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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FF 37.5] “노는 마음으로 즐겁게 해보자!”
정지혜 사진 백종헌 2016-03-25

인디포럼 새 의장 맡은 박홍준 감독

단편 연출 2010 <5월의 봄> 2009 <소년 마부> 2007 <러너스 하이>

조감독 2014 <야간비행> 2012 <백야> <지난여름, 갑자기>

촬영 2007 <피크닉> <인사이드 코퍼레이션> <증발> 외

인디포럼이 9년 만에 새 의장을 뽑았다. 인디포럼 상임 작가인 박홍준 감독이다.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의장을 맡았던 이송희일 감독은 “책임감 강한 박 감독이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길. 그래서 인디포럼이 망하지 않고 명맥을 유지하길 바란다”며 애정의 말을 전했다. 독립영화계의 든든한 버팀목인 이송희일 의장의 뒤를 잇는 박홍준 감독의 어깨가 무거울 법도 했다.

“의장 제안을 받았을 땐 부담이 컸다. 이송희일 의장은 인디포럼의 ‘브레인’이 아닌가. 독립영화계에서 그의 무게감도 상당하고. 하지만 이송희일 의장에게만 짐을 떠안길 수 없었다. 올해부터는 상임 작가들이 1년씩 돌아가면서 의장을 맡기로 해 마음을 굳혔다.” 의장이 된 그가 믿는 구석은 인디포럼 작가회의 그 자체다. 인디포럼영화제에 작품을 상영한 경험이 있는 감독이나 평론가, 독립영화 PD가 자발적으로 참여해 운영해온 그 저력 말이다. “영화제 포스터, 트레일러 제작, 장소 섭외 등 매년 돌아가며 작가들이 역할 분담을 한다. 인디포럼의 시스템을 이해하고 소속감도 생기고. 누가 돈을 줘서 하는 것도 아니고 자율적으로 인디포럼을 만들어왔다.” 그러니 의장이 할 일은 “작가들이 아이디어를 낼 수 있도록 이송희일 의장이 그랬듯, ‘이런 건 어떠냐’고 먼저 운을 떼는 것, 그러기 위해 조금 더 공부해가는 것”뿐이라고 한다.

박홍준 감독의 이력은 특이하다. 법대 졸업 후 한때는 증권맨이었다. “증권사에 더 있다가는 그곳에 뿌리를 박겠더라. 반골 기질을 숨기며 사는 것도 못할 짓이었고. 더 늦기 전에 좋아하는 영화를 하고 싶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에 들어가 졸업작품인 <소년 마부>를 만들었고 2009년 인디포럼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됐다. “그때 인디포럼에 처음 가봤다. 뒤풀이에서 스스럼없이 영화를 비판하고 지지하는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좋았다. 작가회의 가입신청서도 그때 받았고. 막연히 영화 작업을 함께할 공동체가 있었으면 하던 차였다.” 새 둥지가 돼준 인디포럼에서 그는 이송희일, 윤성호, 양해훈, 김곡, 임철민 등 동지들을 만났고 그들에게 자극받았다. “인디포럼은 장르 구분을 뛰어넘어 자기 이야기를 자기식으로 푸는 창작자를 지지하는 곳”임을 몸으로 익혔다.

정부 지원금이 끊기고 해마다 빚이 늘어 사무국 공간도 마련하지 못하고 정기 상영회도 열지 못하고 있다. “자생력”을 키워야 하는 난제 앞에서 새 의장의 고민도 깊다. 하지만 그의 모토, “노는 마음으로 즐겁게 해보자!”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면서 영화제 개최뿐 아니라 “작가회의 구성원간의 교류, 시민 교육”에 좀더 무게를 싣고 싶다는 바람이다.

‘血 끓는 이팔청춘’

B급 정서 물씬 나는 2013년 인디포럼 공식 포스터. 박홍준 감독이 기획•제작하고 (가운데 앉은 인물로) 출연까지 했다. 정부의 영화제 지원이 끊긴 뒤 인디포럼에 재정 위기가 닥쳤지만 그것에 굴할쏘냐. ‘야! 血 끓는 이팔청춘’이라는 포스터의 문구가 그때나 지금이나 박홍준 감독의 마음이다. 또 그는 인디포럼 후원회원 가입신청서를 갖고 다닌다. “자생력을 키우는 노력을 사무국에만 떠넘길 수 없다. 작가회의 소속 감독, 평론가, 스탭들이 인디포럼의 주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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