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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효과적으로 포착한다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
김보연 2015-02-11

이치코(하시모토 아이)는 시골의 작은 마을 코모리에서 혼자 살고 있다. 전업 농부인 그녀의 일상은 대부분 농사일과 음식을 만들고 먹는 행위로 채워져 있다. 그렇게 바빠 보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절대 쉬는 건 아닌, 시계태엽처럼 돌아가는 일상. 그 안에서 시간은 여름에서 가을로 흘러가고 그녀의 식단도 계절의 변화에 맞춰 변해간다. 그리고 이치코는 도시에서 짧게 살았던 과거와 지금은 집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가끔씩 떠올린다.

이가라시 다이스케가 그린 동명의 만화 원작을 충실하게 영상으로 옮긴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은 조금 독특한 구성을 가진 작품이다. 일단 ‘여름’과 ‘가을’, 두편의 영화를 묶었기 때문에 엔딩 크레딧이 두번 나온다는 점도 그렇고, 이치코가 집에서 혼자 만들어 먹는 요리를 중심으로 극이 이루어져 있다는 점도 특이하다. 즉, 이 영화는 인물보다 음식이 더 큰 자리를 차지하는 작품으로 애초에 시퀀스의 구분도 ‘식혜’, ‘밤 조림’, ‘시금치 볶음’ 등 이치코의 다채로운 식단에 맞춰져 있다.

그 결과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에서는 ‘드라마’라 부를 만한 뚜렷한 서사 구조를 찾기 힘들다. 음식이 주요 소재라는 점에서 <카모메 식당> 등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의 극적 요소는 그보다 더 희미한 수준이다. 같은 마을에 사는 청년과의 성적 긴장이나 집을 나간 엄마의 사연 같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도 암시를 통해 잠깐씩 등장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시 음식을 통해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드라마 <심야식당>보다는 상대적으로 인물의 사연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 <고독한 미식가>가 이 영화와 더 닮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이 단지 112분짜리 ‘먹방’에 그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 작품의 인상적인 지점은 식단만 다를 뿐 거의 반복적인 일상에 대한 세밀한 묘사를 통해 주인공의 외로움과 소소한 행복, 과거에 대한 후회 등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효과적으로 포착한다는 데 있다. 비록 몇몇 장면은 주인공의 일상을 너무 장식적으로 예쁘게만 그린다는 의심을 갖게도 하지만 평화로운 농가의 풍경과 정성이 들어간 소박한 음식의 이미지, 그리고 인물의 숨은 감정을 조심스럽게 섞어 한 호흡으로 제시하는 건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이 거둔 유의미한 성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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