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인터뷰
[씨네 인터뷰]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배우의 길 - 배우 최민수와 아들 최유성
이주현 2017-01-26

배우 최민수와 그의 아들 최유성을 만났다. 최유성은 예능 프로그램 <엄마가 뭐길래>를 통해 얼굴을 비춘 적이 있다. 토론토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는 그는 지난해 휴학을 하고 현재 조심스레 연기에 대한 꿈을 키워가고 있다. 만약 최유성이 본격적으로 연기를 한다면 배우 집안의 명맥을 4대째 이어가게 되는 셈이다. 최민수의 부모님은 1950~70년대를 풍미한 스타배우 최무룡과 연극과 영화 매체를 오가며 각광받았던 배우 강효실이고, 강효실의 부모님은 북에서 영화배우와 감독으로 활동한 강홍식과 다수의 작품에서 비극의 여주인공으로 활약한 전옥이다. 배우의 피가 대대로 전해지고 있다는 말이 거창할 수 있지만 최민수, 최유성 부자와 같은 공간에서 3시간을 함께 있다보니 두 사람의 비슷한 본질을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아직 한국말이 서툰 최유성을 위해 어머니 강주은씨도 통역 겸 매니저로 동석했다.

-아들과 함께 인터뷰 자리에 나선 이유는.

=최민수_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외조부님부터 나까지 3대에 걸쳐 연기를 하고 있는데 4대째 되는 유성이도 연기에 관심이 있다니 그게 새삼스럽게 느껴지더라. 이 아이가 앞으로 4대째 연기를 할 겁니다, 그런 얘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고 단순하게 나한테 이런 멋진 아들이 있다는 걸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아빠인가보다. (웃음)

-아버지가 유명한 배우이기 때문에, 아버지가 나서서 자신을 소개하는 일이 부담스럽진 않았나.

=최유성_ 그렇지 않았다. 오케이, 재밌겠다, 그런 마음이었다. 평소 아빠를 유명한 배우로 생각하지 않는다. 나한테 아빠는 늘 형 같고 친구 같은 존재다.

-1년 넘게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 <엄마가 뭐길래>에서도 그런 관계가 잘 드러났다. 사실 가족의 일상을, 민낯을 공개한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텐데 어떻게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됐나.

최민수_ 나 같은 경우는, 이 방송이 캐나다에 계시는 아내의 부모님에게 나름의 선물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외동딸인 (강)주은이가 23년 동안 부모님 곁을 떠나 한국에서 살고 있는데, 우리가 사는 모습을 이렇게나마 보여드리면 좋아하실 것 같았다. 그게 출연의 가장 큰 이유이고 목적이었다. 그런 목적이 없었다면 집 안에 카메라를 들인다는 게 굉장히 불편한 일이었을 거다. 한편 집사람은 사람들의 선입견, 최민수의 이미지 때문에 생겨난 우리 집안에 대한 선입견이 방송을 통해 깨지는 게 좋았나보더라. 우리 가족은 서로가 평등하게 친구처럼 지낸다. 우리에겐 긍정적인 에너지, 행복의 에너지, 살아오면서 쌓인 신뢰가 있기 때문에 카메라에 대한 부담에 짓눌리지 않고 충분히 즐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리얼 관찰 예능이라도 최소한의 설정과 제작진의 의도는 담길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당신은 거짓되고 가식적인 것을 싫어하는 배우다. 어떻게 예능과 리얼 사이에서 접점을 찾았는지 궁금하다.

최민수_ 전에도 예능에 출연한 적 있지만 설정이 많고 거짓이 많으면 나는 낯간지럽다. 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엄마가 뭐길래>는 앞서 얘기했듯 캐나다에 계신 부모님에게 전하는 소박한 선물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촬영 초반엔 제작진과 의견을 조율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제작진이 집 안에 아기 텐트를 쳐놓고 그 안에 카메라를 들고 들어가 우리의 일상을 찍었고, 무언가 설정을 집어넣으려 했다. 그건 아닌 것 같다고 얘기했다. 우리야 어느 정도 방송 시스템을 인지하고 있는 어른이지만, 거짓이 진짜같이 포장돼서 방송되는 걸 어린 두 아들이 보게 된다면 그것만큼 큰 데미지가 없겠다 싶었다. 설정은 줄이고 그냥 우리 사는 모습을 담아달라 했다.

최유성_ 처음엔 내 모든 걸 내려놓고 보여준다는 게 어려웠고 무서웠다. 집안의 첫째 아들로서 가족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가족의 모든 게 공개돼버리니까 좀 두려웠다. 만약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가족을 보호하지? 그런 생각이 들어서.

최민수_ 든든하구먼, 아주. (웃음)

최유성_ 나도 그렇고 동생도 그렇고 예민한 나이에 갑자기 방송에 출연하게 됐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SNS로 메시지도 많이 받았다. 어쩌면 그런 반응에 우쭐하거나 바람이 들 수도 있는데, 부모님 덕에 자세를 낮출 수 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이 세계를 이미 알고 있는 분들이었고, 우리를 현실 세계에 발디딜 수 있게 해주셨다.

-토론토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다 1년간 휴학하고 연기 공부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연기에 언제부터 관심을 가지고 준비하기 시작했나.

최유성_ 난 꼭 배우가 될 거야,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진 않다. 다만 아빠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것, 집안의 4대째 배우가 된다는 것이 영광스런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렇게 주어진 운명 안에서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았다. 한번이라도 연기에 도전해보고 느껴보고 싶었다. 여기서 말한 운명이란, 배우가 될 운명이라는 뜻이 아니라 3대째 연기를 해온 집안이라는 사실을 그대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게 내 삶에 분명한 사실이라는 것. 결국 내 인생은 내가 찾아가야 한다. 지금은 앞으로의 길에 대해 여러 모색을 하고 있다.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려 한다.

-오디션을 보거나 작품 미팅을 갖는 등 실질적인 준비들도 하고 있나.

최유성_ 일단 휴학을 하고 토론토 필름스쿨에 다녔다. 대학 휴학하기 전에 연극 무대에 선 경험도 있다. 우연히 길을 걷다가 연극 오디션 공고문을 보고 당일에 오디션을 보러 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냥 발길을 돌리려다 5분간 오디션을 봤는데 그날 밤 감독이 전화해서 형사 역할을 맡아주면 좋겠다고 했다. 그게 성인이 되고서 가진 첫 무대였다.

=강주은_ (아들의 연기 얘기가 나오자 어머니 강주은씨가 재밌는 일화가 생각났다는 듯 이야기 바통을 이어받았다) 아쉽게도 우리는 그 연극을 못 봤는데, 고등학교 다닐 때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연극 무대에 선 유성이를 봤다. 고등학생 연극이라고는 하지만 그 규모나 질이 대학 연극 뺨칠 정도였다. 그때 유성이가 로미오 역을 맡았고 최고 연기상도 받았다. 아들이 연기하는 걸 그때 처음 봤는데, 유성 아빠도 충격을 받아서 숨을 못 쉬더라. 그 이유가 연극에 뽀뽀하는 장면이 많아서였는데, 본인이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극중에서 뽀뽀하는 걸 보고 놀라 몇번이나 뽀뽀했는지 계산하고 있었다. (웃음)

최민수_ 연극을 보고 든 생각은 ‘나라면 저렇게 못했다’는 거였다. 공간을 장악하는 능력이 대단했고 ‘저건 배워서 될 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빠져들었다. 심지어 영어 대사였는데. 그때 대단하긴 했어. 인정할게. (웃음)

-처음 아들이 연기하고 싶다는 얘길 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던가.

최민수_ 배우라는 직업의 밝은 면만 보고 스타가 되고 싶은 거라면, 이 일의 깊이를 알지 못하는 결정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그래서 아들의 뜻에 반대하겠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나는 여태껏 돈을 목적으로, 스타가 되고 싶은 마음으로 연기를 해본 적이 없다. 나의 이 관점을 아들한테 그대로 적용할 순 없다. 그래서 난 그저 이렇게 얘기했다. 인생의 가치는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다. 경험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이자 위대한 스승이다. 너의 발엔 아직 굳은살이 박이지 않았으니 아직 세상을 더 많이 느껴라. 많은 경험을 하는 것 또한 배우가 되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정답은 어느 한곳에 있는 게 아니다. 가능성을 열어두고 세상과 맞닥뜨려라.

-아들에게 배우였던 부모님과 조부모님의 이야기 혹은 배우로서의 경험담을 많이 들려주는 편인가.

최민수_ 할아버지나 부모님 얘기는 전혀 안 한다. 또 내 아들이라서 이랬으면 좋겠다, 저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걸 조심스러워하는 편이다. 나도 그런 말 듣는 게 싫었으니까. 사람은 누구나 자기 나름의 보폭이 있다. 그런데 군대 제식훈련 하듯이 똑같은 보폭과 속도로 움직이라고 하는 건 간섭일 뿐이다. 난 이 친구를 존중하고 존경한다. 생각의 깊이도 깊고 믿음이 간다. 솔직히 난 산전수전 다 경험해본 사람인데 최근에 내 안에 또 하나의 설렘이 생겼다. 이 친구의 미래가 어떤 삶으로 그려질까, 그런 생각을 하니 많이 설레더라. 이 나이에 더 설렐 게 있다고? 이 나이에 나를 가슴 뛰게 만들고 손톱을 뜯을 정도로 긴장하면서 보고 싶은 게 있다고? 이건 굉장한 선물 아냐? 근데 그 친구가 내 아들이라고? 그런 거지. (웃음)

-강주은씨가 그러더라. 두분의 타고난 기질과 성향이 무척 닮았다고. 가슴속에 뜨거운 불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최민수_ 아들하고 나하고 공통적인 건 자기 안에 있는 게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는 것, 그거 같다. 근본적인 부분에서 나와 닮았다. 거짓된 걸 싫어하고 거짓된 눈으로 들여다보는 걸 잘 못한다. 앞서 유성이가 4대째 이어져온 운명과 가치에 대해 얘기했는데, 이것이 내게 주어진 역사이고 운명이라면 그게 뭔지 한번 확인해보자, 그런 마음일 거다. 아빠의 어두운 모습, 연기 하나 하기 위해 세상의 모든 경험을 하고 있는 아빠의 모습을 봤기 때문에 그게 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 주어진 인생을 살아가고 기회가 왔으니 시도하는 게 아니라 내 안의 본질적인 것, 내 안에 숨어 있는 가치, 그걸 스스로 알아보고 싶은 거다. 내 속에 있는 게 누군지를. 나는 지금껏 성공을 위해 살아본 적이 없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 얻는 게 성공으로 인식되는 삶에 늘 의구심을 가졌다. 왜 저렇게 사는 게 성공한 삶일까. 젊은 시절의 나는 배우가 되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무엇이든 직접 경험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결국 그 모든 건 성찰의 시간이었다. 그래서 유성이에게, 경험은 네게 좋은 스승이 될 거라고 얘기하는 거다.

최유성_ 아빠의 성격, 아빠의 원래 모습 그런 건 잘 모른다. 그런데 퍼즐을 맞춰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아빠도 내가 느끼는 걸 느꼈구나, 내가 좋아하는 걸 좋아했구나, 나와 너무 닮은 아빠의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아빠가 귀엽게 느껴지기도 한다. (웃음) 커가면서 그런 걸 하나씩 발견하고 있다. 예를 들면 내가 어렸을 땐 아빠가 왜 밤에 잠을 못 이루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어른이 된 나는 아빠처럼 잠을 잘 못 이룬다. 잠을 잘 못 자는 건 생각이 너무 많아서다. 그러면 ‘그래, 아빠도 나처럼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사람이지’ 싶은 거다.

최민수_ 연기를 하면서 트로피를 많이 받아봤지만 기쁜 건 딱 이틀이다. 배우라는 존재는 연기를 통해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아주 깊은 곳까지. 연기를 하면서 스스로 무언가를 찾아야 하는데, 그것을 찾은 것 같고 만질 수 있게 됐다 싶은 순간 그걸 깨고 부수게 된다. 그게 맞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맞는 건지 의심이 드니까. 그러면 또 다른 걸 찾는다. 무언가를 가지는 것보다 버리는 게 더 힘들 수 있는데 우리는 계속 버려야 한다. 이 정도면 됐어, 이 정도의 인정을 받으면 됐어, 그렇게 살면 편한데 그러지 못한다. 그런데 나중엔 아프고 고통스럽기만 하던 마음이 단단하고 강해진다. 이제 막 연기를 하려는 유성이를 보면서 겁이 나는 게, 이놈도 그 깊은 어둠에 들어갈 수 있는 놈이기 때문이다. 배우가 하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린다고? 노노노! 배우의 캔버스는 시커메야 한다. 그 시커먼 걸 긁어내고 뜯어내서 흰색을 찾아야 한다. 얘가 그 길을 가겠다고 하는데, 쉬운 답은 안 나올 것이다. 하지만 나는 유성이를 몰라도 유성이를 느낀다. 이 친구가 연기를 한다면 굉장히 깊어질 것이다.

최유성_ 필름스쿨 다닐 때, 친구들은 늘 행복하고 흥분된 마음으로 연기에 대한 소망을 얘기하곤 했다. 나 역시 연기하는 걸 사랑하지만 막상 연기를 할 땐 자신에게 쉽게 만족하지 못한다. 배우가 되면 행복하겠다는 허상은 가지고 있지 않다. 연기 경험이 많은 아버지와 얘기를 나누면 연기의 고통이 참으로 크게 느껴진다. 너무나도 많은 귀신들이 아빠 안에 존재하는 게 느껴진다.

최민수_ 그러니까 함부로 배우 되겠다는 생각하지 말라고. 너 나보다 귀신 많아?

최유성_ 그건 모르지! (웃음)

관련인물

사진 이창주(라이트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