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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꿈의 제인> 조현훈 감독
임수연 사진 백종헌 2017-06-01

“흥미로운 부분도 걱정되는 부분도 있다.” <꿈의 제인> 개봉을 앞두고 조현훈 감독은 덤덤하게 말했다. 그의 첫 장편영화 <꿈의 제인>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CGV아트하우스상, 구교환이민지 모두 올해의 배우상 수상), 서울독립영화제(관객상 수상)의 화제작이었다. 어디에도 마음 둘 곳 없이 ‘가출 팸’(가출 청소년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을 전전하며 살아가던 소녀 소현(이민지)과 트랜스젠더 제인(구교환)의 짧고 강렬한 만남을 통해 불행 속 한줌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이 영화는 독특한 소재와 섬세한 연출, 배우들의 열연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영화제 관객이 아닌 대중이 이 작품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라고 조현훈 감독은 말한다. <꿈의 제인>을 통해 누군가에게 이런 방식의 위로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었다는 조현훈 감독을 만나 영화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물었다.

-불행은 쭈욱 이어지는 데 반해 행복은 드문드문 있다는 대사가 유독 기억에 남더라. 이런 생각이 영화의 시작이 됐나.

=우연히 ‘가출 팸’의 존재를 알게 됐다. 취재 과정에서 아이들이 삶에서 겪는 참혹함을 목격했을 때, 내가 어떤 선을 넘지 않고 해줄 수 있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도처에 널려 있는 행불행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이것은 내 인생을 관통하는 질문이기도 했는데 그 질문을 혼자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싶었다. 또한 <꿈의 제인>에는 결국 포기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포함돼 있는데, 조금 무책임하고 건방진 말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많이 고민했다.

-소현이 클럽에서 일하는 트랜스젠더 제인과 함께하는 몽환적인 전반부와 소현이 병욱의 ‘가출팸’에 합류해 겪는 참혹한 경험이 드러나는 후반부가 대비되는 구성이다.

=사실상 집에 대한 향수가 없는 소현은 제인의 집에서만은 따뜻한 느낌을 받는다. 개인적인 기억을 되짚어봤을 때, 시골의 할머니 집이 떠오르더라. 꼭 내 할머니가 아니라 친구의 할머니 집에 잠깐 놀러갔던 기억도 나에겐 향수로 남아 있다. 그래서 집에 있는 가구나 그림이 비슷한 정취를 느끼게끔 디자인해보았다. 병욱의 집 같은 경우 좁은 공간에서 여러 인물이 생활하다 보면 생기는 무질서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남기고 간 집이라 그에겐 굉장히 소중한 자기만의 섬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

-두 주연배우 구교환, 이민지가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을 나란히 수상하며 많은 호평을 받았다. 좋은 배우를 선택한 감독의 캐스팅 과정이 궁금해지는 대목인데.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번화가에서 양손에 운동화를 들고 맨발로 내리막길을 뛰어 내려오는 아이의 이미지를 계속 생각했다. 그런 연민이나 강단이 복합적으로 느껴지는 얼굴을 떠올릴 때 소현 역에 (이)민지씨가 생각났다. 구교환은 우연히 본 흑백 사진 한장이 영향을 줬다. 웃는 얼굴 안에 슬픔이 느껴지고 쉽게 감상을 허락하지 않는 마스크가 제인의 캐릭터와 매우 잘 맞았다.

-특히 구교환의 연기는 여러모로 인상적이었다. 트랜스젠더로 보이는데 어색함이 없으면서 누구든 품어줄 수 있는 포근한 성정이 자연스럽게 묻어나더라. 배우와 어떻게 캐릭터를 준비해나갔나.

=우리는 제인을 준비하면서 연기 테크닉적인 부분, 트랜스젠더가 어떻게 말하고 움직이느냐에 관해서는 단 한마디도 논의하지 않았다. 오로지 제인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제인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믿고, 어떤 음식을 좋아했을까. 사실 구교환과는 시나리오 리딩도 하지 않았다. 제인이라는 사람을 대상화시켜 흉내내고 싶지 않았던 거지.

-제인이 공연하는 클럽 ‘뉴월드’의 느낌이나 미러볼이 몽환적인 느낌을 내는데 기여한다.

=클럽이라고 하면 화려하고 활기찬 느낌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오래되고 쓸쓸하고 레트로한 공간처럼, 다시 말해 제인과 닮은 장소처럼 느껴졌다. 그런 공간 안에서 미러볼이 어두운 공간을 비추고 돌고 있는 이미지가 나에겐 플래시 플러드 달링스(<꿈의 제인>의 음악감독)의 음악과 합쳐져 어떤 연상 작용을 일으키더라. 그리고 우리가 잡은 테마 “어둠이 깊은 곳에서 빛은 강렬해진다”라는 느낌을 줄 수 있는 다른 비슷한 물건들도 찾아나갔다. 달이라든지 쓰레기 많은 해변가의 비치발리볼처럼 초현실적으로 아름답고 앙증맞은 물건들이 제인과 연결될 수 있다고 봤다.

-제작사 이름이 ‘서울집’이다. 이전에 만들었던 단편 <서울집>과 같은데.

=지방에서 집을 많이 옮겨다녔고,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로 올라온 뒤에도 계속 이사를 다녔다. 자기만의 공간을 갖기 힘든 사람 입장에서는 ‘내 집’이라는 단어를 쓰기가 힘들다. 서울에 있는 건 ‘서울집’ , 진주에 있는 건 ‘진주집’인 거지. 그렇게 내가 살고 있는 공간과 나를 분리시키면서도 스며든 애틋함을 생각하는 편이다. 공간에 대한 이런 감정을 계속 생각하는 편이라 당시 단편 제목으로도, 제작사 이름으로도 쓰게 됐다.

-평소에 특정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마음에 품고 있는 편인가.

=내가 아직 부족하고 아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에 삶 전체를 장악하는 공간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가 없다. 다만 내가 영화에 담고 싶어 하는 건 향수의 정취가 드러나는 공간이다. 영화는 대리체험이자 기억을 환기시키는 경험을 하는 매체라고 생각한다. 영화가 공간을 제시하는 것이 어떤 기억을 떠올리게 할 수 있는 그런 기능을 했으면 한다. 그래서 세트보다 실제 사람들이 살아서 역사가 쌓인 공간을 선호하고, 그 안에 쌓인 생활감을 찾아나간다.

-<꿈의 제인>이 말하는 희망의 크기가 너무 작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좀더 희망찬 결말일 수도 있는데.

=나에게는 <꿈의 제인>이 말하는 희망도 너무 호소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다만 희망의 모양과 색깔은 모두 다를 것이고, <꿈의 제인>과 같은 방식의 위로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전달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작품을 만들어갔다. 이 영화를 좋아해줬던 관객과 다 같이 느낀 즐거움과 흥분은 쉽게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어떤 작품이 됐든 이런 태도는 잃지 않고 싶다.

-<서울집>을 만들 때는 자신의 이야기에서 시작하는 방식으로 창작을 하다가 한계를 느끼고 <꿈의 제인>은 타인에 대한 취재를 바탕으로 했다고. 지금의 생각은 어떤가.

=특정 주제나 인물에게 집중하는 방식으로는 계속 작업을 해나가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꿈의 제인>으로 ‘가출 팸’이라는 외부의 세계를 다루면서, 내 시선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지 않으면 영화를 만드는 일이 벽에 부딪치겠구나 하는 고민이 생겼다. 세상을 볼 때 갖는 호기심을 노력해서라도 만들어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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