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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웅의 일상어 사전] 지금 무슨 생각해?
권혁웅(시인) 2015-03-20

[ 지금 무슨 생가케ː]

겉뜻 내 생각만 하라는 명령 속뜻 생각 좀 하고 살라는 명령

주석 특정 유형의 사람이나 유명인의 뇌구조 분석 그림이 인터넷에 무수하게 떠돈다. 실제 MRI나 CT 사진을 말하는 게 아니다. 사람의 옆모습 실루엣에 그 사람이 생각했음직한 주제를 말풍선처럼 그려넣은 그림이다.

예를 들어 커플 여행을 가기로 한 남자의 뇌구조를 영역이 넓은 순서로 기록하면 이렇다. “오빠 믿지?” “초지일관 스킨십.” “지나가는 쭉빵 걸 탐색.” “술 먹이려는 생각.” “뱃살 걱정.” “로맨틱한 멘트 날릴 준비.” “숙소 탐색.” 중간중간 깨알같이(정말 깨알만 하다) 이런 생각이 박혀 있다. “여행 경비, 바캉스 패션, 프로야구 경기 결과 궁금.” 여자의 뇌구조는 이렇다. “안 돼요, 돼요, 돼요….” “초지일관 화장발.” “수영복 패션.” “뱃살 걱정.” “엄마에게 뭐라고 말하지?” “오늘의 드라마 내용.” “낭만적인 여행에 대한 기대.” 깨알들로는, “여행 경비, 방향 감각, 제모 언제 했더라?” 이 유행은 식을 줄을 몰라서 지금도 무수하게 새 그림이 생겨난다. 걸그룹 인기 지도가 더 창의적이지만, 활용가치는 비교할 게 못 된다. 걸그룹 지도는 판타지 장르지만 뇌구조 그림은 리얼리즘 장르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책략의 동물이다. 마음속의 의도와 실제 행동 사이에 양파처럼 여러 겹의 전략을 펼 수 있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 이것을 의도성의 여러 차원이라고 부른다. 이런 식이다. “나는 엄마가 해준 찌개를 먹고 싶어.”(1차 의도성, 자신의 의도를 직접 진술하기) “내 아들이 내가 해준 찌개를 먹고 싶어 하는 것 같아.”(2차 의도성, 타인의 의도를 짐작하기) “엄마는 내가 당신의 찌개를 먹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3차 의도성, 타인이 또 다른 타인의 생각에 대해서 추측하기) “내 친구 철수는 자기 부인인 영희가 찌개를 잘 끓인다고 생각한다고 내 후배 순이가 생각한다고 여기는 것 같아.”(4차 의도성, 3차에 의도 하나를 더하기)

그러니 상대의 말이 아니라 진짜 생각이 궁금할 것은 당연지사다. 연인 사이에서도 저 질문이 무수하게 오간다. “지금 무슨 생각해?” 그런데 실제로는 저 질문에도 책략이 깃들어 있다. 질문의 본뜻은 이렇다. 지금 딴생각하지? 나만 생각하라고! 저 꾸중도 오해다. 딴 곳을 보는 눈빛, 벌린 입, 건성으로 답하는 말투… 는 상대가 실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그는 저 질문 앞에서 이제야 겨우 생각을 시작하는 거다. 지금 무슨 생각하냐고? 지금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를 생각해. 모든 책략을 무효로 만드는 최고의 책략은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다. 최근 개고기와 부채춤이 상위 검색어가 되었다. 그 소동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부끄럽도다. 난 생각이란 걸 하고 말았구나.

용례 <그것들의 생각>(Cho 글•그림)에서는 사물들이 생각한다. 사랑에 빠진 사물들이다. 저울은 “왜 날 다들 재기만 하고 떠날까. 겨우 맞춰놓은 영점 흔들리게”라고 고백하고, 콜라는 “날 흔든 건 너니까 내 맘 열고 싶으면 기다려”라고 명령한다. 사물의 책략이란 아이디어가 참 귀엽다. 나도 말을 건네고 싶다. “네가 나 때문에 힘겨워 부들부들 떠는 걸 차마 못 보겠어.”(저울에게) “너는 처음부터 네 안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었잖아?”(콜라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