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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여성 참정권 운동 이끈 영국 여성들의 이야기 <서프러제트>
장영엽 2016-06-29

시대극 속 여성들이 이토록 동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던가? 6월2 3일 개봉한 <서프러제트>는 ‘액션’ 사극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유물 같은 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영국 여성들이 돌멩이를 집어던지고, 아무도 없는 집에 불을 지른다. 그녀들은 어떤 연유로 ‘투사’가 되었을까? 20세기 초 영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여성 참정권 운동의 한복판에 그 답이 있다. 영화 이야기와 더불어 더 자세히 알고 보면 좋을 당시의 사연들을 함께 소개한다.

1912년 3월1일 금요일, 늦은 오후의 런던. 영국 총리 관저가 있던 다우닝가 10번지에 굉음이 울려퍼졌다. 여성사회 정치연합➊ 회원들이 영국 총리 허버트 헨리 애스퀴스가 머물던 관저의 유리창을 향해 돌을 던진 것이다. 굉음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피카디리와 헤이마켓, 리젠트와 스트랜드 스트리트, 옥스퍼드 서커스와 본드 스트리트. 다시 말해 런던의 번화가로 불리던 거의 모든 지역의 유리창들이 여성들이 던진 돌에 맞아 산산조각이 났다. 시위는 그로부터 사흘 뒤인 3월4일에도 계속됐다. 100여명의 여성들이 런던 나이츠 브리지의 거리를 각자 따로 걸으면서 눈에 보이는 창문을 향해 닥치는 대로 돌을 던졌고, 런던 곳곳의 경찰서는 유리창을 파손시킨 혐의로 잡혀들어온 여성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것은 영화가 아니라 실화다. 영국 여성 참정권 운동의 역사를 기록한 후대의 사가들에게, 1912년은 중요한 분기점으로 기억된다. 거리에서 연설을 하거나 의원들에게 관련 법안을 호소하는 등 평화적인 방식으로 여성 참정권 운동을 이끌어왔던 여성들(그녀들은 ‘서프러제트’라고 불렸다)이 손에 돌멩이를 집어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런던 각지의 유리창을 박살냈고, 우체통과 저택에 불을 질렀다. 이른바 ‘전투파’라 불리는 여성 운동가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들은 왜 이처럼 과격한 투쟁 방식을 선택했을까? 여성사회정치연합을 설립한 당대의 대표적인 여성 참정권 운동가이자 ‘전투파’의 행동을 주도한 에멀린 팽크허스트➋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돌을 사용하려는 것은 감정적인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돌멩이야말로 가장 쉽고 직접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중략) 우리는 몸을 다치면서 싸울 때보다 유리창을 깨면서 싸울 때 더 많은 진보를 이뤄냈습니다.” 팽크 허스트는 평화적인 시위를 진행하는 동안 여성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던 대중과 공직자, 정치인들이 재산권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을 느끼자 비로소 여성 운동가들의 행보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리고 남성들이 행해왔던 혁명의 방식대로, 한손에는 돌멩이, 한손에는 화약을 들고 물리적인 투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쟁취하려면 행동해야 한다

영화 <서프러제트>는 에멀린 팽크허스트와 그녀가 이끌던 여성사회정치연합이 전투적인 노선을 걷기 시작한 1912년의 영국이 배경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중심이 되는 인물은 에멀린 팽크허스트도 아니고 ‘팽크스’라 불리던 그녀의 조직원들도 아닌 한 평범한 여성 노동자다. 그녀의 이름은 모드 와츠(캐리 멀리건). 모드는 조지라는 소년의 엄마이자 소니(벤 위쇼)라는 남자의 아내다. 세탁공장에서 일하며 고된 육체노동과 남성 사장의 성희롱적인 발언을 감내해야 하는 그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가족들을 보며 살아갈 힘을 얻는 여자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어느 날 오후의 퇴근길, 모드는 한 가게 앞에 멈춰 서서 아름답게 장식된 쇼윈도를 넋을 잃고 바라본다. 그러고는 유모차에서 한 무더기의 돌멩이를 꺼낸 여자가 그 쇼윈도를 엉망진창으로 부수는 걸 목격한다. 그날 이후, 모드의 삶은 이전과 같을 수 없게 된다.

<서프러제트>는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 <여성의 직업>에 등장할 법한 ‘집안의 천사’➌가 어떻게 여성 참정권 운동의 한복판으로 투신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자신의 마음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기보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로 살아오는 데 익숙했던 모드는 같은 세탁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 바이올렛(쇼윈도 유리창을 깼던 바로 그 여자다)의 손에 이끌려 여성사회정치연합과 에멀린 팽크허스트(메릴 스트립)의 존재를 알게 된다. 여성 운동가들이 은밀하게 모이는 이디스➍(헬레나 본햄 카터)의 약국은 집과 일터만 오가던 모드에게 별세계다. “유리창을 깨는 건 범죄”라고 생각하던 모드에게 그녀들은 “법도 지킬 가치가 있어야 법”이라고 말하며 여성들이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정치에 개입할 수 있는 투표권이 필요하고, 투표할 권리를 쟁취하려면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점을 일러준다. 여성 참정권에 대한 내용이 포함된 선거법 개정안이 부결되던 날, 시위에 나선 여성들이 경찰과 기마부대에 무참히 짓밟히는 모습을 목격한 모드는 자신이 살고 있던 세계의 부조리를 온몸으로 실감하고 행동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노동계급 여성이 겪는 투쟁의 여정

캐리 멀리건이 연기하는 모드 와츠➎는 <서프러제트>의 연출을 맡은 여성 감독 사라 가브론과 여성 각본가 아비 모건이 처음부터 염두에 둔 주인공은 아니었다. 오히려 영화의 시작 단계에서 중심에 놓인 인물은 여성사회정치연합의 새로운 회원을 모집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여성들을 돕는 역할을 하는 상류층 여성 운동가 앨리스 호튼(영화에서는 로몰라 가레이가 연기한다)이었다. 하지만 제작진은 여성 참정권 운동에 있어 중요한 목소리가 배제 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고 한다. “<서프러제트>를 쓰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불평등을 겪는 데서 오는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각본의 초고는 앨리스 호튼이라는 상류 계층의 여성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이 캐릭터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많았다. 하지만 이 운동에 참여했던 노동계급 여성들이 배제된 느낌이었다. 그때 사라 가브론 감독이 제안했다. ‘더 흥미로운 캐릭터는 모드 와츠인 것 같은데, 우리 다시 시작하는 게 어때요?’라고.”(각본가 아비모건)

영화의 중심인물을 상류층에서 중산층 노동계급 여성으로 바꾸면서, <서프러제트>의 서사도 한층 복합적인 결을 가지게 됐다. 가사노동과 경제적 활동을 병행해야만 했던 20세기 초 영국의 노동계급 여성이야말로 사회적으로 가장 궁지에 몰린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여성 참정권 운동을 위한 각종 집회와 모임에 나가기 시작한 모드를 보며 남편 소니는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다리가 찢어진다”고 말한다. 그의 말은 곧 섬뜩한 현실로 모드에게 다가온다. 함께 시위에 참여해 감옥에 갇힌 뒤에도 상류층 여성 운동가들은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다. 이디스처럼 여성 운동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진보적인 남편을 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먹고살기에도 빠듯한 데다 여성은 가정에 충실해야 한다는 빅토리아 시대의 미덕을 여전히 고수하며 살아가는 중산층 서민들에 둘러싸인 모드의 삶에는 점차 균열이 일어난다. 자상했던 남편은 등을 돌리고, 친절했던 이웃은 야유를 퍼붓는다. 무엇보다 모드를 힘들게 하는 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거라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녀의 정신적 조력자로 자리잡은 팽크허스트의 존재는 너무도 멀게 느껴지고(영화에서 모드와 팽크허스트는 단 한번 마주칠 뿐이다), 동료들은 하나둘 떠나간다. 모드의 곁에 남는 건 오로지 현실적인 고통뿐이다. 자신의 삶을 구성하던 모든 것들을 버리고 당장 손에 잡히지 않는 고결한 이상을 추구하기로 마음먹은 이가 겪어야 할 다양한 유형의 난관을 <서프러제트>는 모드라는 이름을 가진 한 여성 노동자의 여정을 통해 보여준다.

의지의 발소리를 기억하라

그러나 “그녀는 멜로드라마적인 감상을 허용하지 않았다”는 주연배우 캐리 멀리건의 말처럼, <서프러제트>의 감독 사라 가브론은 비련의 여인들의 절절한 사연을 그려내는 데 초점을 맞추기보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20세기 초 영국 사회의 시대적 분위기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담아내려 한다. 경제력으로, 무력으로, 말로 당대 여성들을 제압하는 영화 속 대다수의 남성들은 완전한 악인이라기보다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그중에는 여성의 권리가 지금보다 신장되어야 한다고 믿는 이들도 있지만, 그들 역시 자신의 아내가 행동에 나서려 하면 왜 하필 당신이어야 하냐고 따져묻는다. 혁명에는 희생이 필요하지만, 그 희생의 주체가 자신의 가족이 되기를 바라지는 않는 것이다.

행동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주어질 지금과 다르지 않은 삶이 있고, 행동에 나서면 무언가 바뀔 수는 있겠지만 그 결과를 확신할 수 없는 길이 있다. 당신은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아버지뻘의 남자와 결혼해 영국으로 이주한 방글라데시 여성이 새로운 사랑에 눈뜨는 과정을 조명한 전작 <브릭 레인>(2007)이 그랬듯, 사라 가브론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한 여성의 마음속 격랑을 공들여 묘사하되 그녀가 마주하게 되는 인생의 복잡다단한 선택지들을 보여주는 데에도 소홀하지 않다. 뜻을 함께하는 동지들이 있다 하더라도, 선택의 순간 우리 모두는 혼자다. 영화에서 모드가 읽게 되는 “나는 혼자다. 나는 철저하게 혼자다”라는 책 <꿈>➏의 구절은 그렇게 모드의 마음과 연결된다. 여기에 이 영화의 울림이 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스스로의 희생을 감내하며 역사를 바꾸어나갔던 수천, 수백만명의 발소리. <서프러제트>는 그 의지의 발소리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는 영화다. 페미니즘이 전지구적인 이슈로 부상한 2016년, 이 발소리에 귀기울여야 할 이유는 이미 충분하지 않은가.

➊여성사회정치연합

1903년 여성 운동가 에멀린 팽크허스트와 그녀의 딸들(크리스타벨, 실비아, 아델라)이 설립한 단체. ‘말보다는 행동을’이 슬로건이었던 이 단체는 기존의 여성 참정권 운동이 평화적이고 소극적으로 이뤄져 제대로 성과를 거둘 수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여론이 주목할 만한 적극적인 행동주의를 내세웠다.

➋에멀린 팽크허스트

급진적인 여성 참정권 운동을 벌인 20세기 초 영국의 대표적인 여성 운동가. 여러 해 동안 비폭력 투쟁을 전개하며 노동당, 자유당 등 남성 의원들이 중심이 된 기존 정당과의 연합이 여성 참정권 운동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발견한 그녀는 1912년부터 전투적인 노선을 걷기 시작한다. 팽크허스트가 이끌던 여성사회정치연합은 다른 사회적 개혁으로 눈을 돌리지 않고 오로지 정치적으로 남성과 평등함을 이루자는 목적에만 힘을 쏟았다. 여성이 투표권을 획득하기까지 회원들은 어떤 정당을 지지하거나, 다른 의제로 눈을 돌려서는 안 된다는 그녀의 신조는 독재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팽크허스트의 자서전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➌집안의 천사

20세기 초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가 집필한 에세이 <여성의 직업>에 등장하는 표현. ‘집안의 천사’란 여성이 가정에 충실해야 하며 순종적이어야 한다는 빅토리아 시대의 미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울프는 여성 작가가 해결해야 할 절체절명의 과제가 ‘집안의 천사’를 죽이는 일이라고 말했다.

➍이디스 엘린

이디스 가루드라는 20세기 초 영국 웨일스의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만든 가상의 인물. 이디스는 스스로를 보호하라는 의미에서 여성사회 정치연합 회원들에게 주짓수를 가르치고, ‘더 보디가드’라는 그룹을 만들어 에멀린 팽크허스트를 보호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흥미로운 점은 이디스를 연기하는 헬레나 본햄 카터가 여성참정권의 극렬한 반대론자였던 애스퀴스 총리의 증손녀라는 점이다.

➎모드 와츠

캐리 멀리건은 이 가상의 인물을 연기하며 한나 미첼의 자서전 <더 하드 웨이 업>을 참고했다고 말했다. 한나 미첼은 20세기 초 영국 여성 노동 계급의 여성으로, 학교 교육이라고는 2주간 받은 것이 전부이지만 여성 참정권 운동에 참여하며 여성의 현실에 대해 뒤늦게 자각하게 된 경험을 자신의 자서전에서 밝히고 있다.

➏꿈

<서프러제트>의 감독 사라 가브론은 캐리 멀리건의 추천으로 20세기 남아프리카 작가 올리브 슈레이너의 글 ‘사막의 세 꿈들’(Three Dreams in a Desert)을 읽었다고 한다. 이 글의 우화적인 느낌이 마음에 들었던 영화의 제작진은 가장 중요한 영화의 후반부 장면에서 모드가 이 글을 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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