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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의 야간재생] “내 인생은 내가 찾을래” <타미>
김현수 2016-08-30

<타미>는 직장에서 쫓겨나고 남편에게도 버림받아 자존감을 잃은 여성, 타미가 알코올중독자 할머니와 난장판 여행길에 올랐다가 범죄에 연루되는 코미디 로드무비다. 어느새 ‘누구도 예상치 못한’ 할리우드 최고 주연배우 타이틀을 획득한 멜리사 매카시가 할머니 역을 맡은 수잔 서랜던과 함께 여행길에 오른다. 왠지 25년 전 <델마와 루이스>의 루이스가 할머니가 되어 돌아와 못난 손녀 정신 차리게 만들어주는 이야기 같지 않은가? <고스트버스터즈>의 댄 애크로이드와 <미저리>의 캐시 베이츠도 깜짝 출연해 재미를 더하는 이 영화의 감동은 멜리사 매카시가 직접 쓴 각본에 꽉 들어차 있다.

<타미>

01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타미가 낡아빠진 자동차를 끌고 출근을 하다가 사슴과 부딪쳐 사고를 낸다. 이것이 영화의 첫 장면이다. 어쨌든 사고가 났으니 타미의 몰골이 말이 아닐 텐데도 그녀는 꾸역꾸역 출근을 한다. 점장은 그녀를 보자마자 해고 통보를 한다. 아마도 그간 성실하지 못했던 타미의 근무 태도에 대한 짜증이 한꺼번에 쏟아진 것이리라. 타미는 조금의 미안한 마음도 없다는 듯, 점장에게 온갖 손가락욕을 투척하며 난동을 피우고는 집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이게 무슨 머피의 법칙인가. 남편이 옆집 여자와 정답게 식사를 하며 티타임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타미>

02 이미 예상했다는 듯 남편과 여자에게 거친 욕설을 쏟아내는 타미의 모습이 웃기면서도 쓸쓸하다. 그러고 보니 영화의 시작과 함께 흘러나왔던 노래 제목이 <I Don’t Wanna Use Your Love Tonight>이었다. 아무튼 본능적으로 이 마을을 떠야겠다고 마음먹은 타미는 숨겨뒀던 비상금 통을 연다. 겨우 60달러. 차를 빌리러 친정집에 갔더니 “아예 떠나지도 못하고 매번 돌아올 거면 가지도 말라”고 화내는 엄마. 유일하게 타미를 응원해주는 건 역시 떠나지 못해 안달인 알코올중독자 할머니다. “갈 거야? 말 거야?” 돈다발을 들고 타미를 유혹하는 그녀와 타미의 동반 여행이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

<타미>

03 일리노이주에 살던 두 사람의 최종 목적지는 나이아가라 폭포. 족히 4개주 정도는 지나가야 하는 어마어마한 여정이다. 그런데 시작부터 만취 상태로 음주운전을 하질 않나, 국립공원에 차를 끌고 들어가질 않나, 끝내 휴양지 호숫가에서 제트스키를 망가뜨려 4800달러를 물어주게 되면서 이들의 만행은 잠시 휴식. 계산해보자. 영화 시작 30분도 채 안 된 상황에서 둘의 수중에 남은 돈은 1900달러. 그러니 이들의 남은 여정이 정상적일 리가 없다. 결국 구치소에까지 수감될 정도로 난동을 부린 두 사람이 여행을 계속하려면 보석금 3천달러를 마련해야만 한다.

<타미>

04 돌이켜보면, 두 사람은 그저 집에서 멀리 떠나고 싶었을 뿐이다. 알코올중독과 당뇨병을 달고 사는 할머니는 지긋지긋한 아버지를 잊으려고 술독에 빠져 살았던 과거로부터 떠나고 싶었다. 무능력한 타미는 뚱뚱하고 매력 없음에 스스로를 가둬두며 살다가 하루아침에 모든 걸 잃고 외양간 고치게 생긴 현재로부터 떠나고 싶어 여행을 시작했던 것이다. 하나 이들은 영화가 시작한 지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제자리다. 그럼 남은 러닝타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구치소에 앉아 “세상에서 제일 못된 사람은 바로 나”라고 자조하던 타미는 모든 잘못을 되돌리겠다면서 패스트푸드점을 턴다. 총도 없이 손으로 총 모양을 만들고는 “딱 1600달러만 내놓으라”며 협박한다.

<타미>

05 <델마와 루이스>의 21세기 코미디 버전 같은 이 영화가 사랑스러운 이유는 화끈한 난장판 여행을 통해 여성이라서 겪어야 했던 누군가의 삶의 피로를 씻겨주기 때문이다. 그동안 수많은 남자 캐릭터들이 웃기면 그만이란 투로 온갖 재미없는 짓을 일삼고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성장영화를 참 많이 봤다. 이제 그만 볼 때도 됐지 않나. 성공한 레즈비언 사업가로 등장하는 캐시 베이츠가 두 사람의 여행을 마무리하는 큰언니 역할을 도맡아 영화의 품격을 높여준다. 블루레이 부가영상에는 멜리사 매카시와 아빠 역을 맡은 댄 애크로이드가 손가락욕을 3분 동안 날리는 영상이 있다. 기분 울적할 때마다 틀어놓고 있으면 저절로 웃게 되는 실없는 영상이다. 지금 당장 <타미>를 주문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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