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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순택의 사진의 털] 팔월의 미친 세상
노순택(사진작가) 2016-08-17

미친 짓이었는지 모른다. 관측 사상 가장 무더운 여름이 될 거라고 세계기상기구(WMO)가 경고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꼬박 1주일, 달아오른 아스팔트 위를 맨몸으로 걷겠다는 각오보단 모두들 쉬러가는 황금 휴가철에 ‘이 짓’을 하겠다는 각오야말로 쉽지 않았으리라.

우리는 걸었다. 서귀포 강정마을에서 제주시 탑동까지 돌았다. 반은 서쪽으로, 또 반은 동쪽으로 걷고 보니 200km가 넘는 거리였다.

우리는 누구였을까. 강정마을 주민이었다. 잠시 왔다가 각자 품게 된 어떤 마음 때문에 강정에 주저앉고 만 지킴이였다. 평범한 시민이었다. 기륭/콜트콜텍/동양시멘트/쌍용차의 해고노동자였다. 용산과 세월호, 참사의 유족이었다. 종교인이었다. 인권활동가였다. 시인이었다. 만화가였다. 혹은 농부였다. 네살배기 연우가 있는가 하면, 여든네살 배종렬 어르신이 계셨다.

우리는 외쳤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폭력으로 얼룩진 해군기지를 철수하라! 주민과 지킴이에게 청구된 34억5천만원 구상권을 철회하라! 전쟁과 폭력에 반대한다! 해고에 반대한다!

우리는 함께 먹고, 함께 씻고, 함께 잤다. 곳곳의 체육관에서였다. 행진 도중 예은이 아빠가 ‘2년 전 그날’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때도 체육관이었지요. 진도체육관. 그땐 몰랐습니다. 내게 다가올 체육관 인생을. 그날 이후 세월호의 진실을 촉구하려고 안 가본 곳이 없고, 안 자본 체육관이 없습니다.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여기서도 체육관의 나날이라니 숨부터 막히더군요.”

대답이었을까. 어느 저녁 누군가가 울먹이며 하는 말을 엿들었다. “세월호에 과적된 400톤의 철근이 강정해군기지를 위한 거였다는 얘기를 듣고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우리가 해군기지를 더 잘 막았더라면 그 참사도 막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달아나질 않아요.”

8월의 첫주, ‘미칠 것 같은 이 세상’에 자발적 미친 짓을 감행했던 이들이 뜨겁게 만났다 헤어졌다. 미친 세상의 속삭임을 들었다. 서로 다른 시공간의 너희가 얼마나 긴밀하게 이어져 있는지 이제는 아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