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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영원한 여름
김혜리 2015-07-10

장건재 감독은 <한여름의 판타지아>의 2부를 시나리오 없이 찍었다. 테두리는 있었다. 가령 고조시 관광안내소에서 처음 마주친 혜정(김새벽)과 유스케(이와세 료)는 장면이 끌날 때 함께 그곳을 나서도록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과정을 밟아 그리 되는지는 배우와 감독을 포함한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 그리고 그날의 공기가 만들어간다. 감독은 두세 장면을 위해서는 대사 샘플도 준비했다. 완성된 영화의 해당 장면과 거꾸로 비교해보니 열린 촬영 현장에 흐른 화기애애한 긴장이 눈앞에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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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명동에서 <한여름의 판타지아>의 장건재 감독과 세 배우가 참석한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한다. 영화도 복습하고 보도 자료도 들춰본다. 이 영화의 홍보물은 유난히 팬시상품풍으로 디자인됐다. 예뻐서 갖고 싶어지는 영화, DVD와 관련 상품을 소유하고 위안이 필요할 때마다 꺼내 보는 영화. 이것이 <한여름의 판타지아>의 포지션이다. <한여름의 판타지아>가 로맨틱한 동경을 부르는 까닭은 여행자와 현지인의 데이트가 포함돼 있어서만은 아니다. 우리가 언제나 여행의 계획 단계에서 꿈꾸지만 막상 현지에 가면 누리지 못하는, ‘쓸모’가 완벽히 제거된 시간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여름의 판타지아>의 1부는 고조에서 영화를 찍어야 할 감독 태훈(임형국)과 조감독 미정(김새벽)의 현지 취재 과정이고 2부는 (아마도) 1부의 결과로 만들어진 짧은 여행기다. 태훈과 미정의 고조 방문은 영화의 소재와 틀을 잡는다는 확고한 실제적 목표가 있긴 하지만, 두 사람은 그 소재와 틀이 어떤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발견하고 나서야 비로소 알아볼 상대를 찾아 헤매는 셈이라 겉으로는 무위(無爲)의 시간처럼 보인다. 한편 2부의 혜정은 아예 아무것도 없는 곳,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을 찾고 있노라고 또박또박 말한다. 그녀가 혼자 소도시 고조까지 흘러들어온 이유도 관광지 나라(奈良)의 사슴들이 성가시게 굴었기 때문이다. 1, 2부를 통틀어 대체로 <한여름의 판타지아> 속 인물들은 생계와 관계를 유지하는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운 여행자 일반의 면책특권을 누리는 것은 기본이고, 여행에 으레 따르는 관광, 미식 같은 유용한 행위도 하지 않는다. 로맨스조차 의도적으로 구한 바는 아니다. 태훈, 미정, 혜정은 고조에서 판단을 중지한 채 가만히 바라보고 듣고 음미한다. 살면서 극히 드문 이 무용한 시간이, 우리가 <한여름의 판타지아>를 로맨틱하게 동경하게 만드는 궁극의 사치다. 아, 어디에도 물들지 않은 진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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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재료로 영화 만들기. 그러니까 그것이 장건재 감독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임무였다고도 말할 수 있다. 영화가 작위를 철저히 배제하면 관객은 프레임 안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들과 미세한 움직임들에 예민해진다. 1부에서는 태훈과 미정에게 초등학교 시절 첫사랑 요시코의 이야기를 슬쩍 들려주고 모교로 둘을 안내한 남자 겐지(간 스온)의 말과 동작이 주의를 끌었다. 폐교 복도를 빙빙 배회하던 그는 낡은 단체 사진을 쓱 가리키며 “이게 나요”라고 귀띔하고 돌아선다. 사진을 들여다본 두 사람이 “그런데 누굴 보고 있네요?”라고 묻자 “요시코”라고 쑥스럽게 밝히고 교실 앞문으로 쑥 들어간다. “아하, 첫사랑이요?” 이 질문은 교실 안까지 들리지 않았는지 답이 없다. 교실 뒷문으로 빠져나온 겐지는 자기가 (이 영화에서) 할 일은 끝났다는 듯 프레임 밖으로 걸어나간다. 여기서 겐지의 말과 행동은 매우 심상한 동시에 애틋하다. 첫사랑 소녀 요시코는 정확히 신(神)이 정한 속도로 이 중년 남자에게서 멀어져가고 있으나 영구히 지워질 수 없는 존재임을 더없이 적절히 표현한다. 2부의 혜정과 유스케가 카페에 나란히 앉아 하이볼과 맥주를 마시는 장면에도 신경 쓰이는 세부가 있다. 이 신은 7분이 넘는 한 테이크로 찍혀 있다. 만난 지 이틀째인 둘의 감정이 미묘해 시종 취기어린 긴장이 흐른다. 혜정이 왼쪽, 유스케가 오른쪽에 앉았는데 사이에 놓인 안주를 남자가 자꾸 왼손으로 집는 바람에 여자에게 불쑥불쑥 다가가는 듯 보여 연신 흠칫 놀라게 된다. ‘관객과의 대화’를 위해 만난 감독과 배우에게 바로 곡절을 물었다. 1부 폐교 장면에서 겐지의 동선은 우연도 배우의 의지도 아닌 감독의 의도적 블로킹이었고 카페 장면의 스릴(?)은 두 배우가 모두 왼손잡이여서 생긴 우연의 효과라고 한다.

<한여름의 판타지아>의 1부는 일본어와 한국어를 함께 사용한다. 대범하게도 자막을 통째로 생략해 일본어를 모르는 관객의 상상과 궁금증을 유도하는 신도 있고, 통역이 낀 대화여서 동일 정보가 반복되는 경우에는 선행하는 일본어 대사를 자막 없이 듣게 만든다. 요컨대 관객이 어림짐작하며 대사를 억양으로만 듣는 ‘사이’(pause)가 발생한다. 일본에서 이 영화를 보는 일본 관객은 엇갈리는 리듬으로 대화를 따라갈 터다. 물론 제3국 언어로 된 자막을 읽으며 관람하는 관객의 호흡은 또 다를 것이다. 영화 시작 후 15분 시점부터 나는 감독에게 궁금했다. 이른바 ‘마가 뜨는’ 것이 걱정스럽지는 않았을까? 오늘 관객 앞에서 장건재 감독이 들려준 설명에 관념적인 구석은 전혀 없었다. “실제로 일본어 대사와 미정의 한국어 통역은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 옮기는 과정에서 누락이 있거나 표현이 달라지기도 했다. 현장에서 나 역시 (극중 태훈처럼) 그 ‘사이’와 오차를 포함해 대화를 듣고 보았다. 관객도 감독인 나와 똑같은 것을 보고 듣길 바랐고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6년 전 장건재 감독은 장편 데뷔작 <회오리바람>(2009)에 관한 인터뷰에서 “진짜 이야기를 하면, 거대한 구조나 특별한 장치 없이도 담을 수 있을 것 같다. 이건 진정성하고는 다른 이야기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오늘 들은 이야기는 그에게 ‘진짜’의 의미가 무엇인지 추측하게 해주었다. 감독이 지금 여기서 감각하는 세계를 관객이 영화를 경유해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는 이야기. 아마 그것이 장건재 감독이 생각하는 ‘진짜’였나보다. 알려진 대로, 예술에서 진짜가 진짜처럼 보이게 하려면 정교한 양식이 필요하다. 역설적으로 현실의 표면을 즉각 복제할 수 있는 예술인 영화에서 제일 어려운 작업이다. <한여름의 판타지아>에 보낼 수 있는 확실한 축하가 있다면 장건재 감독이 오랜 포부를 실천할 적절한 형식 하나를 고안했다는 사실을 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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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건재 감독은 결혼 2년차 커플의 생활을 그린 <잠 못 드는 밤>(2013)에 대해, 원래 중년 부부 이야기의 전사(前史)로서 구상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두 면이 ‘마주 보는’ 구조는 <한여름의 판타지아>에 와서 구현된 셈이다. 이 영화의 두 챕터는 펼쳐진 책의 왼쪽 페이지와 오른쪽 페이지 같다. 반드시 한 시야에 들어와야만 편집자의 의도가 제대로 살아나는 지면과 비슷하다. 1부와 2부가 맺는 관계가 내게 매력적인 까닭은 상상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많아서다. 일단 실제로 그랬듯 2부를 위한 자료 수집 과정을 극화해 먼저 찍은 단편으로 1부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제작 정보를 배제하고 결과만 보면, 2부부터 완성하고 ‘프리 프로덕션 페이크 메이킹 필름’(!)에 해당하는 1부를 역구성하는 작업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게다가 1, 2부의 순서가 바뀌어 상영됐다면 우리의 감흥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흑백과 컬러로 1, 2부의 색 설계를 맞바꾸었다면? 심지어 나는 2부를 1부에 등장한 감독 태훈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영화로 가정하는 해석에 끌린다. <한여름의 판타지아>의 2부는 1부를 구성하는 입자들로 재조합된 구조물이다. 홍상수 감독의 <옥희의 영화>가 보여준 “우리는 같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세계관이랄까. 원소들을 결합하는 분자구조식은 창작자 태훈의 에고가 결정한다. 1부의 공무원 유스케는 본래 취재대상이었기에 본인의 이름과 모습을 유지한 채 2부에 입장할 수 있다. 그러나 태훈의 일상적 현실의 일원인 미정은, 혜정으로 이름을 바꾸고 위장해야만 애정의 대상으로서 2부의 캐릭터로 등장할 수 있다. 일부 관객의 상상처럼 1부의 태훈과 미정 사이에 억제된 은근한 감정이 존재했다면 이 해석은 더욱 그럴싸해진다. 안팎으로 유유한 공상을 허락하는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마치 통풍이 잘되는 전망 좋은 집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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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못 드는 밤>은 부부가 유성우를 기다리는 찰나에 끝나고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고조의 불꽃놀이를 각자 다른 장소에서 바라보는 유스케와 혜정의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절정과 소멸을 구분하기 힘든 별똥별과 불꽃놀이는, 실제 지속 시간보다 끝난 후의 여운이 ‘실체’에 가까운 이벤트다. 장건재 감독이 만든 세편의 장편영화 역시 그렇다. 이미 사라졌지만 남아 있는 것들, 지나갔으나 여전히 강력하게 존재하는 체험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회오리바람>은 고등학생 태훈(서준영)이 여자친구 미정(이민지)과 감행했던 100일 기념 여행의 여파를 기록한 영화였다. 부모의 분노, 자유롭고자 시작한 아르바이트, 여자친구의 변심 등 3개월 동안 태훈의 일상에는 많은 사건이 일어나지만 소년을 내내 지배하는 것은 겨울 바다를 바라보며 둘의 입술에서 흘러나왔던 허밍의 메아리다. 핸드폰에 흐릿한 동영상 조각으로 남아 있는 여행의 사소한 순간들이다. <잠 못 드는 밤>에서는 연애하듯 살아가는 아내와 남편이 번갈아 잠든 상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정경이 거듭 나온다. ‘너’라는 사건은 눈을 감고 잠들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더욱 완벽한 사랑의 대상으로 존재한다. 별똥별의 비를 기다리는 마지막 순간에도 아내는 남편이 서운하게 굴었던 방금 꿈의 여운에 잠겨, 그것이 꿈이었다는 사실에 안심한다. 동시에 현실의 얇은 표면 아래 도사리고 있는 불길함을 곱씹는다. <한여름의 판타지아>의 혜정과 유스케는 어색한 입맞춤을 끝으로 헤어진 다음 각기 혼자 축제의 밤을 보내지만 방금 끝난 만남의 영향에 계속 휩싸여 있다. 뿐만 아니라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스쳐가고 재회하지 못한, 떠나서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요시코, ‘벚꽃 우물’ 전설에 등장하는 스님, 겐지가 오사카를 떠난 후 다시 만나지 못한 한국 여성. 유스케 역시 도쿄의 누군가에게는 돌아오지 않는 존재일 것이다. 연고자 없이 홀로 죽은 고조 주민들의 공동묘지는 기찻길 너머 아득한 곳의 누군가를 제각각 바라보고 있다.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현재진행형의 사건과 기억/꿈이 상대적으로 분리 재현되는 두 전작에 비해 더욱 ‘순도 높게’,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들의 영향으로 조형된 이야기다.

지나갔으나 지나가지 않은 현상을 영화에서 표현하는 데 사운드와 음악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장건재 감독은 소리로 영화의 문을 열기도 하고, 인물들이 화면을 빠져나간 다음에도 들려오는 대화에 귀기울이기도 한다. 음악은 자주 숏의 구획에서 벗어나 나름의 호흡으로 영화에 들고 난다. <한여름의 판타지아>를 마치고 긴 휴식을 갖겠다고 말한 장건재 감독의 영화를 이해하려는 이번 ‘학기’ 마지막 노력으로서 나는 편집의 실제 과정과 그가 생각하는 소리의 잠재력을 묻는 질문을 메일로 보냈다. 답장이 왔다.

“편집과 사운드는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이는 과정입니다. 편집은 표면적인 완성의 형태를 갖추고, 서너달을 더 작업합니다. 그러면 1초에서 많게는 10초 정도의 차이가 생깁니다. 초반작업은 버리기, 리라이팅(re-writing), 페이스(pace)를 만드는 작업이고, 나머지는 영화의 리듬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사운드는 이미지의 질감과 특성, 배우들의 연기를 보다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3~6db는 인간의 귀로는 구분하기 어려운 단위인데, 제게는 이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파이널 믹싱 역시 쉽게 끝나지 않습니다. 이번 영화는 대여섯번 정도의 극장 기술시사를 한 뒤 다시 수정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완성본을 만들고, 다시 믹싱 작업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이때가 가장 힘이 듭니다) 매 컷, 매 신 중요한 것이 다릅니다. 동시녹음을 저는 믹싱의 한 과정으로 봅니다. 기본적으로 현장에서 채집한 대사를 그대로 쓰도록 노력합니다. <회오리바람> <잠 못 드는 밤>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대사 후시녹음이 없습니다. 밸런스에서 대사의 볼륨과 질감도 아주 중요합니다. 특히 앰비언트 사운드(공간을 에워싼 음향)와 화면 밖 소리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듣는 것보다 조금 더 크게 작업합니다. 그러면 화면에 특정한 인상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프랑스 중위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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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과 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고조 시민들에게 어떤 체험이었을까? 평범한 우리 동네 골목이, 작고한 마을 할머니가 스크린에 영원히 기록된 모습을 보는 감정은 무엇일까? 촬영 현장을 취재할 때마다 나는, 생활의 불편을 무릅쓰고 영화가 중요하고 신성한 ‘무엇’인 양 자연스럽게 배려하고 들뜨는 사람들의 모습에 신비로움을 느끼곤 한다. <BBC> 라디오의 <필름 프로그램>이 지난 5월 말 방송한 로케이션 탐방기는 그래서 솔깃한 기획이었다. 영화를 촬영하도록 집과 가게, 정원을 빌려주고 참여한 사람들, 객지에서 한철을 보낸 스탭들의 추억이 흐뭇했다. 35년 전 <프랑스 중위의 여인>(1981)의 로케이션이었던 라임 리지스의 주민들은 19세기에 맞게 미술팀이 바꿔 달아줬던 가게의 간판을, 친구와 보조출연하다 NG를 냈던 추억을 즐거이 꺼내 보였다. 테이크 사이에 아기에게 젖을 먹이던 젊은 엄마 메릴 스트립과 정중했던 제레미 아이언스를 정답게 회상하기도 했다. 그해 여름 휴학하고 제작부로 일하다, 태양 인서트숏을 위해 함께 구름을 관찰하던 연출부원과 결혼한 여성의 회고담도 뭉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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