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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호, 강경태, 이옥섭, 구교환] 영화제 너머 극장에서 만나요
정지혜 사진 백종헌 2015-08-26

<오늘영화> 윤성호, 강경태, 이옥섭, 구교환 감독

윤성호, 강경태, 이옥섭, 구교환 감독(왼쪽부터).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 개막작인 <오늘영화>(배급 인디플러그, 2014)가 8월20일 개봉한다. 서독제가 독립영화의 기획과 제작을 지원하고 배급까지 조력하기 위해 시작한 ‘인디트라이앵글 프로젝트’가 이룬 성과다. ‘나의 영화, 나의 영화제’라는 주제로 시나리오를 공모해 세편을 선정한 후 옴니버스로 묶었다. 첫 번째 단편은 윤성호 감독의 <백역사>다. <은하해방전선>(2007)을 비롯한 영화뿐 아니라 웹과 모바일용 드라마로 ‘썸’과 ‘밀당’의 연애사, 깨알 같은 정치풍자를 그려온 윤성호 감독표 로맨스다. 공장에서 일하는 종환(박종환)과 중국집 종업원 연주(정연주)가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뒤 영화관에서 데이트를 하기까지의 과정을 엿볼 수 있다. <나쁜 꿈>(2013), <누가 만들었을까?>(2013) 등으로 단편영화 작업을 꾸준히 해온 강경태 감독은 <뇌물>이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영화를 내놨다. 주인공인 영화과 학생 대일(백수장)은 준비 중인 졸업작품을 동료와 선배들에게 보여주며 의견을 구하나 하나같이 심드렁한 반응뿐이다. 이옥섭, 구교환 감독이 공동연출한 <연애다큐>는 연인 사이인 교환(구교환)과 하나(임성미)가 영화제 사전제작지원작 공모에 지원한 뒤 이별과 재회를 하기까지를 일종의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보여준다. 자기 색깔이 확실한 네명의 감독을 한자리에서 만났다. 그들이 전하는 <오늘영화>와 영화에 대한 그들 각자의 생각을 들어봤다.

-윤성호 감독을 제외한 세 감독은 <오늘영화>가 첫 번째 극장 개봉작이다.

=구교환_개봉 규모는 작지만 영화만큼은 항상 큰 마음으로 만들려고 한다. 그러니 예쁘게 봐주면 좋겠다.

이옥섭_관객이 값을 지불하고 영화를 보는 만큼 부디 보시고 시간과 돈이 아깝지 않길 바란다. (웃음)

강경태_찍은 지 좀 지나서 영화를 한동안 잊고 있었다. 배급사가 생기고 개봉을 준비하면서 새삼 ‘나부터 영화를 좀더 아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제 관객이 아닌 일반 관객이 어떻게 볼지 상당히 궁금하다.

-‘나의 영화, 나의 영화제’라는 주제를 듣고 어떤 아이디어에서 시나리오를 써내려갔나.

=윤성호_한동안 <출중한 여자>(2014), <출출한 여자>(2013) 같은 웹드라마나 모바일 드라마를 찍었다. 이 경우는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게끔 효과음, 보이스 오버 등 장치들을 집어넣어야 한다. 그러던 차라 장식 없는, 오직 스크린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찍고 싶었다. 그간 독립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자조 섞인 유머가 짙은 작품은 많이 만들어봤다. 그래서 이번에는 인생에서 영화가 그리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다. 영화가 ‘썸’의 수단 정도인 사람들이지만 그들 역시도 영화 생태계의 한 부분이니까.

강경태_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뇌물>을 읽고 모티브를 얻어 구상해둔 작품이었다. 소설을 보면 학술대회 대표 자리에 앉고 싶은 교수 A가 선임교수의 논문을 공개적으로 반박한다. 선임교수는 보복성으로 A를 탈락시켰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 되레 A를 학술대회 대표로 뽑는다. 재밌는 아이러니다. 서독제에 영화를 출품하고 많이 떨어져본 내가 오히려 서독제의 지원을 받아 영화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싶더라. (웃음) <뇌물>은 졸업작품을 만들려는 대일이 영화과 동료, 선배, 출연배우로부터 작품에 대한 면박을 들으면서 동시에 그들의 이면에 대해 신랄하게 말하는 구조다. 영화를 만드는 내 실제 모습과 영화 속 내용이 맞아떨어지는 게 흥미로웠다.

구교환_실제로 나와 이옥섭 감독은 연애에 관한 다큐멘터리로 EBS국제다큐영화제 사전제작에 지원해볼까 했다. (두 사람은 실제 연인 사이다.-편집자) 근데 우리 이야기를 다 드러내 보인다는 게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해 결국 지원을 못했다.

이옥섭_평소에 로맨스, 연애관계를 그리는 데 관심이 많다. 내가 누군가에게 떨림을 느끼고 사랑에 빠지고 또 헤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결국 나 자신에 대해 이해해보게 되더라. <연애다큐>도,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작품인 <4학년 보경이>(2014)도 그런 궁금증에서 출발했다.

-서로가 서로의 작품에 대해 단평을 해보자면.

=구교환_<백역사>에서 종환이 연주를 만나기 위해 자전거 페달을 밟아나갈 때 인물을 오래도록 보여주는 장면이 특히 좋았다. 난 성격이 급해서 그런지 3초 이상 인물의 표정이 나오는 걸 못 참는다. 다음에는 나도 이렇게 인물을 길게 두고 보고 싶다. <뇌물>은 보는 내내 마음이 동하더라. 나도 영화제에 내 영화를 출품하고 싶어 안달하는 편이라 대일의 심정이 이해가 됐다. (웃음)

이옥섭_어느 한 부분이 좋으면 다 좋아지는 편인데 <뇌물>이 딱 그랬다. 영화 속 감독과 여배우가 “감독이랑 사귄 적 있냐?” “감독이랑 사귄 적은 없는데 잔 적은 있다”라고 말하는 대사만 들어도 너무 재밌잖나. 윤성호 감독의 영화 속 낯선 남녀는 영화관에 가서 키스를 하고 자러 간다. 어렸을 때 DVD방이나 영화관 가는 거 다 만지러 가는 거 아닌가. (일동 웃음) 우리 사는 이야기랑 가까워 보였다.

강경태_이옥섭, 구교환 감독의 작품은 영화제 때부터 관객 반응이 워낙 좋았다. 개봉하면 상업영화쪽 프로듀서들이 연락을 꽤 할 것 같다. 윤성호 감독은 캐릭터들끼리 카메라 앞에서 왁자하게 떠들며 웃음을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수다스럽고 화려한 장면들 대신 인물을 지켜보는 카메라가 보였고 그게 좋더라.

윤성호_<오늘영화> VIP 시사회 초대를 위해 지인들에게 문자를 보내고 있다. ‘나는 설렁설렁 만들었지만 다른 두팀의 감독님들은 역작을 만들었으니 결코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썼다. 옴니버스영화를 꽤 만들어봤는데 여러 편이 묶이다보면 간혹 망작이 나온다. (웃음) 그런데 이번은 아니다. 이옥섭, 구교환 감독은 컷 분할이 상업영화보다도 더 대중적이다. 화면 사이즈, 카메라 무빙, 앵글 등을 보면 ‘두 사람, 선수 아냐?’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강경태 감독은 본인이 겪었던 일화에서 영감을 얻은 만큼 자기 반영이 짙은 작품이다. <백역사>는 영화 전체의 에피타이저 역할을 무난히 소화한 게 아닌가 싶다.

-이옥섭, 구교환 감독은 <연애 다큐> 외에도 <왜 독립영화 감독들은 DVD를 주지 않는가?>(2013), <4학년 보경이>, <방과 후 티타임 리턴즈>(2015)까지 공동작업을 해오고 있다. 작업 파트너로서 잘 맞는 부분과 조율이 필요한 점은 무엇인가.

=이옥섭_밥 먹다가도 ‘이걸 영화의 첫 장면으로 쓰면 어때?’라는 식이다. 일상에서 아이디어를 주고받고 구성을 같이 해나가는 게 잘 맞는다. 근데 서로 개그 코드가 안 맞는다. (웃음) 나는 개그를 덜 하려고 하고 선배(두 사람은 서울예술대학 영화과 선후배 사이다.-편집자)는 더 가려고 한다. 영화 속에서 교환이 EBS 로비에 등장하는 장면의 경우, 나는 너무 가짜 같아서 뺐다. 근데 선배가 나 몰래 기어코 넣어놨더라.

구교환_서로 몇번씩 주고받으며 시나리오를 고친다. 옥섭은 최대한 리얼하게, 나는 최대한 리얼하지 않게. 공동작업의 시너지? 비난과 야유를 반으로 나눠 갖는다는 데 있겠다.

이옥섭_대신 칭찬은 절대 반으로 나누지 않는다. (웃음)

-<뇌물>은 무엇보다 구성이 특이하다. 현실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주인공이 찍는 영화 속 한 장면이라는 식이 계속된다.

=강경태_앞 장면을 바로 다음 장면에서 부정하고 배척하며 이야기를 쌓아가는 재미가 있다. ‘영화 속 인물의 진짜 이야기인가?’ 하고 따라갔는데 알고 보니 인물의 이야기가 아닌 척하는 이야기다. 앞 신에 대한 조롱도 섞여 있고. “근데 지금 이거 영화예요, 현실이에요?” “몰라요, 어쨌든, 진짜예요.” 이런 대사를 통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걸 관객이 함께 느껴주길 바란다.

-꾸준히 영화 작업을 해오면서 영화, 영화제에 대한 생각에도 변화가 있을 것 같다.

=윤성호_20대 후반에서야 뒤늦게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땐 뭔가를 만들어내는 나 자신에게 관심이 많았다. 이후 내러티브, 캐릭터 플레이에 흥미가 생겨 신을 만드는 걸로 풀었고. 꼭 영화가 아니라도 캐릭터들간의 반응을 보여주고 아이러니한 결론에 이르는 드라마를 만들자는 생각에 웹, 모바일용 드라마도 만들었다. 요즘은 나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백역사>도 그 과정에 있는 영화다. 사람들이 내 영화를 보고 집에 가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 좋겠다. 어쩌면 지금의 내 눈높이가 딱 대중적인 게 아닐까 싶다.

구교환_영화를 정말 좋아하는데 영화가 내게 궁극적인 행복을 주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영화와 되게 불안한 연애를 하는 것 같다. 예전에는 무조건 영화에 구애를 했는데 계속 그러면 안 될 것도 같고. 딴 데서 한숨을 돌리고 와야 내가 좀더 매력적인 연애 상대가 되지 않을까. 그래서 내 주변을 돌아보려 한다. 탁구도 시작했고 게임기도 구입했고 만화도 보면서 영화 외에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찾고 있다.

이옥섭_과거의 윤성호 감독처럼 현재의 나는 나에게 관심이 많이 기운다. 나조차 납득되지 않는 내 모습에 대해서 글로 써보기도 하고. 그래도 영화를 만들면서 다른 사람들을 볼 때 ‘저 사람도 저렇게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강경태_<파리의 우울>에서 샤를 보들레르가 ‘항상 취해 있어야만 한다’고 말하잖나. 그 말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술을 엄청 마시고 다음날도 시체처럼 누워 있길 좋아한다. (웃음) 마치 시간을 죽이기 위해서 술을 마시는 사람처럼 공허할 때가 많다. 그런데 영화를 만들 때만큼은 내가 뭔가 삶의 의미를 찾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영화 제작은 달콤하지만 고통스럽다. 계속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고 영화제 출품이 안 되는 경우를 비롯해 거절의 순간을 맞아야 하고.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계속 만들어볼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오늘영화> 개봉 이후의 활동 계획은 뭔가.

=강경태_지난해 아버지와 아들에 관한 자전적 이야기를 준비하던 차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기한 내 제작을 해야 해서 아버지 역을 대신할 배우를 섭외해 촬영은 마쳤다. 그런데 아직은 내가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아닌 것 같다. 편집을 잘 마치면 좋겠다. 이후에는 장편을 찍을 계획이다.

이옥섭_코미디를 굉장히 좋아한다. 나름 재밌게 썼다고 생각하고 지인들에게 보여줬는데 재미없다는 피드백이 오면 그렇게 속상하다. 지금도 재밌는 장편 로맨스물을 쓴다. 언제나 내 영화 속 인물들이 사랑을 위해 마음가는 대로 행동하더라도 결코 누구 하나 미워 보이지 않길 바란다.

구교환_이옥섭 감독과 재미난 가족영화를 준비 중이다. 개인적으로는 언젠가 천만 관객이 드는 영화를 꼭 만들고 싶다. 그때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한 신 정도 내가 직접 출연하면 좋겠다. 연기와 연출을 병행하다보니 연기력과 연출력이 둘 다 감퇴하는 것 같지만…. (웃음) 현재 상업영화의 시나리오도 쓰고 있다. <창수>(2013), <파이란>(2001)과 같은 분위기에 코믹이 가미됐다고 해야 할까. 이번 각본의 히든카드? 슬프지만 내가 출연하지는 않는다. 그 자리를 강동원, 유아인씨가 대신해준다면 어떨까?

윤성호_그전에 교환씨는 내가 준비 중인 <출출한 여자> 시즌2에 (박)희본씨의 남자친구 역으로 나와줘야겠다. (일동 웃음) 또 총괄 기획자로서 모바일용 드라마를 세개 정도 진행 중이다. 이우정, 김인선 감독 등과 연출할 예정이다. 그사이 영화도 하나 찍고. 근데 아무래도 난 연출보다는 프로듀싱, 캐스팅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 감독, 배우들의 에이전트로도 일해보고 싶다. 그러고 보니 여기 세 감독에게 닉네임을 붙여서 영화 한편 찍어도 좋겠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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