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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 x cross] 타인을 경유한 죄의식의 정서 - 시인 이이체 인터뷰
이예지 사진 오계옥 2016-05-02

두 번째 시집 <인간이 버린 사랑> 펴낸 시인 이이체

‘당신이 나를 부르는데 왜 내 이름이 아닌지 궁금해졌다.’ 이이체 시인의 시 <고아>의 전문이다. 나와 내 이름 사이의 간극, 당신이 지명하는 나와 나의 간극에 매번 미끄러지면서도 의미에 도달하기 위해 부단히 시를 쓰는 시인의 이름은 이체(異體), ‘다른 몸’이라는 뜻이다. “시는 그것을 쓴 이의 외전이자 이체이다”라는 강정 시인의 말처럼 시인은 자신의 외전들을 끊임없이 탐색하고 발행해내는 중이다. 2008년 스무살에 현대시로 문단에 데뷔한 이이체 시인은 첫 시집 <죽은 눈을 위한 송가>를 발표하며 문단의 새로운 세대로 자리매김했고, 이번에는 더 깊이 참혹해진 두 번째 시집 <인간이 버린 사랑>을 발표했다. 이십대의 한 시기를 거치며 ‘마음의 죽음에서/ 마음의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물-집> 중) 상처입고 농후해진 언어들을 펼쳐낸 이이체 시인을 만났다.

-2008년, 스무살에 현대시로 등단했다. 어릴 적부터 시를 좋아했나.

=어렸을 땐 문학보다 인문사회과학 전반에 관심이 있었고, 구체적으론 현실 정치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다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최한 공모전에서 강의석씨가 미션스쿨의 예배를 거부한 사건과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등을 연계해 종교의 사회현상을 비평한 글로 당선돼 문학캠프를 가게 됐다. 거기서 시 쓰는 친구들을 만나 현장에서의 시 쓰기를 접하고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했는데, 학내의 불합리한 커뮤니케이션에 반발심이 들더라. 도피처처럼 시에 마음을 주기 시작해 2007년 초부터 꾸준히 습작을 했다. 시 쓰기에 전념하면서 학점이 잘 안 나오자 아버지가 반대를 하셨고, 한 학기 쉬면서 공모전에 응모해보고 안 되면 시를 포기하겠다고 딜을 했다. 그런데 현대시에 덜컥 당선이 된 거다. (웃음) 운이 좋았다.

-시집을 1천권씩 읽으며 습작을 해왔다고 알고 있는데, 운보다는 그런 노력의 결과가 아니었을까.

=시집과 소설, 평론집을 읽고 기록하는 독서기록부를 쭉 써왔는데, 시집만 1천권을 넘겼더라. 하지만 물리적으로 읽은 거다. 문예창작과에 진학하기 위해 입시 준비로서 창작을 해왔던 친구들에 비해 늦게 출발했다는 후발주자로서의 열등감이 있어 양적인 것부터 충당하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과식해서 급체를 한 것 같다. (웃음) 등단 후 나만의 발성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에 다시 찬찬히 읽어보니 또 달리 보이더라.

-구조적이거나 전위적인 시를 쓰는 또래 젊은 시인들에 비해 정서를 서정적으로 풀어내는 편이다.

=글에 있어서 고전적인 취향이다. 이성복 시인의 시는 첫사랑 같고 아버지 같은 시고, 조정권, 송재학 시인의 시도 가까운 혈족 같은 시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취향도 있지만 일상에 발딛지 않은 시를 쓰고 싶진 않다. 함성호, 강정, 조연호 시인이 쓰는 시들이 일상에 발딛고 있는 추상들이라고 생각하고, 나도 그런 시 쓰기를 지향한다. 그러나 서정시와 전위시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엔 반대한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시가 서정시에서 발견될 뿐이고, 서정의 범위를 보수적으로 국한하는 건 옳지 않다고 본다. 내 시가 서정의 범위에 들어가는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지만, 나는 새로움에 대해 큰 관심은 없다. 새로움이라는 게 시에 있어서 미학적인 요소를 결정짓는 요인은 아니니까.

-포털사이트에 ‘이이체’를 검색하면 시 <연인>이 연관 검색어로 뜬다. 청첩장 문구로도 쓰인다더라. 그만큼 대중적으로 읽히는 시를 써냈다는 뜻일 텐데.

=많이들 쓰신다. 아이돌 그룹의 멤버 결혼식 청첩장에서도 썼다고 하더라. (웃음) 좋아해주셔서 감사하지만, 원래 예쁜 시는 아니라 어안이 벙벙한 면도 있다. 마지막 구절 ‘예쁜 예감이 들었다/ 우리는 언제나 손을 잡고 있게 될 것이다’를 많이 인용하던데, 윗구절들은 연애의 참혹함을 표현하기도 한다. 예쁜 단면들만 봐주시는 것 같다. (웃음) 사실 대중에게 와닿는 시를 쓰는 건 내게 중요하지 않다. 많이 읽어주면 감사하긴 하지만 예술의 언어는 근본적으로 개인의 언어이고, 소통은 예술작품 이후에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보단 예술에 대한 태도가 중요하다.

-이번에 나온 시집 <인간이 버린 사랑>에서는 자기혐오적 시선과 죄의식이 전보다 강하게 느껴진다. <미래로부터의 고아>에선 ‘괴물의 초상과 대칭되는 나체’라는 표현이 등장하고, <푸른 손의 처녀들>에선 ‘나는 직업이 죄인이다’라고 토로한다.

=이 시집의 시들이 갖고 있는 주요 정서가 죄의식이다. 첫 시집에서의 자기혐오가 방어심리에서의 자기혐오였다면, 이번 시집에는 나에 대한 혐오를 넘어서서 타인을 방문하고 경유함으로써 또 다른 자기혐오, 죄의식을 발견하게 되는 거다. 타인을 탐색하고, 타인 안에서의 나, 나의 외전을 탐색하는 셈이다. ‘괴물’은 타인마저 잡아먹어버리는 포식성을 갖춘 존재다. 내 안에 의식하지 못했던 타인에 대한 폭력이 내재돼 있다는 깨달음을 괴물의 초상으로서 표현했다. 영화 <내부자들>을 보니 이강희(백윤식)의 말 중 “저들은 괴물이야. 물리고 뜯기고 싸울수록 더 거대한 괴물이 된다고”라는 대사와 비슷한 표현이 있어 삭제하기도 했다. 고통을 견디는 체력이 약해져서 이번 시집에서 정서적 토로를 더 세게 하지 않았나 싶은데(웃음) 쓰기는 이번 시집을 더 편하게 썼다. 타인을 경유한 나를 바라보는 과정이 수고롭긴 해도, 그 과정에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을 발견할 땐 의식하지 못했던 편안함을 주더라.

-죄의식뿐 아니라 죽음, 피, 생명 등 원초적인 테마들이 반복되고, 신과 인간 같은 추상적 개념들이 자주 등장한다.

=많이 쓰는 시어들이다. 신이라고 하면 보통 우주적이고 거대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난 범재신론의 차원에서 모든 걸 신이라고 생각한다. 신체도 그렇다. 입안의 것들을 보통 몸속이라고 얘기하지만, 나는 그것이 입부터 항문까지 뚫려 있는 바깥이라고 생각한다. 몸 안에 몸 밖을 품고 다니는 거다. 내 언어 안에서 생명, 죽음 같은 것들은 그런 차원에서 관념적이기보단 일상적인 것들이다.

-첫 번째 시집에 실린 시 <사라지는 포옹>에서는 “상처가 없는데 아프다”라는 <릴리 슈슈의 모든 것>(2001)의 대사를 차용하고, <낯선 애무>에서는 <길>(1957)의 캐릭터 ‘젤소미나’를 불러내기도 한다.

=젤소미나는 애무와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다. 그에게 맞는 애무의 형식을 찾고 싶다는 마음으로 쓴 시다. 영화의 어떤 장면이 아름다워서 그 장면을 넘어서고 싶다는 욕망으로 글을 쓰기도 한다.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이 롱테이크로 담아내는 장대한 풍경과 레오스 카락스의 <나쁜 피>를 비롯한 초기 3부작의 장면들은 늘 머릿속에 남아 있다.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미, 추, 숭고를 포괄하는 아름다움도 사랑하고,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과 이와이 슌지 감독의 초기작도 좋아한다.

-한국영화에선 어떤 감독을 좋아하나. 당신의 시가 닮길 바라는 영화가 있다면.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현실보다 현실 같아 징그럽고, 김기덕 영화는 상징성이 투박하고 거칠어서 오히려 귀엽다. (웃음) 사람들은 비주얼적으로만 생각하다보니 김기덕이 우악스럽다고 하는데, 사실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너무 능수능란해서 징그럽고 우악스럽달까. 현실이 아닌데 현실을 넘어서버리니까. 홍상수 감독 작품의 미적 우스꽝스러움은 굉장히 세련됐고 김기덕 감독 작품은 다소 촌스러운데, 난 세련된 쪽은 아니기 때문에 그 사이를 배회한다. 세련됨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자신 있게 배회할 수 있다. (웃음) 내 취향은 박찬욱 감독이다. 그는 세련됨과 촌스러움을 의식하지 않는다. 영화의 미적인 어떤 지점을 쟁취하기 위해 전투적인 태도를 보이진 않지만, 그럼에도 끝내 전투해내 쟁취하고 마는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런 태도의 시 쓰기를 하고 있기에 닮고 싶은 감독이다. 홍상수 감독은 전투적인 태도를 조롱하기도 하는데, 박찬욱 감독은 ‘하면 하는 거지’ 하는 느낌이랄까. (웃음)

-황인찬 시인에게도 했던 질문이다. 이 시대에 시를 쓴다는 건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예술의 본질은 태도와 표현이다. 요즘 대중이 시를 많이 읽냐 안 읽냐가 아니라, 내가 하냐 안 하냐가 중요하고 본질적인 문제다. 읽히는 건 부차적인 문제다. 대중은 시가 난해하다고들 하는데, 그건 상대적인 거다. 문명이 복잡다단해지는 만큼 감정과 사유들도 다양해지는 거고, 좋고 나쁨을 자신의 가독성을 기준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 난 쉬운 시를 쓰지만, 난해하다고들 하는 시들은 양적 소통이 아니라 질적 소통을 추구하는 것일 터다. 독서는 영화나 음악처럼 즉물적으로 다가오는 게 아니라 사유과정을 거치는 것이기에 표면적 인상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된다. 작품을 읽고 취향이 아니라고 하기 전에, 이 작품이 어떤 특징과 장점이 있는지를 파악해보는 게 좋은 독서 태도가 아닐까 싶다. 나 역시 책 읽기를 통해 취향이 형성되기 위해선 수많은 노력과 습관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걸 배웠기 때문에, 일방적 매도를 범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참혹한 사랑의 이면, <인간이 버린 사랑>

2008년 현대시로 등단한 이이체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다. 문학과지성사에서 2016년 3월26일 출간되었다. 첫 시집 <죽은 눈을 위한 송가>에서 출향(出鄕)과 이별의 정서를 기반으로 헐벗고 야윈 것들을 애달프게 어루만지던 시인은 이번 시집에선 참혹한 사랑의 이면에 깊이 천착하며, 타자를 경유하는 자아를 자기파괴적인 시선으로 응시한다. 강정 시인은 이하와 같이 해설했다. “시인은 참혹할지언정 순연함을 잃지 않는다. 오로지 사랑 자체에만 몰두해 사랑의 비열하고 모순된 알몸과 마주치고, 그것으로서 도저히 씌어지지도, 전달될 수도 없는 사랑의 말들을 ‘투명한 혼란’ 속으로 몰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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