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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 x cross] “축구엔 정답이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다” – 축구 전문 매체 <풋볼리스트> 대표 서형욱
김성훈 사진 최성열 2016-07-07

호빵맨처럼 빵빵한 양볼이 쏙 들어갔다. 서형욱 MBC 해설위원의 다이어트 비결은 지구 반대편 프랑스에서 열리고 있는 유로2016 중계(?)이다. “새벽 중계를 하다보니 술을 못 마셨고, 낮에 자다보니 하루 한끼밖에 먹지 못해 4.8kg 정도 빠졌다. 조별 리그가 끝난 뒤 16강전에 돌입하기 전에 술을 좀 마셨더니 다시 살이 쪘지만 말이다. (웃음)” 열대야가 오기도 전에 많은 축구팬들을 불면의 밤으로 이끈 유로2016이 6월29일 현재 8강전을 앞두고 있다. 유럽 축구에 관한 한 국내에서 가장 해박하고 밀도 높은 해설을 선보이고 있는 MBC 서형욱 해설위원을 지난 6월 18일과 24일 각각 두 차례 만나 유로2016에 대해 물었다. 독일 축구 전문지 <키커>, 프랑스 축구 전문지 <레퀴프>, 스페인 축구 전문지 <마르카> 같은 축구 전문 매체 <풋볼리스트>를 운영하고 있는 그로부터 축구 매체를 운영하면서 안고 있는 고민들도 함께 들었다.

-중계 때문에 밤낮이 뒤바뀌었겠다.

=지난 대회 때는 현지에서 중계를 했던 까닭에 현지 시각에 맞춰 일할 수 있었다. 이번 대회는 새벽에 중계하고, 낮에는 회사에서 일을 해야 해서 아무래도 체력이 예전만 같진 않다. 중계 초반에 힘들었던 것도 그래서인데, 지금은 유럽 시차에 완전히 적응돼 문제가 없다.

-중계가 있는 날, 일과는 어떻게 되나.

=조별 리그가 대부분 새벽 1시(한국 시각)에 시합을 배정받았다. 이르면 오전 10시나 11시, 늦으면 오후 2시나 3시쯤 일어나 회사에 나가 일을 하고, 방송을 준비한 뒤 밤 11시까지 방송국에 가서 메이크업을 받는다. 새벽 3시에 중계가 끝나 집에 와서 분장을 지우고 정리하면 새벽 6시쯤 되는데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칼럼을 마감할 때도, 안 할 때도 있는데 아무래도 새벽에 글쓰기가 쉽지 않다. 16강전부터는 새벽 4시 시합도 맡게 됐다.

-16강 토너먼트가 진행되고 있다. 조별 리그 결과는 어땠나.

=올라갈 팀은 거의 다 올라갔기 때문에 큰 이변은 없었다. 본선 진출국 수가 16개팀에서 24개팀으로 늘어나면서 조별 리그를 통과하는 게 지난 대회에 비해 수월해졌다. 8개팀만 탈락하니까.

-조별 리그 동안 지켜본 팀 중 어느 팀이 가장 인상적이었나.

=헝가리. 이번 대회가 지루하다는 얘기가 많은데 동의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강팀이 주춤거리고 있는 반면, 약체로 평가받았던 팀들이 선전하면서 실력 차이가 줄어들었다. 스페인은 확실히 전성기를 지났고, 독일은 세대교체하고 있는 데다가 이탈리아는 경기력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과거에 비하면 무게감이 확연히 떨어진다. 헝가리, 웨일스, 북아일랜드 같은 약팀들은 스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두줄 수비에 영감을 받은 수비 전술을 효과적으로 구사했다.

-나 역시 헝가리의 선전은 의외였다. 헝가리의 어떤 모습이 인상적이었나.

=경력으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특출한 선수가 한명도 없는 팀인데도 그 어떤 팀보다 집중력이 돋보였다. 북아일랜드나 아이슬란드가 한대도 맞지 않아야겠다는 수비 축구를 구사했다면, 헝가리는 반드시 한대는 때리겠다는 마음을 가진 채 (웃음) 상대팀을 기다리는 수비 축구를 보여줬다.

-본선 진출팀 수가 늘어난 만큼 대회 시작 전에 준비할 것도 많았겠다.

=월드컵 때 32개팀을 준비한 경험이 많기 때문에 꼭 그렇지만도 않다. 유로가 재미있는 건 좁은 대륙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나라들이 저마다 사용하는 언어도, 문화도, 역사도 다르다는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각 국가들의 배경을 공부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스위스와 알바니아가 맞붙었을때 알바니아 축구팬들이 스위스 국가가 울려퍼질 때 야유를 보낸 이유를 알바니아 이민자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는 설명하기 어렵지 않나(스위스 선수 6명이 알바니아 출신이다. 스위스에는 코소보 전쟁 또는 세르비아인들의 폭력을 피해 이주한 알바니아 사람들이 많다.-편집자). 그런데 <씨네21>은 왜 나를 인터뷰하기로 했나. 외모로 치면 안정환 해설위원이 훨씬 나은데. (웃음)

-아무래도 서 위원의 해설이 팀마다 가진 배경이나 역사를 재미있게 전달하니까.

=안정환 위원의 해설은 내용이 좋고 예측을 잘한다. 선수 출신인 까닭에 그가 하는 말에 공신력이 있다. 한 해설위원이 호날두가 한 어떤 플레이를 두고 ‘아무나 할 수 없는 플레이’라고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저건 호날두만 하는 건 아니잖아’라고 반문할 수 있지 않나. 하지만 안정환 해설위원이 그렇게 얘기하면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웃음)

-가령 잉글랜드와 웨일스 시합에서 잉글랜드 골키퍼 조 하트가 웨일스 에이스인 개러스 베일이 찬 프리킥을 막지 못한 것을 두고 MBC 이주헌 해설위원이 ‘저건 막아야 했다’고 얘기하지 않았나. 많은 축구팬들이 이주헌 해설위원의 말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반발했는데, 해설위원이라면 그 정도 의견을 충분히 낼 수 있지 않나.

=안정환 같은 선수 출신 해설위원이 그렇게 말했다면 그 정도로 반발했을까. 정작 현지 언론인 에서 옌스 레만 해설자가 하트가 수비 벽을 세운 게 실수였다고 지적했다. 그 얘기 역시 실제로 벌어지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조 하트가 벽을 안 세웠더라면 막았을지, 못막았을지 알 수 없다.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축구 평론가이고, 축구도 정치처럼 정답이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특정 팀이나 선수, 벌어진 상황에 대해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게 해설위원의 역할인 것 같다. 물론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팬들까지 다 끌고 갈 순 없지만 말이다.

-지난 2010년 8월20일부터 지금까지 축구 전문 웹진 <풋볼리스트>도 이끌고 있는데.

=독일 축구 전문지 <키커>처럼 축구만 다루는 주간지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기존 언론이 축구 관련 이슈를 만들어내는 방식에 불만도 있었다. 하지만 잡지는 비용이 많은 들어가는 대신 수익성이 낮은 사업이다. 그래서 웹진을 설립해 축구 관련 콘텐츠들을 만들게 됐다.

-축구 시합이 끝나는 동시에 리뷰가 쏟아지고, 글 형식이 단조로운 스트레이트 기사가 대부분인 한국 축구 언론의 분위기에서 <풋볼리스트>는 <키커>나 <레퀴프>처럼 다양한 형식의 기사를 선보이고 있다.

=축구를 전문적으로 취재해야 한다면 기자가 최소한 K리그팀 수만큼 있어야 한다. 10명이 넘는 축구기자로 구성된 우리는 축구에 대해 한발 더 들어가는 것을 지향한다. 기존 매체들이 시합이 끝나자마자 스트레이트 리뷰를 내보내는 상황에서 우리까지 따라할 필요는 없으니까. 경기가 끝나고 양팀 감독과 선수를 인터뷰한 뒤 시합 성격에 맞는 글 형식을 고민해 그 다음 날 심층적으로 분석한 기사를 내놓는 게 중요하다.

-이번 대회의 경우 <씨네21>의 20자평처럼 시합마다 별점을 매긴 리뷰를 선보이고 있는 것도 재미있더라.

=축구 리뷰를 보는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다. 하나는 시합을 봤는데 자신의 생각과 같은지 확인하는 사람들, 또 하나는 시합을 보지 못해 어떤 경기였는지 궁금해서 읽는 사람들. 결국 모든 기사의 컨셉은 독자 위주로 생각해야 한다.

-매체 운영만으로는 수익을 내기 쉽지 않다보니 고민이 많을 것 같다. <과르디올라 컨피덴셜> <카를로 안첼로티-카를레토 리더십> 같은 축구 서적도 출판하고, ‘주간 서형욱’ 같은 팟캐스트 라디오도 운영 하고 있는 데다가 얼마 전에는 ‘<풋볼리스트>와 함께하는 축구 여행’ 같은 여행 사업도 시작했는데.

=주변에서 뭐 먹고사냐고 물어온다. 축구만으로는 답이 안 나오거든. 계획성이 있는 사람이 아닌 까닭에 예산이나 아이템을 차근차근 짜서 진행하는 건 아니고, 생각날 때마다 무언가를 추진한다. 우리 같은 작은 매체는 예산이 넉넉지 않은 까닭에 유로2016에 기자를 보내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기자를 출장보내는 건 축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매체라면 모든 대회를 챙길 순 없어 도, 월드컵이나 유로 같은 메이저 대회는 반드시 취재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여러 사업들을 시도한다고 해서 회사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건 절대 아니다. 그랬던 적이 한번도 없었고. 다만, 우리가 가진 노하우를 최대한 활용하면 회사가 적어도 망하지는 않겠다 싶은 거지.

-축구 칼럼 ‘서형욱의 뷰티풀게임’도 오랫동안 연재하고 있다. 바쁠 텐데 글쓰는 게 힘들진 않나.

=힘드니까 안 쓰고 싶다. (웃음) 하지만 글을 써야만 글쟁이로서 폼이 유지된다고 생각하고, 글을 써야 축구에 대한 더 많은 것을 공부할 수 있다. 물론 영상으로 기록되긴 하지만, 축구 해설은 휘발성이 강한 성격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캐스터, 제작진과 함께 만드는 공동 작업이기도 하고. 반면 칼럼 연재는 온전히 혼자서 하는 일이다. 마감은 싫지만 글을 쓰는 건 좋아하기 때문에 칼럼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6월28일 현재까지 지켜본 팀 중에서 누가 우승할 것 같나.

=이탈리아.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이탈리아 특유의 메이저 대회 우승 DNA는 이번에도 놀랍기만 하다. 키엘리니, 보누치, 바르잘리 등 유벤투스 선수들로 구성된 수비는 견고했고, 공격 과정에서 보여준 집중력은 위력적이었다. 자신들의 장점을 강화하는 동시에 상대의 강점을 무력화시키는 대응 능력이 이탈리아를 더욱 돋보이게 한 것 같다.

유로2016 F조 예선 헝가리 대 포르투갈, 16강전 독일 대 슬로바키아

믿고 보는 그의 해설이지만, 그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서형욱 해설위원의 중계방송은 F조 예선 헝가리 대 포르투갈 시합과 16강전 독일 대 슬로바키아 시합을 꼽을 만하다. 이번 대회에서 가 장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던 헝가리는 호날두가 있는 포르투갈과 3골씩 주고받았다. 헝가리를 두고 서 해설위원은 “마자르족의 후예답게 헝가리는 자신이 가진 한도 안에서 호탕하게 돈을 쓰는 몰락한 부잣집 아들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축구는 독일이 우승하는 스포츠라는 정설(?)대로 독일은 16강전 슬로바키아와의 시합에서 그들이 가진 모든 전력을 보여주었다. 서 해설위원은 분데스리가 중계 경험을 살려 소속팀 포지션과 어떻게 다른지 같은 선수들의 정보들을 깨알같이 설명해주었다. 서형욱 해설위원이 해설한 중계방송은 네이버 TV캐스트에서 다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