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Report > 영화제
[영화제] 이주, 복수 그리고 이중의 이야기들

‘낯선 기억들-동시대 영화 특별전’, 3월15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거칠게 분류하자면 영화는 기억될 만한 영화와 기억될 만하지 않은 영화로 나뉜다. 기억될 만한 영화는 영화사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며, 그렇지 않은 영화들은 대개 잊힌다. 최근작은 이러한 분류법에서 비교적 유보적인 위치에 놓인다. 저평가되었거나 아직 영화사적으로 기억되기에는 너무 가까운 근작을 다시 불러들이는 시간이 마련된다. ‘낯선 기억들-동시대 영화 특별전’이 2월24일부터 3월15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2005년부터 2014년까지 10년을 아우르는 14편의 작품이 상영된다.

상영작은 몇 가지 키워드로 묶을 수 있다. 그 하나는 ‘이주의 역사’다. 토미 리 존스 감독, 주연의 <토미 리 존스의 쓰리 베리얼>(2005)은 서부영화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풍경을 바탕으로 미국인 피트가 멕시코인 친구 멜키아데스 에스트라다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멕시코로 향하는 여정을 담는다. 여기에 에스트라다를 죽인 노튼이 동행자로 합류하면서 착한 자, 나쁜 자, 죽은 자가 이루는 기묘한 삼각구도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세 남자의 동행이라는 표면적인 이야기 속에 국경지대의 반목과 불안, 우정과 일시적 화해를 버무려놓은 솜씨가 인상적이다. 지아장커의 다큐멘터리 <상해전기>(2010)는 인터뷰, 영화 클립, 재연 등을 통해 고다르 <영화사(들)>에 대한 상하이적 비전을 제시한다. 서로 다른 맥락의 영화를 불러오고 엮어내는 영화적 방식에 주목할 만하다.

두 번째 키워드는 ‘복수’다. 미이케 다카시의 <짚의 방패>(2013)는 연쇄살인마를 보호하는 임무를 맡게 된 경찰의 아이러니한 상황에 주목한다. 이름난 재력가가 연쇄살인범을 죽이는 데 엄청난 현상금을 걸면서 돈에 눈먼 이들이 시시각각 연쇄살인범을 노린다. 가장 비열하지만 결코 파괴되지 않는 살인마와 어쩔 수 없이 그를 수호하는 자를 통해 복수와 자본의 문제를 동시에 건드린다. 두기봉의 <피의 복수>(2009)는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코스텔로를 중심으로 복수와 기억의 관계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얽히고설킨 관계를 호쾌하게 밀어붙이는 두기봉의 장기가 이 작품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된다. 분리됐던 복수의 심리적 주체와 행동의 주체가 감화되고 뒤섞이는 과정을 통해 복수의 공허함과 충만감이라는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안긴다. <헬리>(2013)는 국가의 폭력이 사적인 관계를 어떻게 파괴하는지, 혹은 국가의 폭력이 가족 내부에서 어떠한 징후로 드러나는지를 엮어 보여주는 작품이다. 가장 헬리가 우연히 마약 사건에 연루되면서 그의 가족은 돌이킬 수 없이 파멸해간다. 여백이 많은 이미지로 포착된 멕시코의 황량한 풍경이 팍팍한 서사와 잘 어우러진다.

마지막으로 이중의 이야기 구조를 지닌 작품이 눈에 띈다. <세븐 싸이코패스>(2012)는 사이코패스에 대한 글을 쓰는 마티를 돕는답시고 친구 빌리가 신문에 사이코패스를 모집하는 광고를 내면서 벌어지는 황당한 사건을 다룬다. 이를 통해 허구와 실제의 넘나듦을 탐험하는 동시에 사건에 연루된 자로서의 작가의 위치에 대해 고찰하게 한다. 리암 니슨 주연의 <툼스톤>(2014)은 사립탐정이 된 전직 경찰 스커터를 통해 과거 트라우마의 해결과 그가 의뢰받은 사건의 해결이라는 서사를 유비적으로 교차시킨다. 두기봉의 <스패로우>(2008)는 4인조 소매치기가 동시에 미스터리한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서사와 이미지의 동선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흐름에 주목할 만하다. 도시의 행인들을 대상으로 한 소매치기 행위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즉흥극을 벌이는 것처럼 보인다. 동선의 예측자이자 창조자인 소매치기가 반대로 누군가의 연출에 놀아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한여름 낮의 꿈같은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