸)은 비슷한 말이니 제외하자. 아친아(아빠 친구 아들)? 이 말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 엄마만 공부를 안 해서가 아니라, 아빠는 대개 아들 교육에 관심이 없어서다. 아친엄(아들 친구 엄마)은 아들이 방패로 쓰는 말이니 정확히는 내친엄(내 친구 엄마)이라 부르는 게 맞다. “내 친구 엄마는 용돈도 더 주고 성형도 시켜주는데 우리 집은 왜 이래?” 이렇게 항변할 때 쓴다. 이보다 무서운 반대말이 둘 있다. 엄마가 보기에 제일 무서운 말은 우아친(우리 아들 친구)이다. 내 아들 성적을 떨어뜨리는 나쁜 집 자식을 이르는 말이다. 아들이 잘못된 것은 다 친구를 잘못 사귄 탓이다. 아들 입장에서 제일 무서운 말은 여친남(여자 친구의 남자 친구)이다. 그는 항상 경계해야 하는 잠재적인 경쟁자다. 여친이 떠나가게 생겼는데 고작 우아친 따위가 문제겠는가?

그러나 엄친아의 진정한 반대말은 따로 있다. 엄친아를 만든 이가 엄마니까, 반대말도 엄마 입장에 서야 보인다. 엄마 친구 아들과 비교되는 바로 그 사람, 자기 아들 말이다. 공부도 못하고 운동도 못하고 성격도 외모도 그저 그렇고…. 그때마다 엄마는 한탄한다. “너는 대체 누굴 닮아서 그 모양이니?” 몰라서 묻는 게 아니다. 엄마 친구 아들은 엄마 친구를 닮았고 엄마 아들은 엄마를 닮았다. 그래서 엄마는 남들에게 아들을 소개할 때에는 서둘러서 이렇게 덧붙인다. “얘가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 해요.” 아들은 타고난 재능은 출중하나 단지 공부를 안 했을 뿐이다. 그는 자신의 선택 곧 자유의지로 지금 자리에 이르렀다. 반면 엄친아는 모자란 재능을 공부로 열심히 벌충했다. 그는 공부밖에는 할 게 없었다는 의미에서 타율적인 인간이다.

용례 <정말 미안하다> 편에서 원조 엄친아 가운데 한 사람을 이미 다룬 바 있다. 사법고시, 외무고시, 행정고시를 모두 패스했다는 전설의 주인공 말이다. 그분은 왜 시험을 세번이나 보아야 했을까? 혼자서 법관, 외교관, 공무원을 다 할 수도 없었을 텐데? 혹시 가장 잘하는 게 공부여서는 아니었을까?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공부인 삶이라니, 확실히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 하는 삶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