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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 x cross] 연민과 견딤으로 이뤄진 세계 - 두 번째 소설집 <너무 한낮의 연애> 펴낸 김금희 작가
정지혜 사진 백종헌 2016-07-14

“선배, 나 선배 사랑하는데.” 이 대책 없이 끝나버리는 문장을 들고서 소설가 김금희가 왔다. 2016년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대상작인 단편 <너무 한낮의 연애>에서 양희가 필용에게 한 고백의 말이다. 필용은 묻는다. “오늘도 어떻다고?” 양희가 답한다. “사랑하죠, 오늘도.” 이 얼마나 정확한 사랑의 말인가. 섣불리 미래형으로 말하지 않기. 오늘만큼은 정직하게 말하기. 사랑의 감정에 으레 따르는 과장된 수사는 김금희의 소설에서 찾을 수 없다. 첫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2014)을 지나 두 번째 소설집 <너무 한낮의 연애>(2016)를 거치며 작가는 담백하고 정직하게 세상을 응시한다. 이제는 사라져버린 것들, 그러나 한때 분명 존재했던 그 흔적들을 잊지 않으려 한다. <너무 한낮의 연애>를 두고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고백한다. “이런 소설을 읽기 위해 나는 나이를 먹어온 것이 아닐까…. 이런 소설을 읽으며 나는 감동을, 세상의 많은 멋쟁이들이 비아냥거리는 그 감동이라는 것을 받는다.” 이제 막 시작된 한여름의 장맛비를 뚫고 작가 김금희가 카페로 들어선다. 꾸밈 하나 없는 얼굴을 하고 들려주는 그것은 연민과 견딤으로 이뤄진 김금희 소설의 세계다.

-두 번째 소설집 <너무 한낮의 연애>가 어느덧 4쇄를 찍었다.

=첫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은 1쇄에 그쳤는데 이번에는 생각보다 많은 분이 읽어주셔서 감격하고 있다. 출판사 편집자로 일해봐서 잘 안다. 책이 만들어지기까지도 어렵지만 서점에서 독자의 선택을 받는다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너무 한낮의 연애>는 20대 때 사랑의 감정을 주고받은 필용과 양희가 16년만에 재회하고 다시 헤어지는 이야기다.

=서로의 빈구석을 좋아할 때가 있지 않나. 양희는 필용의 빈곳을 보고 보듬어주고 싶었을 거다. 독자 중에는 ‘같이 잠도 안 잤는데 이들이 연애를 하긴 한 것이냐, 좋아하면 더 표현해야 하는 거 아니냐’ 하는 분도 계시다. 나는 둘의 감정의 교환 자체가 큰 사랑의 형태가 아닐까 싶었다.

-양희는 어떻게 그토록 꾸밈없이 솔직할 수 있나. 필용이 사과할 때조차 양희는 “사과 같은 거 하지 말고 그냥 이런 나무 같은 거나 봐요”라고 말한다.

=꾸미려면 돈이 들지 않나. 양희는 그럴 여유가 없다. 사람들이 양희가 아주 독특하다고 하더라. 글을 쓸 때는 몰랐는데 양희는 20대 때의 나와 결이 닮아 있다. 큰 의지 없이 무기력과 냉소에 휩싸여 사는, 상처에 단련된 인물이다. 자기 욕망을 우선하기보다 상황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그것보다 먼저 돼야 할 게 있다면 기꺼이 받아들인다. 대단히 성숙한 사람이다. 소설을 쓸 땐 외려 필용을 많이 생각했다. 필용은 자기가 뭘 원하는지 잘 모른다. 미숙해서 그렇다기보다는 20대 때가 그런 것 같다. 자판기 커피도 안 사는 구두쇠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사는 필용이 자기 장식 하나 없는 양희를 만났으니 양희에 대한 신뢰가 쌓일 수밖에 없었을 거다.

-“사랑하죠, 오늘도”라는 양희의 말이 주는 울림이 크다. ‘도’라는 조사가 붙음으로써 그들의 앞선 시간에까지 긍정의 무게가 실린다. 하지만 사랑의 내일은 알 수 없다.

=문학평론가 한분이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 선생님 소설 좋아하는데.” 되게 희한한 문장이었다. ‘그래서, 그다음은 뭐라는 거지?’ (웃음) 그걸 염두에 두고 쓴 건 아닌데 그런 문장의 형태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20대 땐 모든 게 불안하고 답답했다. 미래를 약속한다는건 거짓말 같았다. 그래서 진짜 솔직하게 말한다면, ‘오늘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단편 <세실리아> <아이들>에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고 했다. 소설을 쓸 때 경험의 세계에서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인가.

=직접 겪은 사건이 아니더라도 경험한 일에서 감정을 가져오곤 한다. 마음을 두드리지 않는 것에 대해선 잘 쓰지 않는다. 대학 때, (웃음) 친구들과 일시에 사이가 나빠져 혼자 남게 됐다. 큰 사건이라 휴학까지 했다. 그 사건을 해명하고 싶었다. <세실리아>에는 일종의 자기 구원의 마음이 들어갔다. 따돌림당한 세실리아가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했다. 따돌리는 데 소극적이지만 동조했던 정은이라는 인물을 통해 세실리아를 만나러 가보고 싶었다. 쓰고 나서 내가 위안을 받았다. <아이들>은 신도시 건설을 이유로 한때 살았던 아파트가 사라지게 된 데에서 시작된 이야기다. 나는 작가니까 이렇게라도 그 동네를 기록해두고 싶었다.

-당신의 소설에서 아픔의 순간을 지나온 인물들이 재회할 때, 그들은 섣불리 화해라는 말을 꺼내는 법이 없다.

=상처를 지우는 게 아니라 상처를 존중하는 것이 먼저다. 상처가 없었던 일이 될 수는 없으니까. 비관적으로 보자면, ‘상처는 회복 불가능해’라고 말하는 걸 수도 있다. 하지만 회복 불가능함을 전제로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야말로 상처 입은 이에 대한 예의다. 그 과정 없이 화해 하려는 건 욕심이자 무례한 게 아닐까.

-<너무 한낮의 연애>의 ‘작가의 말’에 대해 묻고 싶다. ‘언제부터 견딘다는 말을 습관적으로 쓰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내일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고 어쩌면 더 나쁠지도 모르니까. 그 나쁨의 상태에서 최선을 다해 오늘을 지키는 것, 그것은 나약함일까. 그렇다면 그런 하루의 무게는 정당한가’라고 썼다.

=연민의 회복만으로도 세상이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내 안의 상처를 위로하고,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길 바라서 소설을 썼다. 그런데 첫 소설집이 나오고 보름 정도 지나고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생각보다 세상은 더 병들어 있었다. 나를 위로하고 돌아보는 걸로는 침묵의 동조자가 될 뿐이었다. 이 세계를 견뎌야 한다는 의식 없이는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됐을까 생각했다. 2009년에 등단한 이후 한동안 굉장히 냉소적이었다.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세상이 돌아가지 않으면, ‘그럴 줄 알았다. 망해라, 망해!’ 했다. 그런 냉소가 세월호와 같은 엄청난 비극을 부른 게 아닐까. 이 결과를 개인의 불성실함과 잘못으로 돌리기에는 정당하지 않은 일이 너무 많다. 공동체를 거울삼아 이 비극을 들여다본다면 문제의 해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참사의 피해자들)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계간 <문학동네> 2016년 봄호에 실린 ‘젊은작가상 수상 작가와의 인터뷰’를 읽었다. 등단 직후와 현재의 글쓰기의 가장 큰 차이를 두고 ‘막 쓰게 됐다’며 ‘해방’이라는 말을 했다.

=첫 책은 그야말로 정석에 맞춰 썼다. 편집자 출신이라 그런지 문장 하나하나를 매우 중요시 한다. 고치기도 여러 번 했고 캐릭터들을 장악하려는 버릇도 심했다. 인물들끼리 대화를 안시켰으까. 글이 갑갑하게 읽혔다. 5년간 써온 글을 묶어 책을 낸다는 게 뭔가 싶어 허탈하기도 했고. 나도, 세상도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만 같았다. 무기력과 우울감에 싸여 울면서 거리를 돌아다녔다. (웃음) 그러면서 내가 얼마나 허술한 사람인지를 알았다. 그 시기를 지나며 ‘정석법 따위는 개나 줘버려’ 하는 듯한 심정이 생겼다. 소설에 나 자신의 구원을 결부시킬수록 캐릭터들의 움직임이 조심스러워진다. 그것에서 해방돼야 했다. ‘해방의 쓰나미!’라는 말은 그런 의미다.

-같은 글에서 ‘작가가 하는 일의 의미’에 대한 질문의 답변이 짧게 끝나 아쉬웠다. 다시 묻고 싶다.

=작가는 그냥 글을 쓰는 사람이다. 책이 나오고 상을 받는다 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다음 작품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출판사와의 계약, 독자와의 약속 등의 이유로 글을 쓴다고 하지만 힘이 들면 쓰지 않아도 된다는 냉정한 현실이 있다. 그럼에도 작가는 내부의 동력으로 글을 쓴다. 그 동력이 보다 많은 사람들과 연결돼 있길, 어떤 영향 아래 있길 바랄 뿐이다.

-써둔 작품들을 두권의 소설집에 다 실어 이제 재고가 없다고 했는데.

=아까워서 쓴 건 무조건 다 소설집에 넣었다. 딱 한편 남겨뒀는데 세 번째 소설집에 넣을 예정이다. 편집자로 6년간 일하면서는 한편도 못 썼다. 소설을 쓰고 싶어 국문과에 갔는데, 일하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계속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충동적으로 사표를 냈다. 되게 슬프더라. 내가 편집한 책이 비록 많이 팔리진 않았지만 그 일도 좋아했는데. 왠지 실패해서 돌아가는 것 같았다.

-등단작 <너의 도큐먼트>는 사업에 실패해 집을 나갔다 들어오길 반복하는 아버지를 ‘뤼뺑’이라 부르는 딸의 이야기다.

=2006년 무렵 아버지의 사업이 망했다. 등단했을 때도 이 얘길 했더니 아빠가 “아빠 얘기 그만 해라” 하시더라. 성실하게 살아온 아빠가 무너지는 상황이 이상했다. 지금껏 유지한 우리의 생활은 그럼 뭐지? 허상인가? 그 허상을 유지하기 위해 그렇게 안달복달했나? 그런 생각을 이어가다 이야기가 됐다. 아버지의 상처를 팔아서 등단을…. 무뚝뚝한 아빠가 최근에 한마디 하시더라. “자수성가하느라 수고가 많다.” 아버지한테 인정받았다.

-<너무 한낮의 연애>의 ‘작가의 말’이 ‘여름이 느리게 지나가길 빌며’로 끝난다. 이제 막 여름이 시작됐다.

=최근 들어서야 여름이 좋아졌다. 겨울은 혹독하니까. 여름에는 옷값도 싸고 먹을 것도 많고. 사람들, 강아지들이 다 나와 있는 골목길의 어떤 경쾌함 같은 게 비로소 눈에 들어온 거다. 그런 여름이 느리게 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썼다.

<너무 한낮의 연애> 중 <반월>

김금희 작가에게 독자들이 한번 더 눈여겨 읽어주길 바라는 작품이 있느냐고 물었다. 작가는 단편 <반월>을 꼽았다. “다른 단편에 비해 크게 주목받진 못했으나 애정이 간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우울한 여름을 보내고 나서 처음으로 쓴 게 <조중균의 세계>와 <반월>이다. <조중균의 세계>는 많은 분들이 읽어주신 것 같아서. 참혹했던 그해 여름을 보내며 썼다. 그때 우리가 가슴 아파했던, 그 마음을 생각하며 읽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