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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호의 트립 투 이탈리아] 마법의 도시, 꿈과 현실 사이

외국인의 눈에 비친 로마

<로마 위드 러브>

이탈리아라는 땅에는 탈출의 유혹이 있는 것 같다. 현재의 모든 조건에서 벗어나고픈 욕망의 끝에는 종종 이탈리아가 등장한다. 이상한 일이다. 그곳에도 분명 문명이라는 것이, 말하자면 억압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게다가 이탈리아는 문명을 대표하는 서방 7개국(G7)의 회원국인데도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이탈리아에서의 삶이 뭔가 다를 것이란 기대를 한다. 사실 나도 그랬다. 그 다름에의 기대와 상상이 7년간의 이탈리아 체류를 버티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탈출을 부추기는 땅

과거로 약간 멀리 가면 대문호 괴테도 그랬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바이마르 공국의 촉망받는 공직자로서 인생의 절정에 있을 때인 1786년, 괴테는 훌쩍 도망가듯 이탈리아로 떠났다. 37살 때였다.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무조건 쉬고 싶어 했다. 괴테가 기행문의 걸작인 <이탈리아 기행>에서 강조한 것은 이탈리아의 ‘무위’였다. 나태에 가까울 정도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느린 삶에서 괴테는 해방감을 느꼈고, 또 기꺼이 즐겼다. 그런데 이탈리아 사람들이 나태하긴 해도, 아무것도 안 할 리가 없다. 그들에겐 일상일 텐데, 외부인에겐 나태처럼 보일 것이다. 그런 점이 이탈리아의 매력 같다. 남들처럼 역시 그들도 아등바등 살지만, 왠지 여유 있어 보이는 것 말이다. 안드레아 피를로의 축구 스타일 같은 것이다. 사실은 남들보다 더 많이 뛰지만 항상 여유 있어 보이고, 무엇보다도 스타일에 멋이 있다.

영화 제목처럼 일은 제쳐둔 채 ‘먹고 기도하고 사랑’만 할 것 같은 사람들이 사는 곳인데, 여전히 지금도 세계의 주요 국가로서 기능하는 것이 어쩌면 이탈리아의 수수께끼다. 그 매력을 영화가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일상의 숙제를 하지 않아도 되고, 맛있는 음식과 와인을 즐기며, 아름다운 사람들과 사랑을, 그것도 불가능할 것 같은 사랑을 경험해보라고 유혹하며 이탈리아를 끌어들인다. 윌리엄 와일러의 고전 <로마의 휴일>(1953)이 발표된 뒤부터 최근의 우디 앨런의 <로마 위드 러브>(2012)에 이르기까지, ‘사랑의 땅’으로서의 이탈리아의 ‘신화’는 끊이지 않고 반복된다. 그 중심에는 역시 이탈리아의 수도인 로마가 있고, 그 신화를 퍼뜨린 데는 <로마의 휴일>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로마의 신화, <로마의 휴일>

“마르구타 거리 51번지.”(via Margutta 51)

브래들리 기자(그레고리 펙)가 수면제 때문에 잠에 취한 공주(오드리 헵번)를 태우고 택시기사에게 말한 주소다. 브래들리의 집은 여기 있는데, 이젠 <로마의 휴일>의 팬이라면 필수 방문지가 됐다. 마르구타 거리는 로마의 중심지인 스페인광장에서 걸어갈 수 있는 곳에 있다. 공주가 다음날 걸어서 스페인광장에 도착하고, 아이스크림을 먹던 장면이 기억날 것이다. 후배 영화인들도 이 거리를 비추며 <로마의 휴일>에 오마주를 표현하곤 했다. 우디 앨런은 <로마 위드 러브>에서, 그리고 마이클 윈터보텀은 <트립 투 이탈리아>(2014)에서 마르구타 거리를 다시 방문한다. <로마 위드 러브>에선 건축가로 출연한 알렉 볼드윈이 젊은 시절을 추억하며 걷는 거리이고, 또 <트립 투 이탈리아>에선 주인공 일행이 그레고리 펙과 오드리 헵번의 대사를 흉내내며 걷는 곳이 마르구타 거리이다. 돌길과 돌집의 질감 때문인지, 시간을 이겨낸 견고함이 느껴지는 오래되고 고급스런 거리로, 한때 페데리코 펠리니와 줄리에타 마시나 부부가 살아서 더욱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지금도 로마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주거지다.

<로마의 휴일>

여기서 하룻밤을 지낸 공주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밖으로 나선다. 로마의 여느 여름답게, 하늘은 높고 태양은 뜨거운 날씨다. 좁은 골목을 따라 걸으며, 싱싱한 과일들, 아름다운 꽃들을 구경하던 공주는 길거리 가게에서 더운 날씨에 어울리는 신발을 하나 산다(이탈리아는 구두의 나라이기도 하다). 샌들 같은 가벼운 신발을 신고, 로마의 태양을 즐기던 공주 앞에 갑자기 나타난 장관이 바로 트레비분수다. 실제로 트레비분수는 골목 속에 숨어 있듯 존재한다. 좁은 골목길 사이에 그렇게 큰 조각분수가 있을지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느닷없는 느낌은 페데리코 펠리니의 <달콤한 인생>(1960)에서 더욱 증폭되어 반복되기도 했다. 윌리엄 와일러가 심리묘사의 장인인 게, 생이 용솟음치는 분수를 본 뒤, 공주가 브래들리 기자를 다시 만나 사랑을 나누는 것으로 이야기는 짜여 있다. 이후에 전개되는 스페인광장에서의 아이스크림 먹는 장면, 이탈리아의 상징인 작은 베스파를 타고 로마 대로를 달리는 장면, ‘진실의 입’ 앞에서 브래들리 기자가 공주의 마음을 훔치는 장면, 테베레 강의 파티에서 두 사람이 힘을 합쳐 공주의 경호원들과 싸우는 장면 등 이루 셀 수 없이 많은 유명한 장면들이 <로마의 휴일>을 신화의 지위로 끌어올렸다.

<로마의 휴일>은 세계의 연인들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겼는데,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런 동화 같은 사랑 이야기가 전개될 때, 로마인들은 거의 배제돼 있는 점이다. <로마의 휴일>은 유럽 어느 왕국의 공주와 미국인 기자의 사랑이야기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대개 단역에 한정돼 있다. 기억나는 현지인이라곤 도입부의 쪼잔한 택시기사, 공주의 머리를 깎아주는 순진한 미용사 정도일 것 같다. 말하자면, 로마 배경의 로맨스영화일 경우, 그것이 이탈리아영화가 아닐 때는 외국인(주로 미국인)의 사랑의 대상은 거의 외국인(주로 미국인)으로 한정돼 있다. 영국영화인 <트립 투 이탈리아>의 주인공 남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탈리아에서 여행자들은 대개 자국인을 만나 사랑을 경험한다. <트립 투 이탈리아>에서도 롭(롭 브라이든)은 제노바 근처에서 영국인 여성을 만나 짧은 사랑을 나눈다. 다시 말해 이탈리아인들은 대개 사랑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데 그친다. 보기에 따라서 이탈리아인은 ‘그들’의 사랑을 위해 소비되는 느낌마저 든다. 특히 할리우드의 로맨틱 코미디인 경우, 이런 경향은 최근작인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감독 라이언 머피, 2010)에 이르기까지 거의 변하지 않고 있다.

<로마 위드 러브>, 이탈리아의 상투성을 코미디로 격상

이런 점에서 <로마 위드 러브>는 좀 특별하다. 여행자와 현지인들이 서로 섞인다. 우디 앨런은 네개의 에피소드로 이야기를 구성했다. 이 가운데 두개는 미국인 중심으로, 나머지 두개는 이탈리아인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아무래도 우디 앨런 자신이 등장하는 첫 번째 에피소드가 영화의 중심에 놓여 있다. 우디 앨런의 딸 헤일리(앨리슨 필)가 이탈리아 청년 미켈란젤로(플라비오 파렌티)에게 길을 묻다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여기에는 보기에 따라서는 미국인들보다 이탈리아인들이 더욱 강조돼 있다. 특히 그들의 상투성이 고스란히 코미디의 소재가 되고 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미켈란젤로는 변호사인데, 알고 보니 코뮤니스트이다. 그는 미래의 장인(우디 앨런)이 노동조합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자 날카롭게 각을 세우기도 한다. 말하자면 우디 앨런은 고학력자일수록 코뮤니스트가 많은 이탈리아 사회의 특정한 경향을 캐릭터 설정에 이용하고 있다. 미켈란젤로의 부친은 장의사인데, 취미로 부르는 노래 실력이 웬만한 프로 성악가 이상이다(유명 테너인 파비오 아르밀리아토가 출연했다). 우디 앨런이 “돈도 벌고, 유명해질 수 있다”며 정식 데뷔를 제안하지만, 그는 노래는 단지 “나를 위해”(Per me)할 뿐이라고 답한다. 효용, 수월성 등이 아니라 자기만족을 더 중시하는 전형적인 이탈리아인의 태도인데, 취미의 실력이 프로급일 정도로 이탈리아인들이 성악에 재주가 많은 점은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로마 위드 러브>는 외국인과 현지인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허물어진 대표적인 작품으로 남아 있다.

<로마 위드 러브>도 <로마의 휴일>처럼 현지의 명소들을 골고루 이용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더욱 강조된 장소로는 카라칼라 목욕탕과 아피아 가도를 꼽고 싶다. 건축학도 잭(제시 아이젠버그)이 죄의식을 느끼지만, 애인의 친구(엘렌 페이지)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 바로 카라칼라 목욕탕에서의 비오는 밤이다. 우디 앨런의 팬들에겐 상식적인 사실인데, 그의 영화에서 사랑이 꽃피는 순간에는 빠지지 않고 비가 내린다. 말하자면 카라칼라 목욕탕 시퀀스가 <로마 위드 러브>에서 가장 강조된 사랑의 순간인 것이다.

로마제국시대의 오래된 도로인 아피아 가도 주변은 자연풍광도 멋있지만 아름다운 대저택이 많아 자연과 건축이 넉넉한 조화를 이룬 곳으로 유명하다. 장 뤽 고다르의 <경멸>(1963)에서, 미국인 영화 제작자(잭 팰런스)가 작가 부부(미셸 피콜리와 브리지트 바르도)에게 식사를 대접하며 자신의 부를 은근히 자랑하는 곳도 여기에 있는 별장에서다. <로마 위드 러브>에선, 신혼여행을 온 새 신랑이 이곳에 있는 저택의 파티에 참석하여 뜻하지 않게 고급 매춘부(페넬로페 크루즈)와 첫 사랑을 나누는 장소로 등장한다. 파티에 참석한 로마의 상류층 남자들 가운데 많은 남자들이 매춘부의 고객이었던 점이 밝혀져, 웃음을 유발했던 시퀀스이기도 하다. <로마의 휴일>과 더불어 로마의 여러 명소를 가장 잘 이용한 대표적인 영화로도 <로마 위드 러브>가 꼽힌다.

<경멸>

‘도둑들’의 명소, 케이퍼 필름의 고향

로마에 도착하면, “도둑을 조심하라”는 말을 수없이 들을 것이다. 실제로 도둑이 소문만큼 많은지는 모르겠지만, 영화적으로 보자면 ‘도둑의 도시’라는 오명은 사실에 가깝다. 네오리얼리즘의 고전인 비토리오 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1948)도 그런 오명을 퍼뜨리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을 것 같다. <자전거 도둑>의 인상이 너무 강한 나머지 우리는 이탈리아, 특히 로마가 떠오를 때면 ‘도둑들’도 함께 상상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스크린 속에서도 세계의 도둑들이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솜씨를 발휘하곤 한다. 이탈리아는 소위 ‘케이퍼 필름’(도둑의 수법을 세세히 묘사하며 긴장감을 유지하는 범죄 스릴러)의 주요 배경으로 종종 등장하는데, 고전인 <이탈리안 잡>(감독 피터 콜린스, 1969)이 기폭제가 됐다. 이 영화의 배경은 북부의 토리노였고, 또 2003년의 동명 리메이크작(감독 F. 게리 그레이)의 배경은 베네치아였다. 두 영화 모두 이탈리아의 빼어난 경치를 이용하여, 범죄 스릴러의 분위기를 격상시킨 효과를 누리고 있다. 로마가 케이퍼 필름의 주요 배경이 되어 큰 주목을 받은 작품으로는 <허드슨 호크>(감독 마이클 레만, 1991)가 대표적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밀노트를 훔치기 위해 ‘허드슨 호크’(브루스 윌리스)라고 불리는 대도적이 실력을 발휘하는 내용이다. 이탈리아 배경의 영화답게 현금 또는 황금이 아니라 역사적 예술품을 도둑질의 대상으로 삼은 게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도 로마의 명소들, 곧 콜로세움, 나보나 광장, 포로 로마노, 바티칸 주변 등을 병풍처럼 펼치며 브루스 윌리스 특유의 맨몸 액션을 선보인다. <허드슨 호크>에서 보여준 남다른 곳이, 짧게 등장하지만 로마 남부의 ‘에우르’(EUR)라고 불리는 지역이다.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부 시절 집중 개발된 일종의 정치적 선전 지역인데, 신고전주의를 응용한 현대적인 건물들이 많아 건축학적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특히 ‘이탈리아 문명 궁전’(Palazzo della Civilt Italiana)은 파시즘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대표적인 건축물로, 마치 현대화된 콜로세움, 혹은 바벨탑처럼 보인다. 하지만 <허드슨 호크>는 이 건물의 정치적 함의까지 이용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건축적 기괴함을 액션의 배경으로 이용할 따름이다. ‘에우르’ 지역의 정치적 의미까지 읽으려면 아무래도 로셀리니, 파졸리니 같은 이탈리아 거장들의 작품을 봐야 할 것이다.

로마 배경의 케이퍼 필름으로 <오션스 트웰브>(감독 스티븐 소더버그, 2004)도 큰 사랑을 받았다. 이 영화는 크게 암스테르담, 이탈리아 북부의 코모 호수, 그리고 로마를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로마에서 브래드 피트와 캐서린 제타 존스의 로맨스가 진행되는 까닭에, 로마는 빠른 템포의 케이퍼 필름에 잔잔한 감성을 전달한다. 두 연인은 로마 중심부의 나보나 광장 주변의 노천카페에서 사랑을 키워간다. 바로크의 거장 지안 로렌초 베르니니의 작품인 <네 강의 분수> 등으로 유명한 나보나 광장 주변은 아름다운 카페들이 많아, 할리우드영화의 단골 촬영지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줄리아 로버츠가 이탈리아 말을 배우는 곳은 나보나 광장 주변의 ‘카페 델라 파체’(Caff della Pace)이다. 지금도 유명 인사들이 자주 찾는 소문난 카페다. 이곳은 <로마 위드 러브>에서 알렉 볼드윈이 가족, 동료들과 차를 함께 마시는 장소로 등장하기도 했다.

<건축가의 배>

신고전주의의 보고(寶庫), <건축가의 배>

로마는 서양건축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도시다. 콜로세움, 판테온 같은 로마제국 시절에 건설된 구조물들이 도시 곳곳에 남아 있다. 제국의 건축은 고대 로마의 미를 되살리려는 18, 19세기의 신고전주의 시기에 다시 찬양의 대상이 됐다. 세상의 예술가들이 제국의 건축을 보기 위해 로마를 방문하고, 로마에서 유학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로마 위드 러브>에서 보듯 건축학 전공자들에겐 지금도 로마는 필수 방문지 가운데 하나다. 말하자면 로마는 대칭과 균형이 특징인 신고전주의 미학의 원형을 보존한 건축적 보고(寶庫)다.

피터 그리너웨이의 <건축가의 배>(1987)는 로마의 건축을 영화의 소재로 이용한 최고급의 작품이다. 로마 건축의 신고전주의 특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영화는 도입부에서 우선 인민광장의 유명한 ‘쌍둥이 교회’를 보여주며 시작한다. 17세기 바로크 시대의 대표 건물이지만, 대칭이 돋보이는 신고전주의 특성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인 건축가 크랙라이트(브라이언 데니히)는 18세기 프랑스의 신고전주의 건축가 에티엔-루이 불레의 기념관을 짓기 위해 로마에 온다. 불레는 건축가들 사이에서도 크게 알려진 인물은 아닌데, 크랙라이트는 그를 우상처럼 여긴다. 불레는 당대 이탈리아의 거장이던 조반니 바티스타 피라네시처럼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건물에 대한 풍부한 상상력을 펼쳤고, 크랙라이트는 바로 그 상상력에 매혹됐기 때문이다. 신고전주의 건물의 상징 같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 안에, 신고전주의 건축가 불레를 위한 전시관을 연다는 기획에 크랙라이트는 대단한 자부심을 느낀다. 그런데 그의 상상력 넘치는 작업은 이상하게 시간이 지나며 불레의 작품처럼 점점 현실성을 잃어가고 만다. 주위에서 비난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그러면서 극심한 복통까지 생긴다. 자신감을 잃어가던 크랙라이트는 자신의 전시관도 파시스트의 선전용 건물처럼 의미 없는 껍데기가 되지 않을까 불안해하기까지 한다.

그리너웨이는 로마라는 도시 전체를 불레가 상상했던 ‘불가능한 예술’의 보고로 보는 것 같다. 현실이기보다는, 불레의 상상이 펼쳐진 꿈의 공간이 로마라는 것이다. 사실 콜로세움과 콜로세움을 흉내낸 파시스트의 모던한 건물이 동시에 펼쳐지는 무한대 같은 시간의 공간은 비현실의 환각을 느끼게 할 정도다. 어쩌면 로마의 거리를 걷는 것은 비현실을, 말하자면 꿈속을 걷는 기분을 경험하는 것 같다. 포로 로마노 같은 기원전 로마제국의 허무한 폐허들, 대제국 로마의 오만과 광기가 서려 있는 콜로세움, 그리고 바티칸의 성당처럼 찬란했던 르네상스의 걸작들을 동시에 만나는 것은 차라리 비현실에 가깝다. 그러기에 현실에선 불가능할 것 같은 사랑에 대한 상상력이 로마에선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현실이 꿈에 가깝다면, 우리에겐 못할 행동이 없을 것 같다. 로마가 현실의 논리와 이성, 그 너머의 세상을 상상하게 만드는 마법의 도시로 비쳐지는 까닭이다.

다음에는 이탈리아인의 눈에 비친 로마를 보겠다. 이탈리아영화의 심장인 로마에선 수많은 영화들이 만들어졌다. 영화적으로 볼 때, 로마의 주인장은 페데리코 펠리니다. 우선 펠리니의 로마부터 보겠다. 거기엔 이탈리아인들의 보편적인 마음이 표현돼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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