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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만들려 노력했다
정지혜 사진 최성열 2016-02-11

<번개맨> 조근현 감독

조근현 감독이 <번개맨>으로 돌아왔다. <번개맨>은 1999년부터 현재까지 EBS <모여라 딩동댕>을 통해 어린이들 사이에서 인기 캐릭터로 자리잡은 ‘번개맨’을 주인공으로 한 특수촬영물(이하 특촬물)이다. TV방송뿐 아니라 이미 공개방송과 뮤지컬을 통해 번개맨은 열성적인 어린이 팬층을 두텁게 확보해왔다. 영화는 사랑스러운 조이랜드와 하늘을 날고 싶어 하는 천진한 소녀 한나(루나) 등을 보호하는 번개맨(정현진)을 통해 꿈과 희망이라는 단순하지만 확실한 메시지를 전한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항쟁 때 상처 입은 이들이 펼치는 응징의 기록 <26년>(2012), 한 예술가의 번민을 풀어낸 <봄>(2014)이라는 감독의 전작들과 비교해보면 <번개맨>은 확실히 새로운 선택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의 개봉(2월11일)을 앞둔 조근현 감독을 만나 어떤 이유로 이 작업에 참여하게 됐는지와 <번개맨>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들어봤다.

-<번개맨>을 차기작으로 꼽은 이유부터 묻고 싶다.

=아이들 영화가 너무 없다는 게 제일 컸다. 올해로 영화계에 들어온 지 17년째다. 미술 스탭(조근현 감독은 <장화, 홍련>(2002), <형사 Duelist>(2005) 외 다수의 영화의 미술감독이기도 하다.-편집자)으로도 오래 일했는데 점점 더 작업하기가 싫어졌다. 비슷비슷한 영화들뿐이었다. <외계에서 온 우뢰매>(감독 김청기, 1986) 이후 이렇다 할 특촬물이 없기도 했고. 지금의 아이들은 할리우드영화만 보고 자랄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대단한 걸 보여주겠다’는 자신감에서 출발했다기보다는 나부터라도 다시 어린이용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컸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일단 시작을 해야 그다음에 누구에게든 한국판 어린이용 특촬물을 만들 기회가 생기지 않겠나.

-원래 준비하던 큰 프로젝트가 있었던 걸로 안다.

=지난해가 광복 70주년이라 그와 관련된 영화를 만들자며 심도 깊게 얘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그때 느닷없이 <번개맨> 연출 제의가 들어온 거다. 근데 ‘이건 해야겠다’는 생각이 순식간에 들었다. <외계에서 온 우뢰매> 때 조명팀이었던 박현원 조명감독님도 당시 만들면서 아쉬웠던 점들을 상기하며 다시 한번 제대로 만들어보자며 합류해주셨다. 특촬물 불모지인 한국에서 이런 작업을 하려니 처음에는 정말 막막하더라. 한국, 할리우드 특촬물 등을 두루 찾아보면서 ‘이 장면은 이렇게 만들지 않았을까’ 하며 역으로 장면 구현 방법을 추측해갔다.

-그때 레퍼런스가 돼준 작품은 뭔가.

=영화에 들어간 뮤지컬적 요소는 <오즈의 마법사>(1939)를 기본으로 삼았다. <맨 오브 스틸>(2013)도 많이 참고했다. 사실 번개맨이 날아가는 장면 등 몇몇 장면은 그대로 베꼈다. (웃음) 히어로가 할 수 있는 멋있는 모습은 이미 할리우드영화가 다 해놨더라. 그 이상 잘 찍을 수가 없어 그걸 최대한 모방해보려고 했다.

-평소에도 TV에 나오는 번개맨을 봐왔던 건가.

=7살인 딸이 지난해 한창 번개맨에 빠져 있어서 나도 보게 됐다. 뮤지컬 <번개맨의 비밀>도 함께 보러 갔다. 그때마다 아이가 “번개맨은 날지도 못하고 번개 파워도 안 나온다”고 했다. ‘아, 영화로 만들어지면 정말 좋아하겠구나’ 싶었다. VIP 시사 때 볼 텐데 아이가 뭐라고 평할지…. (웃음)

-TV와 영화의 번개맨 캐릭터의 가장 큰 변화는 배우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CG 작업으로 하늘을 날 수 있게 됐다.

=EBS쪽과 긴밀한 협의가 있었다는 점을 먼저 밝히겠다. 사실 기존의 배우가 아닌 새 배우에게 번개맨을 맡기는 데 대한 우려가 있었다. 아이들이 익숙히 봐온 번개맨이 아니니까. 근데 배우들의 스케줄 문제도 있었고 변신을 꾀할 필요도 있었다. ‘파란색 슈트를 입고 번개 파워를 쏘는 유일무이한 캐릭터’가 번개맨이니까 그것만 놓치지 않고 가면 될 것 같았다. 물론 이런 건 있다. 히어로물에는 히어로의 세계관이 꼭 반영된다. 히어로가 어디서 태어났고, 콤플렉스가 뭔지 등등. 근데 아직 번개맨은 그런 게 없다. 번개 파워를 쓰는 초능력자임에도 불구하고 그간 공연장에서는 번개(가 나오는) 스틱 같은 도구를 썼던 것이다. 산업적 측면에서 보자면 스틱을 만들어서 상품화해 수익을 내면 더 좋겠지만 과감히 그런 건 빼자고 했다. 물론 아직도 번개맨만의 세계관이 완벽히 정립되진 못했다. 무책임한 말처럼 들릴 수 있지만, 그 문제는 <번개맨>의 흥행에 달린 것 같다. 영화가 잘 안 되면 기존에 검증된 EBS의 번개맨으로 가야겠지.

-주요 관객층인 아이들의 눈길을 끌 만한 요소가 무엇일지에 대한 고민도 있었을 거다.

=무엇보다 폭력이 배제된 히어로물을 만들고 싶었다. 때리고 부술 때 히어로가 짠 하고 나타나는 식이면 만들기는 참 쉽다. 근데 그렇게 되면 번개맨은 한나만 구하고 이유 없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사람이 되는 거다. 친절하게 이야기를 풀고 친숙한 캐릭터를 만들려고 했다. ‘잘난마왕’(송욱경)도 절대악이 아니라 친하게 지내다보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의미를 보여주는 캐릭터다. 그래도 아이들의 눈높이는 정말 모르겠다. 예산이 허락된다면 영화 제작 중간에 점검을 해보고 싶다. 동네 아이들을 불러다가 영화 보여주고 물어보면 아이들은 바로바로 피드백을 주니까.

-실제 촬영과 CG 작업의 균형은 어떻게 잡아나갔나.

=실제로 상당 부분을 직접 촬영했다. 그린 매트를 깔고 배우들이 와이어를 타고. 아무리 작은 크기로 들어가는 장면이라도 사람이 직접 동작을 할 때가 가장 자연스러운 법이다. 후반 공정에 7개월 정도 시간을 들였다. 72분의 러닝타임 동안 760여컷을 CG 작업으로 보여줬다.

-새로운 번개맨에는 <26년>의 마지막 장면에 신입 경찰로 잠깐 등장한 정현진을, 한나 역에는 f(x) 멤버인 루나를 캐스팅했다.

=<26년>은 정말 시간이 없어 쫓기듯 찍었다. 정현진도 촬영 마지막날 급하게 섭외했다. 모니터로 처음 봤는데 화면을 참 잘 받더라. 번개맨이 헤드기어를 써야 했는데 눈망울이 크고 서구적인 마스크의 정현진이 딱이었다. 루나는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해 조이랜드에서 뮤지컬 공연을 하는 한나에 적역이었다. 실제로도 천진난만하다.

-후반에 번개맨이 좌초되고 있는 ‘드림호’를 구하는 장면이 있다. 세월호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히어로로서의 번개맨 캐릭터를 강조하기 위해 다소 기능적으로 쓰인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영화 초반, 번개맨이 말한다.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을 지켜주는 나는 번개맨이다.” 그 말을 끝까지 지켜서 보여준 게 그 장면이다. 한국 사회의 총체적 부실이 낳은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는 건 자연스럽다. 또 주어진 예산과 시간 안에서 택할 수 있는 장면 구현이기도 했다. 히어로로서 뭔가 화끈하게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이 필요했다. 그 장면이라면 번개맨의 능력도 보여주고 의미하는 바도 있겠다 싶었다.

-혹시 <번개맨2>도 만드는 거 아닌가.

=기회가 되면 또 만들고 싶다. <번개맨>처럼 유쾌한 게 내 성향과도 맞는다. 가장 행복하게 작업한 것 같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내놓으려고 노력했다. 대박이 나서 떼돈을 벌고 싶은 욕심은 없다. 그저 애들 사이에서 “<번개맨> 재밌어!”라는 말이 나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어른들도 동심으로 돌아가본다고 생각하면 나름 즐길 만하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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