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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이경미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불공평하도록 가혹한 공평함
이경미(영화감독) 2016-08-24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전생에 내게는 결혼을 약속한 남자가 있었다. 십수년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동안 우리는 잘 어울렸고 모두가 우리의 결혼을 의심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어리고 예쁜 소년이 나타났다. 나는 남자친구도 좋고 예쁜 소년도 좋았다. 그래서 동시에 두 남자를 만났다. 너무나 달콤한 지금과 부유하고 안정된 미래, 둘 다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나 곧 들켰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두 남자 모두 나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렇다. 바로 이것이 진정 TV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바로 그 재수 없는데 좀 부럽고 그래서 욕 나오는, 바로 그런 짜릿한 상황인 것이다. 나를 향한 사랑의 늪에 빠져 고통에 몸부림치는 두 남자를 보면서 결심했다. 이 지옥은 내가 만들었다. 그러니까 나는 벌을 받아야 한다. 지금 내게 가장 가혹한 벌은, 두 남자 모두를 잃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의 달링들아, 우리 그냥 다 같이 벌 받자. 자, 이제 모두 안녕!

그때 그 죄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나는 다음 생에서까지 그 벌을 받느라 이리 고독하고 쓸쓸하단다.

며칠 전 만난 어느 점쟁이가 내게 말해준 나의 전생에 대한 이야기다.

이것이 바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내게 주는 인생 메시지 같다. 가난한 남자는 달콤한 유혹을 이길 수 없었다. 널브러진 시체들 가운데 돈가방을 발견한 이상 이것을 두고 갈 순 없다. 여기선 한바탕 마약 전쟁을 벌인 듯한데 굳이 그런 형편의 돈가방 주인을 찾아줄 필요가 있을까? 남자는 돈가방을 갖는다. 그런데 곁에 총상을 입은 채 겨우 숨만 붙은 사람이 있다. 그는 애타게 물을 구하지만… 남자는 외면한다.

집으로 돌아온 남자는 마음이 영 편치를 않다. 돈가방도 가지고 싶고 양심도 못 버리겠다. 결국 그를 위한 물통을 챙겨서 다시 현장을 찾아간 남자의 선택은 이후 정말 어마무시한 어드벤처를 주다 못해, 남자가 죽는 건 그렇다 치고 죄 없는 그의 아내까지 죽게 만든다.

언제나 대부분의 인생 계획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고 세상사 절대 공평하지 않은데 조금만 시선을 바꿔보면 세상사가 불공평하도록 가혹하게 공평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그러니까 하나를 얻으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반대급부를 안고 가는데 그 반대급부는 하나를 얻고 난 이후 불어난 시간만큼 에너지가 쌓이고 무거워져 결국 되로 주고 말로 받아간다. 그래서 여러 경험을 할 수록 역시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한다. 왜냐하면 결과는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자는 그 돈가방을 가지고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그렇다면 전생의 나는 예쁜 소년의 유혹을 두고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어떤 선택을 했어야 했을까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선택을 하든 불공평하도록 가혹하게 공평한 이면을 체험하게 될 테니까.

아 참, 덧붙이자면 점쟁이가 말했다는 나의 전생 이야기는 전부 지어낸 이야기다.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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