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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촌에서 살아온 세명의 여성 <거미의 땅>
정지혜 2016-01-13

쓰러져가는 묘지들이 보인다. 그 위로 군인들의 행군가가 들려온다. 이번엔 쓰러져가는 낡은 공간들이 보인다. 이윽고 영화는 마을로 내려와 기지촌에서 살아온 세명의 여성을 차례로 담는다. 박묘연은 젊은 시절 스물여섯명의 아이를 임신했고 수술로 지웠다. 미군과 결혼 직전까지 가기도 했지만 결국 그녀는 홀로 남았다. 지금의 박묘연은 낮에는 분식집을 운영하고 밤에는 스스로 자신의 아픈 몸에 주삿바늘을 꽂으며 살아간다. 박인순은 의정부의 쇠락한 골목길에서 폐지를 줍는다. 그녀는 읽고 쓸 줄 모르며 자신의 의사를 언어로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다. 대신 자기 안의 분노와 상처를 그림으로 그린다.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을 통해 그녀는 미국에 두고 온 자식들에게 그리움을 담은 편지를 보낸다. 기지촌에서 만났을 미국인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 한국으로 돌아왔다. 안성자는 혼혈인이다. 과거 기지촌의 클럽 댄서였다. 그녀는 자신을 버린 엄마를 그리워한다.

<거미의 땅>은 세 여성이 기지촌이라는 공간에서 각자 겪은 트라우마의 경험을 전한다. 그들의 과거를 담아내는 영화의 형식은 인물마다 다르다. 가장 생경하고 과감한 건 안성자가 과거 기지촌 클럽에서 만난 친구 세라를 회상할 때다. 안성자는 세라와 자신이 만났던 공간으로 가 과거의 자신을 재연한다. 이때 영화에는 안성자의 내레이션과 김동령, 박경태 두 연출자의 음성이 교차하며 그녀의 과거에 대해 묻고 답한다. 현재의 안성자와 과거의 안성자, 현실과 환상의 안성자가 마구 교차한다. 다이렉트 시네마적 접근의 고정된 틀을 벗어나 각 인물이 가장 편하게 자신의 속내를 말할 수 있는 표현 양식을 고민한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한편 극적 장치들도 도드라진다. 안성자가 자신의 엄마뻘 되는 박묘연 앞에 나타나 박묘연이 만든 햄버거를 먹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카메라는 안성자가 햄버거를 먹으며 끝내 눈물을 흘리는 순간을 찍고야 만다. 관객이 이러한 장면을 트라우마의 재연으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냐에 따라 극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것이다. 13회 야마가타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특별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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