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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 × cross] “친숙한 듯해도 우리와 비슷한 밴드는 없다”

밴드 ‘9와 숫자들’

9(송재경), 0(유정목), 4(꿀버섯), 3(유병덕)(왼쪽부터).

밴드 ‘9와 숫자들’을 만나기에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데뷔 앨범 《9와 숫자들》(2009) 이후 5년 만에 만든 2집 《보물섬》은 지난해 11월에, 또 하나의 싱글 《빙글빙글》은 올해 4월에 발표됐으니까. 그럼 또 어떤가 싶기도 했다. 9와 숫자들의 음악은 지금도, 여전히 좋은데. 2집 타이틀곡 <숨바꼭질>이 ‘2015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모던록 노래’로 선정됐을 때, 선정위원들은 입모아 말했다. ‘혹시나 이들의 음악을 쓱 들어보고 별로 맘에 드는 구석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선택을 믿고 차근차근 열만 더 세어줬으면 좋겠다. 거기서 한 걸음만 더 가면 완전히 새로운 음악을 만날 수 있게 될 테니까.’ 그렇다면 더더욱 이들을 만나야 할 때는 중요하지 않았다. 팀의 리더이자 보컬인 9(송재경)가 7월에 첫 번째 솔로 싱글 《문학소년》을 낸 걸 계기 삼아 멤버 전원과의 만남을 청했다. 습하고 무더운 7월의 밤, 9와 숫자들을 만나 선선한 바람을 기다리게 하는 그들의 노래, 그들의 서정에 대해 귀를 기울였다.

-9와 숫자들은 멤버 저마다 숫자로 된 이름이 있다.

=9(송재경, 리드 보컬)_고교 시절부터 쓰던 예명이다. 어딘가 부족하고 어리바리해 보이는, 완벽을 향해 발버둥치는 존재가 9 같지 않나. 음악에 대한 내 생각과 잘 맞아떨어진다.

3(유병덕, 드럼)_영화 <인사이드 아웃>(2015)을 보면 상상 속의 친구 빙봉이 나오잖나. 그것과 비슷하게 어렸을 때부터 나는 숫자마다 성격을 부여했다. 나만의 빙봉은 이제는 없어졌지만, 숫자마다 이미지화해온 그 생각만큼은 계속 가지고 있다. 3은 공연 때 관객이 내가 3과 어울린다고 해서 택했다. 어딘가 균형 잡힌 느낌도 있고.

0(유정목, 기타)_<저수지의 개들>(1992)의 미스터 오렌지가 “블랙 같은 멋있는 것도 있는데 나는 왜 오렌지냐”는 식으로 말한다. 만약 블랙이 있다면, 아마도 특별한 0의 느낌과 맞지 않을까.

4(꿀버섯, 베이스)_딱히 마음에 드는 숫자가 없었다. 여성들이 ‘사’자 들어가는 직업 가진 남성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 꿀버섯? 실명을 얘기하는 게 싫어서 고민하던 때 내 머리가 단발에 일자 앞머리여서 버섯 같았다. 또 그때 ‘꿀벅지’ 등 ‘꿀’이라는 말이 유행이어서…. ‘그럼 나는 꿀버섯이다!’ 그랬다.

-EP 《유예》(2012)의 반응이 정말 좋았다. 5년 만의 정규 앨범 《보물섬》을 준비하며 기대와 부담이 컸을 것 같다.

=3_딱 1년 전 이맘때 멤버들과 낙원상가에 가서 큰마음 먹고 고가의 장비를 구입하며 본격적인 곡 작업에 들어갔다. 한곡을 가지고도 정말 수십번 편집을 해가며 지지고 볶았다. 《유예》 때보다도 더 많이 고생해서 만든 앨범이다.

0_《유예》 때는 각자가 본인 파트를 작업해서 나중에 합치는 식이었다. 《보물섬》은 본 작업 전부터 우리끼리 만나서 곡마다 어떤 방향으로 갈지를 여러 번 논의했다. 준비 과정이 길어졌다.

9_1집이 내 개인 작업에 가까웠고 《유예》는 절충안이었다면 《보물섬》은 그야말로 제로 베이스에서 출발해 다 같이 만들었다. 한땀 한땀 공들여 만들어서인지 만족도는 《유예》 때보다 훨씬 높다.

4_이전에는 앨범의 작사와 작곡을 담당하는 9가 상당히 디테일한 뼈대를 만들어왔다. 그 방식이 좋다고만 생각하면 그 안에 머물면서 비슷한 스타일밖에 만들지 못할 거다. 오히려 이번처럼 채워나가야 할 부분들이 있으니까 해볼 게 많아지더라. 곡 전체의 절반 정도는 되레 작업이 빨리 됐다. 나머지 반은 진행이 안 돼서 어려웠다. 그래도 역시 음악하고 앨범 만드는 일은 재밌다.

-《유예》는 앨범 전체가 하나의 서정성을 갖고 밀고 가는 듯한 통일감이 있었다면, 《보물섬》은 그보다 훨씬 다채로운 사운드와 분위기를 낸다.

=9_우리가 가지고 있는 음악적 레인지(범위)를 다 보여주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비슷하게 흘러가면 고치고 또 고치고. 아직 ‘우리는 이런 음악을 한다’라고 내세울 만하지 않다. 그럴 때도 아니고. 《보물섬》 작업하기 전에 친분이 있는 방준석 음악감독님을 찾아갔는데 그러시더라. ‘일단 너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걸 다 넣어서 끝까지 가봐라. 생각은 그다음에 해라.’ 해보고 싶은 거 다 집어넣어보니 이상한 게 나오긴 했는데 그러면서 나름 좋은 걸 얻은 것 같다.

-앨범 작업할 때 특히 공을 들였거나 멤버들을 유독 힘들게 만든 곡이 있나.

=9_<창세기> <한강의 기적>은 발매 직전까지도 이견이 있었다. <창세기>는 핑크 플로이드풍으로 가려고 하다 결국 다 빼고 피아노로만 갔다. <한강의 기적>은 별짓을 다 하다 일렉트로니컬한 사운드가 앨범에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방향을 잡았다. 그러면서 밴드의 형태가 만들어졌다.

-9와 숫자들의 음악적 서정은 아마도 사운드뿐 아니라 평이한 듯하나 감정의 의표를 찌르는 시적인 가사에서 오는 게 큰 것 같다.

=3_1집은 9 개인이 겪은, 겪었을 법한 이야기가 많이 녹아 있다. 《유예》 때부터 가사의 포용 범위가 사회적 문제로까지 넓어졌다. 우리 밴드가 청춘에 대해 말한다면, 불확실한 청춘이지만 적어도 30대인 멤버들이 삶을 겪으며 조금씩 알게 된 것들에 대해서만큼은 확신을 가지고 말하게 됐다. 《보물섬》에는 우리 나름의 해답이 제시돼 있다.

9_<인사이드 아웃>을 보면 결국 기쁨의 전제가 슬픔이라는 건데 기쁨의 연속 속에서는 알 수 없는 기쁨, 기쁨을 기대하며 겪는 슬픔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밝음은 누구나 말하지만 슬픔은 쉽게 직시하지 않는다. 삶에도 언젠가는 충만함과 완성이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다. 그게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계속해서 가보는 수밖에. 그래서 체념하고 냉소하고 비관하는 가사는 쓰고 싶지 않다. 물론 ‘이것이 행복이다’라며 보여주는 가사도 없을 것이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좋지만 근본적인 것을 말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1990년대 한국 대중음악만 봐도 이영훈씨의 노랫말을 비롯해 좋은 가사가 얼마나 많나. 요즘은 온통 클리셰의 향연이다. 가사만 읽어도 최소한 말이 돼야 한다. 문화라는 건 그렇게 좋은 것들의 연속성 위에서 만들어지니까.

-어떤 이들은 9와 숫자들의 음악을 복고적이라고 말한다.

=9_말이 복고지 올드하다는 건데…. (웃음) 기시감이 느껴지는 사운드라고도 하고. 근데 나는 그것이 우리의 강점 같다. 친숙한 듯해도 우리와 비슷한 밴드는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우리는 정말 다양한 음악을 듣는다. 클래식과 요즘 사람들이 공감하는 음악 사이의 접점을 찾으려 한다. 나는 영국의 ‘더 스미스’, 미국의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비롯한 60~80년대 영미의 록음악을 꾸준히 들어왔다. 꿀버섯은 지독하리만치 록을 많이 듣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뿌요뿌요>를 비롯한 1990년대 한국 대중가요도 엄청 좋아한다. (웃음)

3_잘 들어보면 우린 신구의 조화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접한 토대 위에 문학적 가사가 들어가 있는 것도 좋고. 0은 일명 힙스터다. 영미의 최신 인디밴드의 음악을 가장 빠르게 접한다. 나는 드러머이다 보니 흑인음악이나 힙합을 많이 듣고. 이번 앨범 만들면서는 멤버들끼리 ‘리얼 에스테이트’ , ‘본 아이버 ’ , ‘더 내셔널’의 노래를 같이 들었다.

-정규 앨범 이후 싱글 《빙글빙글》(2015)을 냈다. 9는 싱글 앨범 《문학소년》 이후로도 계속 싱글을 발표해 개인 정규 앨범도 낼 계획이라고.

=0_단독 공연을 잡고 보니 뭔가 홍보용 곡이 필요했다. 싱글 《높은 마음》(2013)이 그렇게 만들어졌고 이번에도 공연을 준비하면서 만들었다.

9_솔로 활동 자체도 결국은 밴드 활동을 보다 잘하기 위해서다. 밴드로서 더 많은 시도를 해야 한다. 올해 9와 숫자들은 《수렴》과 《발산》이라는 EP 앨범 두개를 하나로 묶어낼 거다. 음악 공부한 것을 담는 식이다. 연주라는 건 기술이다보니 공부하지 않으면 한계가 있다. 우리가 다음 앨범까지는 어떻게든 갈 수 있을지 몰라도 오래 가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 그래야 동어반복을 피할 수 있다.

-하반기는 도약을 위한 9와 숫자들의 단련기가 될 것 같다.

=3_연습을 계속해야 한다. 음악은 할수록 어렵다. 그래도 점점 더 나아질 거라는 확신이 있다. 늘작업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단순히 장비 하나를 더 산다는 게 아니라 스튜디오 환경 자체에 변화를 준다. 사실 힘들고 귀찮고 짜증나는 일인데도 바꾼다. 좀더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

0_《수렴》과 《발산》 이전에 아이돌 댄스 음악을 하나 만들고 싶다. 한번에 딱 들리는 쉬운 곡으로. 근데 오늘 말한 프로젝트들을 다 하려면….

9_틀에 박힌 공연을 벗어나려 한다. ‘퇴근길, 희망의 식탁’이라는 주제로, 월요일 저녁에 관객과 밥을 같이 먹으며 공연을 한다. 음악과 이야기를 섞은 연극과 같은 공연도 준비 중이다. 워낙 음반 시장이 부침이 심하니 게릴라성 공연으로 무대를 계속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세 번째 정규앨범을 준비할 텐데 부끄럽지 않은 앨범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

4_올해의 계획? 음, 처음으로 혼자 살게 됐다. 집을 정리하고 살아보니까 이제야 사람답게 살고 있는 것 같다. 계획을 세워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여름에는, 9와 숫자들표 서프 뮤직을~

온도로 치자면, 9와 숫자들의 노래는 한껏 달아오른 뜨거움보다는 뭉근히 가라앉은 서늘함에 가깝다. 그래서, 여름의 정중앙을 통과하며 만난 9와 숫자들에게 물었다. ‘오늘같이 무덥고 축축한 날엔 무슨 곡이 어울릴까요?’ 3은 “<산타클로스> <눈물바람>은 너무 추우니 플라타너스 잎이 바닥에 깔려 있을 때의 계절을 생각하며 <플라타너스>”를, 4는 “<빙글빙글>”, 9는 “<실버 라인>”을 추천했다. 그리고 0의 선곡은 “<몽땅>”. 그는 “비치 보이스의 서프 뮤직 분위기를 내보려고 만든 여름용 음악이다. 우리 음악을 잘 들어보면 의외로 휴가철에 들으면 좋을 곡들이 많다!”고 일러준다. 그렇다면, 다시 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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