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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 x cross] 반려자의 자격 -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반려견 교육법 알리는 강형욱 동물 행동 전문가
김혜리 사진 오계옥 2016-09-08

개와 사랑하는 일에 있어서 우리는 언제나 2인자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들이 우리를 더 사랑한다. 그럼에도 개와 함께 사는 일은 난해하다. 혹시나 쉽다고 느낀다면 개를 막 대하거나 인간의 방식을 곧장 적용하기 때문이다. 반려견 행동 전문가 강형욱은 반성(反省)의 달인이다. 개를 가족으로 맞고도 노력하지 않는 보호자의 게으름을 단호히 지적하고, 개를 교육하는 자신의 방법론을 훈련소 견습생으로 일한 열여섯살 이후로 줄곧 반성하며 발전시켜왔다. 저서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된다>(2014)와 같은 해 설립한 반려견 행동 클리닉 보듬의 활동, 그리고 <EBS>의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를 통해 강형욱은 “누가 보스인지 인식시켜라”라는 원칙에 입각한 압박 훈련법을 반박하는 안티테제를 보급해왔다. 그는 처벌이 아닌 보상을 개에게 동기로 제시하고, 즐거움을 조건반사의 방아쇠로 쓴다. 국회에서 동물보호법 개정을 위한 토론회가 열린 8월31일 강형욱 훈련사를 만났다. 서글서글하지만 단단한 그의 인상은 픽사 애니메이션 <업>(2009)의 골든 리트리버 더그와 무척 닮았다. 훈련사의 반려견 다올과 바로가 따라들어왔다. 애정과 신뢰에 주리지 않아 평온한 강아지들은 기자의 발을 건드리며 책상 밑을 오갔다.

-출연한 방송에서 개보다 강아지, 견주보다 보호자라는 단어를 선호한다.

=예전에는 나도 “개 공부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직도 한국에서 ‘개’는 누군가에게 우스갯소리고 놀림의 뉘앙스가 있다. 그래서 ‘강아지’, ‘반려견’이라는 말을 쓰게 됐다. 하지만 차차 개라는 단어를 되찾아가야겠다. 견주는 마치 차주처럼 소유의 뉘앙스가 강해서 보호자라는 명칭을 선호한다. 의뢰인을 “보호자님”이라고 부르는 순간 ‘아, 내가 보호자구나’ 하는 책임감을 느끼며 달라지는 태도를 감지한다.

-목소리가 나직하고 손동작이 풍부하다. 일로 형성된 습관인지.

=내 목소리 톤은, 강아지에게 자극을 주지 않는 동시에 보호자에게 확실히 정보를 전달할 수 있도록 긴 시간 다듬어진 거다. 개에게 하는 “앉아!”와 보호자에게 설명하는 목소리 톤을 달리하면 강아지는 내가 다른 생각을 한다고 여긴다. 두 다리를 바닥에 고정하고 되도록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얼굴과 보디 랭귀지를 많이 써서 말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출연 중인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실시간 댓글이 달리는 프로그램이다. 한국 사회에서 반려동물이 화제가 되면 늘 그렇듯 시비를 거는 댓글도 있을 것을 짐작하고 섭외에 응했을 텐데.

=압박 훈련에 반대하는 교육법을 소개하면서 7, 8년 전부터 전화로 메일로 욕을 많이 먹었다. 짧은 목사슬로 행동을 강제하는 훈련을 해온 사람, 그 훈련을 시킨 보호자들에겐 내 방법이 위협으로 받아들여졌다. 선의로 한 일이 잘못됐다고 말하니까. 다행히 스스로 숙고해서 판단한 길에 대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편이다. 남들이 던져오는 질문을 이미 내가 더 길게 자문하고 답을 얻었기 때문이다.

-기존 한국의 TV가 동물을 보여주는 방식에 문제의식이 있었나? 출연 중인 <EBS>의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이하 <세나개>)는 로고송 가사부터 당신의 생각이 기초가 된 프로그램처럼 보이는데 기획부터 참여했는지.

=심리학에서 행동의 근저에는 회피동기와 접근동기가 있다고 말한다. 회피동기는 더우면 에어컨을 켜듯 순간의 불편을 모면하려는 욕구다. 접근동기란, 당장은 얻는 게 없지만 미래와 꿈을 위해 투자하는 케이스다. 많은 보호자들은 회피동기로 훈련사를 찾는다. 당장 개의 짖음과 배변 실수를 멈춰달라고. TV 시청자의 주의를 끄는 내용도 보호자의 필요를 즉각 채워주는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내 관심은 접근동기다. <EBS> 장후영 PD와 제작진이 나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믿어줘서 방송에서도 내가 믿는 바를 꺾지 않고 보여줄 수 있었다.

-유전, 환경, 후천적 경험으로 성격과 행동이 결정되긴 인간도 마찬가지인데 <세나개>를 보면, 제목대로 문제가 보호자의 변화로 대부분 해결된다. 사람에 비해 개의 경우 환경과 후천적 경험이 더 결정적인가? 유전적 요소로 교정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나.

=개의 유전력은 인간보다 강하다. 그래서 부모견에 대해 충분히 알고 강아지를 입양해야 하는데 펫숍에서 개를 사면 불가능하다. 펫숍이 없어지고 브리더(breeder)가 늘어나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한국은 “하면 된다”라는 사고가 뿌리 깊어 모두가 일단 강아지를 입양하고 그래서 유기견이 양산된다. 선진국일수록 개의 두수가 적다. 그 사회의 조정능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진짜 반려할 수 있는지 철저히 조건을 검토하기 때문이다. 유전력이 강해도 훈련사들은 가능한 변화를 믿고 교육한다. 방송을 보면 착각하기 쉽지만 나는 마법사가 아니다. 다만 문제가 된 이 강아지가 향후 어떤 모습이 될 것인지 보여주는 능력은 있다. 나는 단 6시간 녹화에서 강아지의 6개월 뒤 모습을 보여줘서 보호자에게 접근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보호자가 함께 변하려는 의욕이 없다면 교육이 아니다. 결혼과 같다. 내 아내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걸 받아들이고 서로의 모습을 재밌게 바라본다. “하하, 괜찮아. 나도 그럴 때 있어.”

-개를 사랑하게 된 계기를 기억하지 못할 만큼 언제나 개가 생활의 일부였나.

=아버지가 운영하는 개 농장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너무나 개를 좋아했고, 동시에 먹고살기 위해 개를 팔았다. 남들은 호랑이, 나비 같은 단어로 한글을 뗐다면 나는 골든 리트리버, 요크셔테리어 같은 말로 뗐다. (웃음)

-어린 시절부터 개들을 관찰 기록하는 일을 취미로 삼았다고 들었다.

=군대에서는 선임에 대한 관찰 일지를 썼다가 걸렸다. 군에서 기록은 간첩 행위로 간주될 수도 있으니까. 회사 직원들도 싫어한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각각 어떻게 머리를 넘기고 시선을 돌리는지 다 안다. (웃음)

-노르웨이 반려견 행동 전문가 투리드 루가즈(Turid Rugaas)의 영향이 컸다고 밝혔는데.

=루가즈에게 무작정 메일을 보냈는데 친절하게도 동료인 앤 릴 크뱀(Anne Lill Kvam)을 소개해주었다. 노르웨이로 가서 크뱀의 옆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다. 선생님이 사는 모습까지 보는 것이 배움이라고 생각했고, 그녀의 가르침이 본인의 개에게 하는 행동과 일치하는지가 내겐 중요했다. 크뱀은 개 훈련이 아니라 나의 유년기와 부모와 감정적 추억에 대해 물었다. 그런 대화로 강아지의 불안이나 공격이 기인한 감정을 유추하는 태도를 배웠다. 이미 9년차 훈련사였는데도 깨지고 반성했다. 지금도 나는 계속 배우는 중이다. 5년 후에는 또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개도 사고와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존중하는 것과 과도한 의인화의 차이가 무엇일까.

=내 생각을 개에게 입히는 것이 의인화이고 강아지의 행동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관찰이다. 많은 보호자가 비싼 강아지 용품을 사주고 그 보상을 원하지만 그것은 의인화이고 개의 필요는 다르다. 홈리스의 개가 패리스 힐튼의 개보다 행복하다. 개들에게 앙케트를 하면 최고의 보호자 직업은 언제나 함께 있고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이직자, 백수, 노숙자일 거다.

-영화가 만들어낸 개에 대한 오해가 있을까.

=줄을 풀었는데도 옆에서만 맴도는 이상화된 모습은 좀 위험하다. <베토벤>(1992)의 경우는 현실성이 있다. 개들은 좋은 관계에 있다면 아기를 돌보려고 한다. 솔직히 개 영화 잘 못 본다. 보고 있으면 어떤 식으로 촬영했을지 보여서.

-한국의 동물 관련법 중 가장 시급히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조항은 무엇인가.

=변 치우기와 줄 매기, 인식표 착용을 어기는 보호자들에게 과태료를 철저히 징수해 그 돈으로 공공 유기견 보호소의 보호기간을 늘리고 단 열흘이라도 최선을 다해 주인을 찾아주고 좋은 걸 먹이고 보살펴야 한다. 실제로는 열흘 동안 유기견들을 제대로 먹이지도 변을 치우지도 않는다. 99.99%가 입양되지 않기에 담당자들은 “어차피”라고 방기한다. 수요일 12시가 안락사라면 11시 55분까지 수액을 맞히며 돌봐야 한다. 거기엔 돈이 필요하고 그건 법을 정확히 시행하면 확보할 수 있다. 다음으로 강아지 공장에 압박을 가해야 한다. 사지 말고 입양하자는 슬로건이 있지만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골든 리트리버, 올드 잉글리시 시프도그 강아지를 키우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걸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실제로 입양 신청자를 엄격히 심사하는 브리더는 유기견을 방지하는 큰 역할을 한다. 펫숍과 브리더 입양 중 무엇이 바람직한지 이해가 확산된 다음, 펫 공장을 제재해야 실효성이 있다.

-유기견을 입양할 때 유의할 점이 있나.

=입양하고도 강아지를 계속 유기견으로 바라보는 예가 많다. 계속 불쌍히 여기고 부정적 감정으로 대하면 개도 항상 긴장하거나 응석받이가 된다. 유기됐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개는 두번 다시 보호자를 놓치고 싶지 않아 불안해한다. 어제도 오늘도 똑같고 내일도 같을 것이고 넌 이제 계속 여기서 살 거라는 사실을 이해시켜야 한다.

-개 아닌 다른 동물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의 이해가 적용된다고 보는가.

=모든 동물들한테 적용돼야 한다. 안 되더라도 해야 한다. 때리고 강요하는 교육이 실효가 있다 해도 믿지 않을 거다. 인간으로서 중심을, 존엄을 잃고 싶지 않아서다.

코담요

개가 코를 쓰도록 독려하는 교육(nose work)은 반려견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강형욱 훈련사가 강조하는 방법 중 하나다. 작은 주머니와 나풀거리는 천조각이 부착된 담요 곳곳에 뿌린 간식을, 코로 찾아내는 과정에서 개들은 인간으로 치면 입, 눈, 귀를 합쳐놓은 감각기관인 코를 활성화하고 능동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운다. 물론 최상의 노즈 워크 환경은 깨끗한 자연이지만, 동네 산책길이 지저분해 걱정스러운 초보 반려가족, 혹한과 혹서로 외출하기 힘든 환경이라면 코담요는 차선책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