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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 뎁] <모데카이>
이주현 2015-02-24

조니 뎁

<퍼블릭 에너미>

피터팬의 네버랜드에서 영원히 철들지 않는 ‘어른 아이’로 살 것만 같았던 조니 뎁이 어느새 오십대에 접어든 지 3년째.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조니 뎁에겐 더없이 적확한 표현이지만 구태여 그의 나이를 헤아려본 건, 여전히 그가 철들지 않은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워서다. 최근 3년 내 개봉한 작품들만 해도 그렇다. 변장에 가까운 분장으로 캐릭터 뒤에 단단히 숨어온 조니 뎁은 최근 들어 더욱 국적과 나이와 시대의 개념을 초월해 연기하는 듯 보인다. <다크 섀도우>(2012)에선 하얀 분칠을 한 18세기 뱀파이어의 모습으로 20세기에 재림했고, <론 레인저>(2013)에선 역시나 하얀 분칠을 하고 머리에 독수리 한 마리를 얹은 인디언의 모습으로 서부 사막에 나타났다. <트랜센던스>(2014)에선 아예 인공지능 컴퓨터로 되살아났으며, <숲속으로>(2014)에선 빨간 망토 소녀를 한끼 식사로 해결하려는 숲속의 늑대로 변신했다. <가위손>과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를 거치면서 분칠과 다크서클로 대표되는 분장은 조니 뎁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고, 조니 뎁의 변신은 웬만해서는 변신을 논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트랜센던스>의 민머리 조니 뎁은 확실히 <엘리시움>의 맷 데이먼만큼이나 시각적인 충격이었다).

그러니 <모데카이>에서 끝이 말려 올라간 콧수염에 집착하는 조니 뎁을 보고 배꼽잡고 웃을 일은 없을 것이다. 키릴 본피글리올리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모데카이>에서 조니 뎁이 연기하는 모데카이는 파산 직전의 영국 귀족이자 미술품 딜러이고 사기꾼이다. 고야의 <웰링턴의 공작부인>이 복원 도중 사라지고, 모데카이는 나치의 비밀 계좌번호가 숨겨진 고야의 그림을 찾는 일에 뛰어든다. 모데카이의 대학 동창이자 MI5 특수요원인 마트랜드(이완 맥그리거)는 수사력과 공권력을 무기로 삼는 인물이고, 모데카이의 충성스런 하인 조크(폴 베타니)는 총상쯤은 그저 길 가다 넘어져 생긴 상처쯤으로 치부하는 비현실적 맷집의 소유자이며, 모데카이의 부인 조한나(기네스 팰트로)는 아름다움이 무기인 인물이다.

그렇다면 모데카이의 무기는? 매력은? 인정하는 이 하나 없지만 그의 “마력의 원천”은 콧수염이다. 겨우 콧수염? 그렇다. 겨우 콧수염! 영화에서 콧수염은 중요한 코미디의 요소로 사용되는데, 문제는 콧수염 코미디가 불발되는 경우가 많아 당혹스러운 순간이 종종 찾아온다는 점이다. 문제의 원인이 조니 뎁에게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모데카이>에서 조니 뎁은 웃음을 먹고사는 광대가 되고자, 가벼운 하이스트 무비의 백치미 곁들인 광대 캐릭터가 되고자 열심히 콧수염에 빗질한다. 모데카이 캐릭터를 완성하기 위해 조니 뎁은 피터 샐러스(<핑크 팬더>(1963))나 시드 제임스(<카이버 소동>(1968)), 특히 멍청한 영국 고위층 캐릭터를 다수 연기한 영국의 코미디 배우 테리 토머스(<아임 올 라이트 잭>(1959), <당신의 아내를 살해하는 방법>(1965))의 연기를 참고했다고 한다. 멍청함을 돋보이게 하는 벌어진 앞니도 테리 토머스의 캐릭터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한량에 반영웅. 그리고 조니 뎁의 가벼운 코미디를 보고 싶은 마음. <모데카이>의 데이비드 코엡 감독에게 조니 뎁만큼 안전한 선택이 또 있었을까 싶다. 키릴 본피 글리올리의 소설을 데이비드 코엡 감독에게 권한 것이 조니 뎁이었으니 애초부터 모데카이는 조니 뎁을 위한 맞춤옷이었는지도 모른다. “소설을 읽자마자 모데카이를 연기할 배우로 조니 뎁 외에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다. 조니는 그런 치사하고 비겁하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종류의 캐릭터를 소화하는 비상한 재능을 지녔다. 지난 20년간, 조니 뎁은 자신만의 전매특허 캐릭터와 연기력을 쌓아왔다.” 데이비드 코엡이 얘기한 치사하고 비겁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는 별 어려움 없이 <캐리비안의 해적>의 잭 스패로우 선장을 연상시킨다. 조니 뎁은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펄의 저주>(2003) 이후 10년 넘게 영웅과 반영웅, 빛과 어둠, 선과 악, 농담과 진담 사이를 자유로이 오가는 잭 스패로우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조니 뎁=잭 스패로우라는 불변의 공식이 성립된 뒤엔 뜻하지 않게 그것이 족쇄가 되는 부작용이 생기기도 했다.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2009)이나, 유명한 원작 캐릭터를 옮겨온 <론 레인저>나, 심지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10) 같은 팀 버튼의 영화에서도 잭 스패로우의 잔상이 어른거릴 때가 있으니 말이다.

잭 스패로우 이전엔 <가위손>(1990)의 에드워드가 있었다. 에드워드는 이후 조니 뎁이 연기하는 캐릭터의 원형과도 같은 인물이다. 팀 버튼과 20년 넘게 동료애 이상의 끈끈함을 유지하고 있는 조니 뎁은 <에드 우드>(1994), <슬리피 할로우>(1999),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2007), <다크 섀도우> 등에서 고독과 슬픔을 밑바탕에 깔고 있는 기이한 캐릭터, 초현실적 캐릭터를 도맡았다. 에드워드의 우아한 (가위) 손놀림이라든지 얼음 눈송이처럼 투명한 마음, 생각을 읽을 수 없는 텅 빈 눈빛은 여러 작품에서 변주돼 사용된다.

에드워드와 잭 스패로우의 그림자를 지워보려는 시도도 계속 있어왔다. 2000년대 이후 조니 뎁은 <네버랜드를 찾아서>(2004)의 극작가 제임스 배리, <퍼블릭 에너미>(2009)의 은행 강도 존 딜린저, <럼 다이어리>(2011)의 기자 헌터 S. 톰슨(극중 이름은 폴 켐프) 등 실존 인물을 연기하며 잠시 판타지가 아닌 현실 세계에 발을 담근다. 이들은 조니 뎁의 필모그래피에서 상대적으로 평범한 축에 속하는 캐릭터들인데, 연기까지 평범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안젤리나 졸리와 함께한 <투어리스트>(2010)까지 포함해 이들 영화는 드라마보다 캐릭터가 도드라지는 작품이 아니어서 오히려 조니 뎁의 연기가 신선하게 다가왔던 작품들이다. <도니 브래스코>(1995), <돈주앙>(1997) 같은 과거의 조니 뎁에 대한 향수도 적당히 불러일으키면서.

결국 조니 뎁은 조니 뎁을 넘어야 한다. 그게 배우 조니 뎁의 운명이다. 최근엔 흥행에서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 없었고, 연기에 새로움이 없다는 비판도 고개를 들고있다. 하지만 조니 뎁의 마력은 그렇게 쉽게 사라질 무엇이 아니다. 조니 뎁은 언제나 자신의 마음이 이끄는 대로 움직여왔다. 정해진 차기작의 목록을 보면 최근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조금은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함께 출연하는 실화 바탕의 범죄영화 <블랙 메스>, <럼 다이어리> 이후 연인으로 발전했다 최근 결혼식까지 올린 앰버 허드와 함께하는 <런던 필드>, 케빈 스미스 감독의 코미디영화 <요가 호저스>, 그리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와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까지, 조니 뎁은 열성적으로 조니 뎁이라는 고개를 넘으려 한다.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갖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조니 뎁의 호기심이 영원히 마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

Magic hour

어둠의 끝에 선 남자

지옥을 경험한 이의 모습을 하고, 한없이 건조한 음색으로, 한음 한음 분노를 꾹꾹 눌러담아 조니 뎁이 노래를 부른다. ‘런던 찬양가’를 부르는 애송이 소년에게 던지는 가사는 “넌 어려서 세상 무서운 줄 몰라”. 팀 버튼의 뮤지컬영화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는 첫 장면에서부터 대뜸 어둠의 끝에 선 한 남자를 보여준다. <슬리피 할로우>에 맞먹는 음산함과 광기로 뒤덮인 이 영화에서 조니 뎁은 복수심과 환멸로 가득 찬 스위니 토드를 연기하는데, 스위니 토드는 조니 뎁이 연기해온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다. 하지만 스위니 토드의 고통을 담은 조니 뎁의 눈빛을 보는 순간, 면도칼을 든 이 남자의 손을 꼭 잡고 싶어진다. 바로 조니 뎁의 마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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