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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원라인> 양경모 감독
이주현 사진 백종헌 2017-03-30

<원라인>은 작업 대출계에 발을 들인 대학생 민재(임시완), 민재를 작업 대출의 세계로 인도하는 소신 뚜렷한 석구(진구), 야망이 큰 행동대장 박 실장(박병은) 그리고 이들을 잡겠다고 모인 검경 수사대가 서로를 쫓고 또 물먹이는 이야기다. 서류를 불법으로 조작해 신용대출이 불가능한 이들에게 은행권 대출을 받아주는 작업 대출 업자들은 돈의 흐름에 밝은 사기꾼이다. <원라인>은 하이스트 무비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한탕을 노리는 사기꾼들의 사기행각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현실의 정밀묘사를 통해 돈에 대한 욕망과 돈이 굴러가는 과정을 들여다보는 것 또한 소홀히 하지 않는다. 단편 <일출>(2015), <하얀돼지>(2012), <디지털 무비>(2011), 독립 장편 <>(2006) 등을 만들며 다양한 실험을 해온 신인 양경모 감독은 장르의 전형을 영리하게 취하고 피하면서 영화에 자신만의 개성을 새겨넣는다. “조금이라도 다른 것을 만들어내고 싶다”는 양경모 감독을 만났다.

-초고를 쓰기 시작한 때부터 완성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렸나.

=5년 걸렸다. 예전에 어느 술자리에서 만난 사람에게 작업 대출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시작된 이야기다. 술자리에서 처음 만난 그 친구가 말을 걸었다. “그런데 영화감독이라고 하셨죠? 혹시 작업 대출이라고 들어보셨어요?” 처음엔 뭔 얘기인지도 모르고 듣고 있었는데 “제가 20살 때 쇼핑백에 5만원짜리를 가득 채워서 다녔거든요” 그런 얘기를 하기에 이 친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집중하고 듣기 시작했다.

-작업 대출이란 소재에 관심이 갔던 이유는 뭐였나.

=작업 대출이 불법적인 일인데도 불구하고 업자들은 자신들이 전혀 나쁜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게 첫 번째 재밌는 포인트였다. 그런데 얘기를 한참 듣고 있으면 그들의 얘기가 맞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감독님, 지금 직장 없으시죠? 정규직 아니잖아요. 은행 가면 신용대출 안 된다니까. 그럼 어디 가실 거야? 러시앤캐시나 산와머니 가실 거잖아. 거기서 돈 빌려 쓰면 일년에 내는 이자가 얼만지 아세요? 우리는 이율 3%짜리 대출 받아준다니까.” 그런 얘기들을 술술 들려줬다. (웃음) 그런데 한달에 200만원씩 똑같이 수입이 있더라도 실제 은행에서 정규직은 대출이 되고 비정규직은 대출이 어렵다. 억울한 측면이 있지 않나. 그렇기 때문에 작업 대출 업자들은 자기들이 대출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와준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런 상황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작업 대출이 성행했던 2005~6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삼는다. 지금의 이야기로 바꿔도 무방했을 것 같은데 그 시기를 고집한 이유가 있나.

=제일 중요했던 건 신권 발행이 그 시기에 이루어졌다는 거다. 개인적으로 실제 신권 발행이 이루어질 당시의 풍경, 한국은행 앞에 와글대던 사람들과 그때의 공기가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돈에 대한 질문을 강력하게 던지고 싶었기에 그 시기를 담고 싶었다. 물론 근과거를 다루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촬영할 때 도로명 주소 하나만 보여도 난리가 나고, 연식이 안 맞는 차들이 지나가도 큰일 나니까. 힘든 과정이었지만 그 시대의 풍경을 담는 게 이 영화의 방향에 있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이스트 무비를 표방한 영화답게 다양한 사기꾼 무리가 등장한다. 캐릭터 하나하나에 나름의 사연과 개성을 부여했는데, 전형적인 듯 전형적이지 않은 인물들이 흥미로웠다.

=기능적인 캐릭터는 장르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이 영화가 범죄 액션이냐, 범죄 드라마냐, 범죄 오락이냐 어떻게 규정해야 하냐고 하는데 시선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이 영화가 규격화된 장르, 규격화된 상품이었다면 영화의 톤 앤드 매너는 물론이고 캐릭터 또한 특정한 기능을 부여받았을 거다. 민재와 함께 움직이는 조폭 출신 대출업자 기태(박종환)의 경우, 신인감독으로서의 고집과 설득이 가장 많이 발동한 캐릭터다. 시나리오만 봤을 때 사람들이 예상한 인물은 떡대 좋고 윽박지르기 일쑤고 힘으로 모든 걸 제압하려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쓴 캐릭터가 아니었고, 박종환 배우가 그 역할을 해줬으면 해서 사람들을 오랜 기간 설득해야 했다. 천 형사(안세하)나 박 실장 역시 다른 사람들은 더 전형적인 인물로 생각하고 거기에 맞는 캐스팅을 기대하기도 했다.

-박병은, 김선영, 이동휘, 박종환, 안세하, 조우진, 박형수 등 개성 있게 자기 연기 잘하는 배우들의 활약이 빛났다.

=이들 중 1/3은 원래 친분이 있던 배우들이다. 김선영 선배는 대학로에 연극 <주머니 속 선인장>을 보러갔다가 연기에 반했고, 이동휘 배우는 <집으로 가는 길>(2013) 시사회에 갔다가 친분이 있던 박형수 배우가 소개시켜줘서 알게 됐고, 박종환 배우는 내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작품 찍을 때 졸업영화 오디션을 보러 와서 알게 됐다. 당시 세번이나 미팅을 가졌지만 결국 박종환 배우를 캐스팅하지 않았는데, 서로 대화를 나눴던 시간들이 좋았는지 이후 계속 연락하며 지내게 됐다. 감독과 배우가 서로 바라보는 지점이 다르면 기존의 작업물보다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오기 어렵다고 본다. 또 다른 작품에서 봤던 그 배우의 매력을 차용하는 게 아니라, 그에게서 새롭게 나올 수 있는 모습들을 꺼내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원라인>을 함께한 배우들은 다들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고, 서로 토론하며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기꺼이 즐겼다.

-하이스트 무비라고 했을 때 기대하는 속도감이나 한방이 있는데 <원라인>은 최소한의 장르 컨벤션만 취한다는 느낌이다. 인물들에게 과한 정의감이나 의리, 어이없는 배신의 서사를 부여하지도 않는다. 끈적한 감정이 없어서 좋았다.

=긴장했다. 그래서 심심하다고 할까봐. (웃음) 관객이 좀더 재밌게 이 범죄 드라마를 즐겨줬으면 했고, 그 과정에서 케이퍼 장르의 특성이나 액션영화, 코미디영화의 특성을 조금씩 차용했다. 그런데 강국현 촬영감독은 이 영화가 너무 ‘간’이 많이 됐다고 하더라. 더 담백해도 좋았을 거라고. 나는 그렇게까지 하면 관객이 재미없어 하지 않겠냐고 했는데, 중요한 건 우리가 바라보려 했던 대상과 이야기를 정확하게 보고 가고 있는지 계속해서 확인하는 거였다. 그 과정에서 여러 장르적 장치가 들어올 수 있지만 핵심은 인물이 가진 감정과 이야기의 맥락이었다.

-러닝타임이 두 시간이 넘는다. 친절하게 그리고 느긋하게 흘러가는 이 영화의 속도감은 조금 아쉬웠다.

=이것 역시 장르를 대하는 태도의 문제인 것 같다. 친절함 같은 경우는, 어느 정도의 자본을 가지고 만든 영화이기 때문에 적당히 친절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감독의 책무라 생각했다. 여러 편집 버전이 있었고, 좀더 친절한 버전으로 가는 것에 대해선 나 역시 동의했다. 템포의 경우, 스탭들과 공유했던 건 “꼭 그래야 하나?”라는 질문이었다. 우리가 영화관에서 찾는 재미가 속도적 긴장감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서 작업을 시작했다. 내가 원했던 건 장르적 속도감으로 텐션을 주기보다 드라마에 집중하면서 하고자 한 이야기를 명백하게 던지는 데 집중하는 거였다.

-스스로 시네필이라 밝힐 만큼 어려서부터 영화를 좋아했는데 의대에 진학했다. 힘들게 공부해 의대를 졸업했는데 결국 영화 세계로 발길을 돌렸다.

=영화감독이란 직업이 진로로 선택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단순히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도전해볼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특별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또 대학 생활이라는 게 그냥 지나가지 않나. 워낙 바쁘게 지나가다보니 뭘 하며 살아야 할지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순간이 좀 늦었던 것 같다. 2003년에 전 재산을 털어 캠코더를 한대 사서 처음으로 어머니의 뒷모습을 찍었는데, 그때 무의식중에 알게 됐던 것 같다. 나 같은 사람도 영화를 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그 뒤 한겨레영화학교에 다녔고, 2005년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들어갔다.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나.

=모두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꼭 들려줘야 하지만 아직 아무도 들려주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청년기를 지나 기성세대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내가 겪어온, 우리가 겪어온 삶이 영화에 담겼으면 좋겠고, 무엇보다 어떤 이야기를 다루든지 인간에 대한 희망을 놓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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