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trans x cross
[trans × cross] 관계를 맺기 위해 내미는 손
이예지 사진 최성열 2015-10-19

<희지의 세계> 출간한 시인 황인찬

“조명도 없고, 울림도 없는/ 방이었다/ 이곳에 단 하나의 백자가 있다는 것을/ 비로소 나는 알았다(…).” 현란한 미래파 시들이 범람했던 시기인 2000년대의 끝에서 가장 정적이고 미니멀한 시가 등장했다. ‘백자’처럼 고요한 빛을 내뿜던 그가 발견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2010년 현대문학 신인 추천으로 등단한 황인찬 시인은 등단 2년 만에 최연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자가 됐고, 첫 시집 <구관조 씻기기>를 출간하여 “언어에게 옷을 입히는 방식이 아니라 언어를 씻기는 방식을 통해 새로운 시적 경험을 제공한다”는 문단의 찬사를 받았다. 3년이 채 지나지 않은 2015년 가을, 황인찬 시인은 두 번째 시집 <희지의 세계>를 출간했다. <희지의 세계>는 시집으로는 이례적으로 초판을 출간하자마자 3쇄까지 매진되며 증쇄를 거듭하는 중이다. 관조의 포즈를 취하던 시인은 두 번째 시집에서는 관계를 맺기 위한 손을 내민다. 뜻하는 언어에 도달하기 위해 오래 말을 고르고 또 쏟아냈던, 황인찬 시인과의 시담을 지면에 옮긴다.

-<희지의 세계>가 초판 3쇄까지 매진됐다. 신간을 미처 못 사서 찾아 다녔는데, 책이 다 동이 나서 사기가 어렵더라. 부산을 다 뒤져서 산 시집이다.

=벌써 3500부 정도 나갔다더라. 전혀 예상 못했다. 첫 시집이 독자들에게 좋게 받아들여져 반응이 좋은 것 같다. 감사한 일이다

-두 번째 시집이 비교적 빨리 나왔다. 2012년 12월에 <구관조 씻기기>를 발간했으니 약 3년 만이다.

=데뷔한 지 5년 만에 책을 2권이나 냈다. 급하게 하긴 했다. 다작의 비결은 마감에 있는 게 아닐까. 글은 마감이 완성시킨다. (웃음) 습작생 시절부터 별다른 일이 없는 한 매일 시를 써왔다. 항상 24시간 카페에서 새벽까지 시를 쓴다. 여러 시를 띄워놓고 동시에 쓰는 식이다. 마감을 할 수 있도록 문예지에서 청탁을 많이 해주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등단 후 “언어에게 옷을 입히는 방식이 아니라 언어를 씻기는 방식”, “최소한의 언어와 간결한 형식으로 시적 주체의 실존과 기원을 응시하는 시” 등의 평을 받았다.

=2000년대 활발하게 활동한 선배들을 의식했기 때문에 부러 더 그런 형식을 만든 것 같다. 미래파로 명명되는 김경주, 황병승 시인 등을 워낙 좋아했다. 동경했기 때문에 오히려 나 나름의 방식을 새롭게 찾는 방향을 택했다. 술술 읽히되 뭔지는 금방 안 들키는 시를 쓰고 싶었다. 미로가 복잡하고 깊어지면 해법을 찾는 순간 끝이 난다. 그런 의미에서 복잡한 시는 오히려 단순해지는 위험이 있다. 곱씹어볼 수 있는 시, 뭔가 해결되지 않아 찜찜한 상태가 더 지속될 수 있는 시가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 시가 간명해진 까닭은 자기혐오에서도 찾을 수 있다. 부끄러운 게 많아서 말을 많이 하는 게 싫은 거다.

-김수영 문학상 수상과 첫 시집의 출간 이후, 두 번째 시집을 내기까지 고민들도 있었을 것 같다.

=첫 시집 이후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일단 든 생각은 첫 시집하고는 무조건 다른 방향으로 가야겠다는 것이었다. 첫 시집으로 얻은 성과가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한편으론 빨리 소비되고 싶지 않은 두려움도 있었다. 첫 시집을 내기도 전에 비평에서 호명이 되곤 했었다. 세대교체를 하려는 평단의 욕망이기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두 번째 시집은 기대에서 벗어나 ‘잘 망해야지’ 싶었다. (웃음) 완전히 반대의 방향이 아니라 어긋나는 방식으로 나아가려 했다. 목표는 ‘일반적인 기준에서의 좋은 시는 향하지 말자’는 것과 ‘전위적인 것은 하지 말자’, 두 가지였다. 내가 살고 있는 삶과 딛고 있는 땅을 무시하진 말자는 주의다. 예술에 있어 전위가 가능했던 것은 혁명이 가능했던 시절이다. 2차대전 후 초현실주의, 아방가르드 같은 예술적 사조들이 생겨났지 않나. 세계가 변화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던 시절이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현 시대는 기대지평이 위축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 혼자 훌쩍 전위를 꿈꾸고 싶지는 않다.

-제목 <희지의 세계>는 어떤 뜻인가. “이자혜의 만화 <미지의 세계>에서 제목을 빌려 시를 쓰려다 그만 착각을 하고 말았다”라고 서문을 썼는데.

=착각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이자혜의 만화 제목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잘못 기억하고 있었더라. 착각하고 나니 착각까지 포함해서 다른 뜻도 생겨났다. ‘희지’라는 말이 뭐냐 물으시는데 나도 모른다. (웃음) 다들 여러 의미를 갖다 붙이니, 착각이 확장되더라. 그런 의미에서 착각은 오류의 상태라기보다는 생각이 보류된 상태에 가깝다.

-첫 시집 <구관조 씻기기>가 화자와 사물과의 거리두기를 통해 관조적 시선을 보냈다면, 두 번째 시집 <희지의 세계>에서는 화자의 정서와 파토스가 전보다 진하게 들어간 느낌이다.

=첫 시집은 적극적으로 수행하지 않는 상태의 글이다. 멈춰져서 판단을 보류하고, 만지지는 않고 관찰하는 태도랄까. 두 번째 시집은 온도를 높였다. 더이상 멈춰서 관조하지만 않고, 사물과 관계를 맺는 행위인 ‘액션’이 들어갔다. 김춘수의 <>이라는 시를 좋아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라는 시구의 ‘몸짓’ 상태가 존재의 가장 이상적인 상태라고 생각했다. 문학평론가 고 김현의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유용한 것은 인간을 억압하지만, 문학은 무용하므로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그 대신 억압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예전에 그 무용한 몸짓이 아름답고 의미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첫 시집을 내고 나서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이 무용의 유용론이 허무하게 느껴지더라. 이 시대엔 작고 구조화된 폭력이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어서 무엇이 억압이고 폭력인지 구분할 수조차 없다. 무용한 아름다움의 기적이 더이상 통하지 않게 된 거다. 그래서 대상을 직접 만지고, 관계를 맺는 일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시의 화자로 중학생이 자주 등장한다.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이 아닌 꼭 중학생이다.

=중학생은 처음으로 자아를 형성하고 세계를 접하는 시기다. ‘중2병’이라는 건 자아가 비대해져 자신의 크기와 세계의 크기를 비슷하게 느끼는 것이지 않나. 그 비대한 자아가 시인들의 그것과 비슷하기도 하다. 자아가 처음 자리 잡혀갈 때 맞닥뜨리는 모든 것들은 새롭고 놀랍다. 이렇듯 모든 것이 생경하고 새삼스러운 태도가 시를 쓰기 좋은 태도다.

-희지, 두희, 숙이 등 익명의 화자들에 이름을 부여하고, 이들로 시각적 장면을 환기시키는 이야기를 만든다. 인물들의 대화들을 시에 끌어오는 일도 잦다. 어떻게 보면 영화적이기도 하다.

=이름은 정서를 환기시키려는 차원에서 임의로 부여한다. 시에 서사를 도입하는 것은 관계성을 드러내려다보니 가져오게 되는 거다. 존 치버나 안톤 체호프의 단편을 읽다보면 빛을 발하는 어느 순간이 있는데, 시에서도 그런 표현을 하고 싶다. 하지만 결코 소설적일 순 없고, 영화적으로 덜컥 잘라서 옮겨놓은 것처럼 구성되기도 한다. 영화를 좋아하진 않는다. (웃음) 극장에서 두 시간 동안 앉아서 모든 걸 받아들여야 하는 수동적 소비방식을 못 견딘다. 그래도 좋아하는 건 M. 나이트 샤말란 감독과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 샤말란 감독의 작품은 ‘네가 보고 있는 건 영화이고 스펙터클의 민낯엔 이런 게 있다’고 관객을 배신해버리는 지점이 있다. 그런 게 시와도 닮아 있다. 홍상수 감독은 구조에서 많이 배운다. 레이어를 여러 개로 만들어놓고 즐길 사람은 알아서 보라는 태도가 시 쓸 때의 태도와도 비슷한 지점이 있다.

-시는 쓰는 사람만 읽는 시대라고들 한다. 그런데 당신의 시집이 초판을 찍자마자 3쇄까지 매진되고, 박준 시인의 시집이 베스트셀러에 진입하는 현상들을 보니 점차 가능성을 확장해가고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만 이렇게 시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고 있다. 놀랍고 특이한 현상이다. 요즘 부쩍 시의 독자가 늘어난 게 느껴진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시를 읽기 시작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패션지 에디터 같은 경우는 트렌드에 민감한 사람들이지 않나. 이런 분들이 시집을 읽고 호명을 하는 거다. 시라는 장르가 마이너한 느낌과 더불어 ‘힙’한 느낌을 주는 뭔가가 됐다. 시가 지켜온 시장에서 저변이 확대되고 있는 건 ‘힙스터’라는 개념의 발명 때문 아닌가 싶다. (웃음)

-이 시대에 당신에게 시를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시를 쓴다는 건 아무도 안 읽을 게 뻔하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누군가 읽어줄 걸 기대하는 거다. 나는 나의 시를 100만명에게 읽히고 싶지 않다. 대신 시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읽어줬으면 한다. 모두에게 이해받는 것보다는 공동체 안에서 이해될 때 유대감과 만족도가 높아진다. 시를 쓰는 건 사실 특별해지고 싶어서다. 특별한 게 되기 위해선 모두에게 쉽게 들켜선 안 되는 것이기도 하다. 시를 읽는 사람들은 본 적은 없어도 친구라는 생각이 든다. 읽는다는 것만으로 이미 어떤 공동체 안에 있게 되는 일이다. 내 의도를, 내 마음을 읽었구나 싶으면 그렇게 반갑고 고맙다. 누군가 이걸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읽어줄 거란 기대가 있기에 시를 쓸 수 있다.

<희지의 세계>

2010년 현대문학 신인 추천으로 등단, 2012년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황인찬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다. 민음사에서 2015년 9월18일 출간되어 현재 초판 3쇄를 찍었다. 제목 <희지의 세계>는 이자혜의 만화 <미지의 세계>의 제목을 착각한 것에서 비롯됐다. 거리두기를 통해 사물의 순수한 본질을 읽어냈던 첫 번째 시집에서 한 발짝 나아가, 사물과의 관계맺기를 시도하는 시적 태도가 돋보인다. “포스트모던의 시대적 징후를 읽어내는 사유의 깊이가 있는 작품”이자 “동시대 젊은 시인의 움직임 중 돋보이는 사유와 감각”이라는 평을 받았다.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